IT·산업디자인·특허·정책 분야 8명 이공계인 판단 종합해보니
"삼성 이겼다-애플 이겼다" 엇갈려도 "시대변화 읽어야" 일치

최근 산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글로벌 특허전쟁이다.

특히 삼성과 애플이 사용환경(UI)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와 기술을 둘러싼 특허의 침해 여부를 두고 전 세계 9개국에서 진행 중인 수조 원대의 소송은 '세기의 특허 재판'이라 불리며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국 지방법원이 삼성의 애플 특허 침해를 인정하면서 징벌적 배상액을 평결한 반면 한국과 일본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는 등 양 기업간의 공방전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애플이 영국 런던 법원의 명령에 따라 '삼성전자가 애플 태블릿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문구를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애플은 이번 사과문으로 인해 향후 유럽지역 특허 소송전에서 애플의 디자인 특허 침해 주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잃게 될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에도 애플은 현재 삼성을 대상으로 한 특허 침해 소송에 구글의 안드로이드 4.1 젤리빈을 추가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지난 6일 법원에 제출한 소송 내용 수정 문서를 통해 "애플은 2012년 7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삼성 갤럭시 넥서스용으로 출시된 젤리빈 운영체제에 대한 논쟁을 분명하게 포함시킬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애플은 최근에 출시된 갤럭시 노트 10.1도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애플은 이전에도 이번 소송에 젤리빈을 포함시킬 의도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삼성 역시 자사의 맞소송 대상에 아이폰 5를 추가했다. 공룡들의 싸움에 국내 과학기술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석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과기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특허전쟁의 양상이 기업에서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으므로 지재권에 대한 범국가적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은 맞다. 하지만 실제 연구개발의 주체로서 활약한 과기인들은 개별 사례에 대해선 더없이 냉철하며 국수주의(國粹主義)나 외교관계 등 감정적·외부적 조건으로부터 초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이 삼성과 애플 특허소송의 배심원이 된다면, 어떠한 평결을 내리시겠습니까?" 질문에 답한 이공계인 8명의 '사견(私見)'을 소개한다.

이들은 IT·산업디자인·특허·정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관련 전문가들도 있지만 특허가 진행되고 있는 부분과는 큰 상관이 없는 분야의 종사자들도 포함됐다. 말 그대로 사회이슈에 대한 과학기술인들의 '생각'이다. 어떠한 생각이든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국가·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거나 공적인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이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담보하고자 기명과 익명을 같이 사용했다.

◆ 반도체 전문가로서 국내 대기업의 기업연구소와 학계에서 두루 경력을 쌓은 L 교수

"이번 소송은 애플의 손을 들어주겠다…삼성은 부품과 하드웨어 강하니 더 잘 될 것."

"사실 '명품'은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미국 쪽에서는 '애플만의 둥근모서리'라고 인정하며 아이폰과 삼성폰을 보고 비슷하다고 본다. '둥글다'의 의미를 글로 쓰면 정확한 표현방법이 없지만 따라서 만든 것이 보인다. 삼성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구글에서 삼성에게 '애플하고 디자인을 차별화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일정 부분 삼성에서는 애플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도 있다. 국내에서 삼성과 LG가 기기개발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지만, 통신사들이 망을 독점하고 휴대폰 사양과 콘텐츠를 결정하는 등 횡포가 심했다. IT기술이 발전하려면 그러한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현대에서 고속도로 깔았다고 현대차만 다니게 하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 격이라며 정부에 건의한 적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애플이 통신사업자로부터 단말기 개발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또 콘텐츠 개발 회사들이 통신사의 횡포에서 벗어나 살아날 길이 생겼다. 애플이 국내 IT산업을 개방한 것과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내에서 애플과 구글의 다툼에 삼성이 엮인 것도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삼성이 손해 볼 것은 없다. 디자인 도용이라도 해서 빠르게 시장에 나갈 수 있었고, 스마트폰으로 10조원 매출을 올렸으니 일부는 내도 된다.

카피캣(Copycat:모방꾼) 오명은 남겠지만 애플과 싸우며 브랜드 이미지는 오히려 올라갔다. 부품과 하드웨어가 강하니 앞으로도 잘 될 것이고, 디자인에서 삼성의 대표를 만들어내면 된다. R&D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술을 좁게 보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지적가치를 인정해줘야 하고, 과학기술 한 부분이 아니라 산업전체에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애플이 국내 IT산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라.

IT산업은 C(콘텐츠), P(플랫폼), N(네트워크), D(디바이스) 네 가지가 있어야 이루어진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만 봤는데, 애플은 이 네 가지를 한 번에 뒤집었다. MP3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애플은 음악 콘텐츠를 아이튠즈 개발자와 협력해 수익을 나눴는데, 국내 기업들은 개발자에게 거의 안 줬다. R&D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작은 기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서비스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 기계기술 전문가로서 출연연에 소속된 J 박사

"삼성이 디자인에 대해선 특허 침해하지 않았다."

