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승전보, 대통령 독도 방문 등 국가 자신감 고양
과학기술력이 뒷배경…과학자 자부심 갖되 신발끈 다시 한 번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영국에서 연일 낭보가 날아들고 있다.

심훈 선생이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듣고 쓴 격문에 '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 민족'이란 표현을 낯설게 할 정도로 승전보가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축구의 승리 행진. 운동과 정치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메달수가 결국은 국력의 바로미터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무관한 것만도 아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모두를 감동시킨 것은 축구 경기 중 영국과 일본에 대한 승리였다.
영국은 인류의 근대를 연 나라였다. 근대의 출발점은 18세기 산업혁명이다. 개막식에서도 대니 보일이 강조했듯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는 생산력이다. 이전의 인류가 생산에 쓰던 힘은 인력과 축력이란 두 가지 자연적인 힘뿐이었다.그것이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기계력으로 대체되며 생산성은 비교가 안되게 커졌다. 소규모의 수공업적 생산이 공장제의 대량생산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산업혁명을 가져온 배경에는 뉴튼의 만유인력으로 상징되는 17세기의 과학혁명이 있었다.

산업혁명에 의해 커진 생산성과 각종 기계를 바탕으로 영국은 전세계에 영향력을 넓혀 나간다. 이른바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영국이 세계의 표준이 됐고, 영국보다 낮은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들은 그의 발밑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16세기 신항로 개척 및 신대륙 발견에 의해 식민지를 개척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높아진 생산성을 기반으로 식민지를 만들어 나갔다. 1757년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키며 아시아에도 손을 뻗었다.

영국이 제국주의의 원형이라면 일본은 복사본이었다.
일본은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서양이 동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보고 자칫 외국에 종속될 것이란 위기감을 갖고 메이지 유신(1868년)을 일으켜 내부 혁신을 한 뒤, 바로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이와쿠라 사절단(1871년)을 보내 1년10개월간의 서양학습을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 공장제 산업과 서양식 군비, 법령의 정비를 의미하는 식산흥업 정책을 세우고 일본을 근대화시킨다. 이를 기반으로 운요오호 사건(1875년)을 일으키고,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을 거쳐 한국을 병합(1910년)해 식민지로 만든다.

한국은 이러한 두 나라를 산업혁명의 출발지인 영국에서 잇달아 격파한 것이다.
식민지를 경험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한 나라가 경제개발을 시작한지 50년만에 자력으로 2050클럽에 가입하는 등의 드라마를 쓰다가 그동안 우리에게 질곡의 세월을 가져오게 한 두 나라를, 산업혁명의 출발지에서, 축구에서나마 이기게 된 것이다.

두 나라와의 경기를 사이에 두고, 국내에서는 건국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 있다. 바로 대통령의 독도 방문. 독도 영유권 분쟁은 끊이지 않고 거론되던 것이다. 독도가 우리 영토인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역대 대통령들은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지난 10일 방문해 우리 땅임을 전세계에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역대 대통령은 못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유난히 애국심이 커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과학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거 한일간의 정상회담에서 주된 의제는 기술이전 문제였다. 일본의 기술을 받아야 그를 기반으로 우리가 제품을 생산해내고 수출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이 그동안의 우리 역사이다.

정주영 회장 회고록에도 나오지만 일본 대기업 과장이 한국에 왔을 때 70년대만해도 그룹의 회장이 나가서 접대를 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는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마음이 절절해도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만 우리 땅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제는 일본의 기술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는 상황이 되니 독도 방문이란 이벤트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며칠전 국회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하나 열렸다. 국가 정책을 보좌하는 사람들한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마련된 과학기술정책 아카데미 1기 과정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첫 강의를 맡은 서울대 김태유 교수는 과학 발전과 국가 발전, 국민 행복은 등식 관계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갑오농민전쟁(1894년)시 일본과 우리의 무장 상태의 차이.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무라타 소총이고, 우리는 화승총이었다.

무라타 소총은 근대 무기 공장에서 기계로 제작된 것으로 사거리가 약 5백보, 1천5백m에 달했다. 화승총은 대장간에서 만든 것이고, 사거리가 1백보, 3백m에 불과했다. 이 차이가 한 나라는 주인으로, 한 나라는 노예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30년뒤 일본의 여성들은 독서클럽에서 교양 수업을 받고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일본군의 종군위안부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끌려다녀야 했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다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된 시점에 한국과 일본에 존재하던 이공계 박사는 10명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인을 키우지 않은 것이다. 그 이후 교육에 힘을 쓰며 현재 우리나라의 이공계 박사는 약 10만명에 이른다. 60여년만에 1만배 증가한 셈이다. 나라를 찾게 되니 인재를 키울 수 있었고, 그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며 우리가 현재의 삶의 질을 누리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왜 중요한지, 인재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또 개인이 뛰어나다고 인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받쳐줘야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알수 있다.

이번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 보듯이 온국민이 일본이라면 이를 악물고 맞상대해온 덕분에, 지난 50년 다시는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맹렬함이 기반이 돼서 오늘날 우리는 단군이래 최고의 삶의 질을 누리게 됐다. 그것이 나타난 현상이 올림픽에서의 선전과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통한 영토 확인 등이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 한 몫 했고, 드러나지 않지만 과학기술인들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배고프다. 일본이 패전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인 1949년 10월에 일본 국민들에게 '그래도 우리한테는 희망이 있다'며 사기충만하게할 만한 소식이 날아들어온다. 바로 유가와 히데키 박사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 이 소식은 패전으로 지친 세월을 살고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진학하며 기술대국 일본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한국전쟁특수와 일본 상품의 세계 수출 등으로 이어지면 일본은 다시 한 번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의 과학기술은 분명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되게 성장했다. 미래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낙관할 정도로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과학분야 노벨상 하나 못탔다. 이웃 중국이 우주에서 유인 우주선이 도킹하고, 세계 최초로 유인 잠수정으로 7천m 해저를 탐사하는 과학굴기를 할 때 자력으로 우주를 나가본 적이 없고, 심해 무인 잠수정은 있어도 유인 잠수정은 꿈도 못꾼다. 일본의 과학기술력은 이미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에 달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두 나라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직 긴장의 끈을 풀 때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차이가 우리 삶의 질의 차이를 결정짓는다. 이미 우리는 역사를 통해 피로 배웠다. 다시는 이를 잊지 말고 우리의 후손들이 노예로 다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지금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안이하게 지내면 불행한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차기 대권을 노리고 뛰는 대선주자들의 인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를 갖고 있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그리고 그 국민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란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세계 선진국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미흡한 것이 많다는 인식아래 다시 한 번 신발끈을 조이는, 잘 될수록 절제하는 그런 내공을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복절이자 건국절인 8월15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항공우주연구원 인공위성 조립동에 걸린 대형 태극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공동체와 과학의 관계를 생각하고, 과학으로 국민들이 감동받고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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