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 왜 없겠는가 화도 날 것이다…功過 이제는 교훈으로 남겨두자
후임총장 선임 등 갈등·불안요인 여전…협력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서남표 총장을 박수치며 보내주는 게 맞다. KAIST에, 한국 대학에, 국내 이공계 발전에 그가 남긴 흔적은 뚜렷하다. 공과(功過)가 있겠지만 떠나는 마당에 누가 허물만 탓하겠는가. 노구를 이끌고 한국 이공계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뛰었던 그의 열정만은 폄훼하지 말자. "아무 욕심 없다. 오로지 KAIST와 한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수하지 못하다.

서 총장 역시 아름답게 떠나야 한다. 왜 할 말이 없겠는가. 화도 날 것이다. 임기를 2년 넘게 남겨두고 밀려나듯 떠나야 하는 그 심정 짐작한다. 왜 서운하지 않겠는가. 그런 아쉬움과 회한은 이제 교훈으로 남겨두자. 서 총장의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교훈으로 받아들일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서 총장이 그것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다. 책임질 수도 없다. 남은 이들에게 "행복했다"고 격려해주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떠난다는 마당에, 보내기로 한 마당에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데 후임총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서 총장은 "오명 이사장과의 합의사항"이라며 후임총장 인선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후임총장은 차기정부와 효율적으로 협력하실 수 있는 분이 선임되는 게 좋다', '글로벌 수준의 탁월한 능력, 비전과 리더십을 겸비하신 분을 후임총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후임총장 선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애정'이 지나치면 '간섭'이 된다. 서 총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은 그의 이러한 메시지를 간섭과 개입의 신호로 읽는다. KAIST 이사회가 "서 총장측 (총장) 추천권에 대해 아는 바나 논의된 적이 없다"고 선을 긋고, 교수협의회가 "어떤 형태로든 차기총장 선임에 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파멸을 재촉하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서 총장도 적합한 인물을 추천할 수 있다. 당연직 이사로서 의견 개진도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간섭이다. '반드시 이 사람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또 다른 마찰을 불러온다. 차기정부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 글로벌 수준의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 비전과 리더십을 겸비한 분을 찾는 일은 서 총장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사장과 교수협의회도 마찬가지다.

더 눈여겨 볼 대목은 측근들의 움직임이다. 서 총장 재임 전반기 본부보직을 맡은 참모 대부분은 오로지 KAIST의 발전을 위해 뛰었다. 무엇보다 유능했다. 역할분담이 분명하고 호흡도 잘 맞았다. 서 총장이 그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참모들의 역할도 컸다. 후반기 역시 상당수는 그랬다. 서 총장의 인기는 시들해졌지만, 동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일했다.

몇몇은 그러지 않았다. KAIST가 아니라 총장만을 위해 뛰었다. 여론을 차단하고 곡해했다. 역할분담이 모호했고 호흡도 안맞았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반(反)개혁 인물'이라고 낙인찍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주변의 숱한 조언과 질타에도 요령부득. 당연히 우군은 등을 돌리고 적은 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의심한다. 서 총장이 최근 쏟아냈던 그 거친 메시지가 과연 서 총장의 생각과 의지였을까. 구성원과 이사회, 이사장은 물론이고 언론과 국회, 정부, 청와대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토해냈던 그 다듬어지지 않은 육성이 과연 서 총장의 말이었을까. 머지않아 이들의 잘잘못과 폐해는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이들에게 '남은 기간 자숙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는 게 맞다.

'포스트(Post) 서남표' 시대를 맞게 되는 KAIST의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두 번이나 총장이 중도에 하차한 것은 큰 상처다. 본인의 말처럼 서 총장은 떠나면 끝이다. 그 상처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구성원들의 몫이다.

역설적이지만 극복의 방법은 서 총장이 던진 화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 총장은 지난 달 '퇴임 의사'를 밝히며 네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KAIST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 과학기술계 등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KAIST가 사유화되서는 안된다. 둘째, KAIST 구성원 또한 굴절된 관행과 문화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대학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KAIST 이사회를 해외 명문대학과 유사한 수준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넷째, 오명 이사장은 물러나야 한다.

서 총장을 화자(話者)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사장과의 감정섞인 부분만 고려해서 들으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더 역설적이지만 이런 일을 실패했기 때문에 정작 본인도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난다. 개혁을 강조하다 보니 '독단(사유화)'으로 흘렀다. 경쟁을 앞세웠지만 '소통(선진적인 대학문화)'은 부족했다. 당연히 '포스트 서남표'의 KAIST는 중단없이 개혁하되 독단에 빠지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하되 소통하는 리더십을 갈망한다. 그런 리더가 와야 한다.

어떻게 만나느냐 못지 않게 어떻게 결별하느냐가 중요하다. 서 총장과 KAIST는 3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작별을 준비하기에 충분하다.

서 총장은 사퇴의사를 밝히는 순간에도 "한국과 KAIST를 향한 열정은 뜨겁기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애정 의심하지 않는다. 임기 동안 서 총장의 공(功)이 컸다면 KAIST는 서 총장 없이도 홀로 설 것이다. 서 총장이 떠난다고 KAIST가 흔들린다면 서 총장의 과(過)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남은 기간 할 일은 분명하다.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그게 누구든 후임자의 자리를 잘 비워놓고 떠나는 게 남은 기간 서 총장과 그의 핵심 측근들이 할 일이다.

멋있게 떠난 서 총장을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지 모른다. 또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오랫동안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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