"이번 특허 소송은 판결을 한마디로 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디자인을 포함해 여러 가지 기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유럽 각국, 일본 등에서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이는 각국이 디자인 특허를 인정하는 범위 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나에게 디자인 특허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리라고 한다면,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할 것이다. 스마트폰의 형태 혹은 디자인은 애플이 독자적으로, 완전히 창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수년에 걸쳐 다양한 휴대폰 제조업체들에 의해서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삼성의 옴니아, LG 프라다폰의 경우는 스마트폰으로서 애플의 아이폰 이전에 출시되었으며, 그 형태 또한 현재의 스마트폰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애플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 디자인들을 혼합하여 사용자들이 쓰기 편한 기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원천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선도적인 기술로 전 세계 MP3 시장을 주름잡았던 한국 중견업체들이 애플 아이팟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행정상으로 특허 기술을 제대로 방어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애플과 삼성의 소송 중 미국 배심원 판결은 각 소재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심미적인 특징, 디자인적인 특성이 실제 시장 혹은 일반 구매자 사이에서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다."

◆ 소프트웨어 전문가로서 IT계의 대부로 통하는 김진형 KAIST 교수

"시장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법칙 아래서는 침해…대응방법 시급히 마련해야."

"우리 언론은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불공평하게 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한 반응이다. 특히 디자인 특허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한다. 둥근모서리 등은 애플의 고유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미국이 판단했기 때문에 베꼈다는 것이 그쪽의 평가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20년 전 우리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특허를 주지 않으나 미국은 주고 있었다. 그걸 보고 우리도 뒤늦게 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와 달리 디자인 특허도 주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디자인 특허가 있지만 잘 주고 있지 않다. 미국처럼 이전부터 디자인특허를 주고 있었다면 이렇게 베끼는 일은 없었을 거다. 이번 소송 결과는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시장을) 주도해서 끌고나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응방법이 없는 상태다. 지적재산권 뿐 아니라 디자인 특허확보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제는 디자인과 같은 부분의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R&D 하는 사람들은 소프트한 부분도 신경 써나가야 할 것이다."

◆ 소재 전문가로서 출연연을 거쳐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활동 중인 H 박사

"특허에 대한 문화적 차이…미국과 한국의 판결 다른 것 당연."

"미국에서 걸린 특허라는 것이 둥근모서리와 아래 홈 버튼 구조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특허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미국은 이미지 특허를 예전부터 인정해왔고 우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특허가 인정된 것이다.

미국에서 판결했기 때문에 미국 기업 손을 들어줬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만약 삼성이 이미지 특허로 애플에 소송을 걸었다면 미국이 삼성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특허는 어느 정도 보호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허 때문에 기술개발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자기 아이디어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을 보면서 기술과 디자인에서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오히려 특허를 보호해주지 못하면 기술개발이 저하될 수 있다. 이번 소송으로 삼성과 구글, 애플 등에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번 일로 회사 사람들이 폐쇄적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R&D에 있어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 생화학자이자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나도선 울산대 교수

"전문가들이 특허 관련된 분쟁을 판단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관련 소식들을 접하면서,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재판 과정들이 굉장히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무엇보다 특허 관련 재판에서도 배심원이 판결을 내리는 미국의 제도를 납득할 수 없다.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재판이고 1조원이 넘는 액수가 달린 중대한 사건에서 어떻게 일반인들이 판단을 내리는가. 훨씬 더 전문적인 배심원들이 참여해야 한다.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고심하고 고심해서 굉장히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를 비전문가가 나서서 재단하니 사회가 절망적이라고 본다."

◆ 디스플레이 전문가인 김재훈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애플의 소송은 혁신에 위배된다…너무 일반적인 것을 독점하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배심원이 된다면 삼성의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전문가들이 나서서 분명 특허 검토를 했을 거라고 보고, 디자인 측면에서는 애플이 말도 안 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자 입장에서 보면 답이 두 개로 나올 수가 없는 문제인데, 나라마다 다른 판결이 나온다. 결국은 재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기술이나 디자인 등에 대한 특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접근과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정보통신 전문가로서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재직 중인 K 박사

"객관적 관계보다 외부 요소 영향이 큰 재판이라 관심 없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은 객관적인 사실 관계보다 사업·정치·국제 등 외부 요소에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가질 않는다. 1~2등을 하는 두 대표 선수가 이전투구(泥田鬪狗)하면, 어느 쪽이 이기든 지든 간에 전체적으로는 손해다. 지구상에서 다투는 기운이 증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가진 사람이나 조직이 더불어 살아가는 묘안을 찾아서 서로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IT와 BT분야 융합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L 박사

"문장을 베끼는 것도 나쁘지만, 구조를 베끼는 것은 더 나쁘다."

"특허 소송에서 삼성이 배심원들을 설득하긴 힘들어 보인다. 보통은 기술이나 디자인을 도용하더라도 어쨌든지 차별점을 만들어 다르게 보이도록 포장하곤 하는데, 삼성은 애플과 최대한 같게 보이도록 포장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트위터에서 본 말인데, '문장을 베끼는 것도 나쁘지만, 구조를 베끼는 것은 더 나쁘다'라고 작가 김탁환님께서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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