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어 10일 문재인·안철수 후보도 대덕 연구현장 방문
앞다퉈 과학기술 중요성 강조…세부정책·과학계 인물은 전무

대통령 선거를 2개월 가량 남기고 여야 후보들의 과학기술계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연구현장을 찾고, 대화의 폭을 넓히며, 과학기술계 표심을 잡기 위한 '러브콜'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후보마다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겠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여전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과학정책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캠프 내 주요인물도 과학기술계 인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9일 각 대선주자 캠프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지난 8일 대전선거대책위 발대식에 앞서 KAIST에서 출연연 연구자들과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10일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대덕 연구현장을 방문하고 안철수 후보도 이날 KAIST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과학기술계를 선점하고 이 분야에서 정책적 우위를 드러내기 위한 대선주자들의 불꽃튀는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앞다퉈 연구현장으로

지난 8일 KAIST에서 과학기술자들을 만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공학도 출신임을 강조하며 과학이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 후보는 "국정 운영의 중심은 과학기술이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연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운영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실제 박 후보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 매입비 삭감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 등은 정책위원과 검토해서 말하겠다. 당 차원에서 항목 신설 부분도 연구해 보겠다"고 답해 과학벨트와 관련된 속시원한 답변을 원한 과학기술인과 지역 유권자들에 아쉬움을 남겼다. 

문재인 후보는 10일 오전 과학벨트 예정지인 유성구 신동지역을 둘러보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연구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표준연에서는 60여명의 출연연 연구원들과 '과학은 미래다'를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하며 과학기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과학기술계 관련 정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문 후보는 이에 앞서 추석연휴 기간이었던 지난달 28일 대전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예산과 관련해 "국회에서 잘 뒷받침 하겠다"며 "부지매입비가 국가 예산으로 반영될 수 있게끔 당 차원으로 정기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안철수 후보도 10일 오후 2시 KAIST 학생 동아리인 ICISTS가 주최하는 강연의 연사 자격으로 대덕을 방문한다. 대선 후보로서 과학정책과 비전을 전달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라 서울대와 KAIST 전 교수의 자격으로 과학기술과 융합을 강연한다는 방침이지만 대선주자인 만큼 정치적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강연을 준비한 ICISTS 측은 "융합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분을 연사로 물색했는데 안 교수가 대선 후보 이전에 관련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어서 초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학생들은 강연회 장소로 대강당을 신청했지만 '대강당은 300명 이상 모이는 정치행사를 금지한다'는 지침을 이유로 KAIST측이 장소 사용을 불허해 터만홀로 장소를 바꾸었다는 후문이다. 

◆너도나도 "과학"…구체적 정책은 안보인다

이번 대선은 이공계 출신 박근혜 후보와 의대 출신으로 벤처기업 CEO·교수 등의 이력을 갖고 있는 안철수 후보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과학기술계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대선 후보들과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과학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주요 정치쟁점과 민생, 경제, 안보, 복지정책 등에 밀려 국가발전의 미래가 걸린 과학기술 분야의 구체적인 정책은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각 후보 캠프의 과학분야 참모진도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게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박 후보 캠프에서는 이춘상 보좌관 정도가 과학분야 인사로 꼽힌다. 안 후보의 캠프에는 변호사와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진 전문가그룹이 있지만 정작 과학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인사가 없다. 문 후보 쪽도 과학 분야 참모진은 아직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다. 

후보뿐 아니라 소속 정당에서도 구체적인 과학정책이 마련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박 후보 캠프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과학기술'을 클릭하면 지난해 열렸던 '과학기술 정책세미나 인사말'을 비롯해 동영상, 자료, 포스터 등의 게시물만 나온다. 문 후보의 민주통합당 역시 지난 9월 말 발표한 정책홍보물에서도 과학에 대한 언급이 없다. 

MB정부에서 과학전담 부처가 사라지며 과기정책이 흔들렸던 만큼 과학계 컨트롤타워 부활, 정년환원, 비정규직 문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 등 해결해야할 과학계 현안이 많다. 어느 대선때보다 과학기술 분야 정책이 중요하고 국정의 중심현안이 되어야 하지만 이번에도 각종 정치적 쟁점과 다른 '인기 분야' 정책에 밀려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전담부처 부활은 한목소리…"미래 과학비전 제시해야"

대선주자들은 현 정부의 과학정책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언급했지만 과학 전담부처 부활 외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정책비전은 없다. 

박 후보는 이미 여러차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현 정부에서 통폐합된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후보도 9월 24일 열린 타운홀 미팅 '문재인의 동행-국민에게 길을 묻겠습니다' 정책포럼에서 과학기술부 기능을 하는 부처 신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가 미래와 직결된 정보통신부 역할도 함께 강조했다.

문 후보는 "공약을 한 것처럼 과기부·정통부가 참여정부 시절에 과학기술, IT분야 세계경쟁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두 부처 부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도 지난달 24일 국민대 무인차량로봇연구센터를 방문해 "현 과학기술 정책은 문제가 있다"면서 "과학자들이 혁신적인 연구개발로 질적 과학성장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대선 앞두고 과학기술계도 목소리 내나

대선을 앞두고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대선주자들에게 전하려는 과학기술계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등 25개 과학기술 단체로 구성된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이하 대과연)은 9일부터 인터넷 카페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개설하고 대통령 후보에게 바라는 '과학기술 대선공약 국민제안'을 받는다. 

대과연은 국민제안 접수에 착수하면서 "과학기술인과 국민의 염원을 모아 창조적 지식사회,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150만 과학기술인의 뜻을 모아 과학기술 정책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대과연 관계자는 "지금은 각 후보들이 개별적으로 대덕을 방문하고 과기인을 만나고 있지만 대과연에서 대선 후보자들을 모두 초정해 과학분야의 정책을 보다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도록 정책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정책을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출연연발전협의회도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연구현장과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대선주자들에게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정정훈 출연연발전협 회장은 "MB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과기행정체계를 흔들어 놓은 것"이라며 "모든 후보들이 전담부처 출범을 얘기하고 있는데 단순한 과기부 부활이 아니라 총괄기획과 예산조정의 능력을 갖춰 범부처적인 리더십을 갖춘 전담 부처의 부활과 이를 운영할 수 있는 단일 연구회 체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특히 국가 R&D 예산은 늘었지만 이를 수행할 출연연 연구자 수는 제자리다. 연구원 정년환원과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처리해야 할 인력문제가 시급하다"며 "출연연에서 작성한 정책보고서 내용을 대선 후보의 정책과 차기 대통령 인수위 과학분야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