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은 '불통·갈등의 시기'…구성원 신뢰 상실
2년치 연봉vs예산, 무엇을 아끼는 것이 국익인가

8억 원 vs 1조2천억 원.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서남표 총장 측이 KAIST 이사회가 본인의 계약해지안을 상정했다는 소식에 대한 첫 반응 가운데 하나는 돈이다. 계약해지를 할 경우 2년치 연봉 플러스 위자료란 손해배상금를 주어야 하며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인데, 이를 그냥 쓰는 것은 세금 남용이라고 이사회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말미에 밝힌 액수가 연봉만 약 8억 원이다.

KAIST의 한 해 예산은 약 6천억 원 정도다. 두 해를 합치면 1조2천억 원 가량이 된다.
KAIST는 서남표 총장이 연임한 지난 2010년 이후로 2년간 내홍에 휩싸이며 정상 상황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임기 2년은 차치하고, 남았다고 주장하는 임기 2년을 계산하면 1조2천억 원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KAIST의 정상화가 난망인데, 8억 원과 1조 2천억 원, 무엇이 국익일까?

서 총장의 화법은 단순한 듯 하면서도 화려하다. 사람들이 아파하는 부분을 콕 찌르며 사람을 주춤하게 한다. 지금까지 위기 때마다 써온 말 가운데 하나는 본인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전례를 남기면 앞으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영입하려는 꿈은 접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나쁜 전례를 세우면 안되니 본인이 속투를 하겠다는게 지난 2년간의 주된 주장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이사회가 뚜렷한 명분이 없으니 해임이 아니라 계약해지를 택한 것은 법률적·사회적으로 정당성이 자신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대한민국, 자부심 가져도 좋은 나라…진정한 세계 일류 환영

우선 앞의 말부터 생각해보자. 러플린과 서남표란 두 사람은 한국 축구를 중흥시킨 히딩크를 연상하며 모셔온 인물이다. 그런데 결론은 예상과 달랐다. 히딩크는 실력이 세계 최고인데다 소통도 달인이었다. 현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격려하고, 비전을 제시했다. 러플린과 서남표는 실력은 세계적이었으나 소통은 서툴렀다. 러플린은 발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공식 조직을 불신하고, 개인플레이를 했다. 서 총장은 소통한다고 해놓고 계속 일방적 통보를 해 결국 신뢰를 잃었으며, 구성원들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게끔 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많은 선생을 모시고 배워왔다. 이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학습력과 모방력이다. 우리는 좋다고 하면 다 배워왔다. 그 결과 오늘의 부를 이루게 됐다. 앞으로도 한국은 그 학습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성숙했고, 이제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면 손실도 크게 된 만큼 무조건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려는 사람들도 언행일치를 하면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이란 나라는 20-50클럽에 가입하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도 내놓았다. 과거처럼 아무나 한국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 한국인들이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게 될 자격이 있다고 본다. 내가 불명예스럽게 나가면 세계의 모든 석학이 외면할 것이라는 자세는 오만함이 아닌지 서 총장께 묻고 싶다.

법률적·사회적 정당성이 없다는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은 물론 일상 생활에 있어 절대 중요한 전제가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믿음을 갖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실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과연 서 총장 스스로가 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됨이 없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면초가란 말이 있다. 사방이 다 초나라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이다. 2000여 년 전 항우가 유방과 싸우며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초나라 사람들에 포위된 것을 알고 절망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항우가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초나라 사람들이 등을 돌려 이런 결과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서 총장은 부임하면서 초기에 표방한 'KAIST에 이로운 것(What is good for KAIST?)'이란 화두로 개혁의 당위성을 내세우고 사람들을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제압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교수는 몰론이고, 학생, 더 나아가 동문들로부터도 사퇴를 압박받고 있다. 결국 본인이 그토록 위한다고 했던 KAIST 사람들로부터 포위되고, 외면받게 됐다. 주요 구성원들로부터 부정당하는 작금의 상황이 KAIST에 이로운 것인가?

혹 KAIST 교수나 학생 등 구성원 등은 서 총장한테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났다며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없을까?

"권력은 무력이 아닌 피지배층의 동의에서 나와야 한다."
2년 넘게 지속돼온 KAIST '사태'를 보며 떠올린 말이다.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는 이 글의 끝에서 밝히겠다.

서 총장의 리더십은 분명히 처음에는 빛을 발했다.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라든지, 전면 영어교육을 실시한다든지, 성적불량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당사자들은 고통이었는지 몰라도 주변에 있는 국민들에게는 통쾌함마저 주며, 그는 단박에 개혁의 아이콘이 됐다.

국민과 언론의 지지를 받으며 그의 말은 곧 법이 됐고, 영향력은 교내를 넘어 전국에 미쳤다. 무엇이 KAIST에 이로운 것이냐는 질문과 전 세계를 누비며 KAIST를 세일즈하고, 우수 인재를 영입하며, 새벽 2,3시에도 메일에 답신을 하는 정력 등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기에 모두는 복종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 그에게는 제왕적 권위가 생겼다.

아마 임기 3년차 혹은 4년차가 그로서는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 때를 지나며 점차 분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발은 소통이었다. 개혁에 공감을 하는데, 구성원들과 사전 공감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가자는 하소연이었다. 조직에 근무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불통이 얼마나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하지만 이때만해도 명분이 더 앞서기에 이견은 묻혀 지나갔다.

두 번째는 연임을 둘러싼 과욕이었다. 총장 지인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한 것도 모자라 총장 추대 위원회를 만들면서 외부에서 의구심을 들게 할 수 있는, 연고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추대위원회에서는 논란 끝에 복수가 아닌 단수로 후보를 추대했고, 국립대학교를 사유화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후 국정감사장에서의 논쟁,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온라인 전기차와 모바일 하버의 실효 논쟁, 학생들의 잇단 자살, 특허 도용 의혹 등등의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KAIST는 정상 가동이 어렵게 됐다. 일부에서는 가동하고는 있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은 할 수 없는 '뇌사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교수 등 KAIST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숙제…국민 피부에 닿는 개혁해야

서 총장은 여전히 외부 사람들로부터는 일정 부분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개혁 아이콘이 우리 사회에 그만큼 절실했기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본다. 내부에서의 반발은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하고,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 총장을 둘러싼 논의는 달리 보면 개혁을 둘러싼 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선뜻 교수 사회에 손을 들어주지 못한 이유는 그동안 개혁의 주체라기 보다는 대상을 자초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스스로는 개혁을 하지 못하고 철밥통이란 말로 대변되듯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이미지가 형성돼 있기에 과연 앞으로 개혁을 잘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남표 총장 사태를 보며 KAIST 교수들도 많이 반성하고,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변화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결국 외부에서 메스를 들이댈 수 밖에 없음을. KAIST는 분명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자원이고, 세계 최고가 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를 외부에 의존하게 하느냐, 내부 힘으로 해결하느냐는 전적으로 교수들의 손에 달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자치의식을 갖고, 내 것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함께 번영할 길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새로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발전을 위한 고민이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럴 때 국민들은 더 큰 지지를 보여줄 것이고, 그것이 안될 경우라면 학교의 존폐까지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서 총장 이후는 교수와 학생, 동문 등 KAIST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가 위상을 드높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KAIST를 위해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참고로 "권력은 구성원들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말은 토이스토리 3편에서 제시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랏소베어에 대항하며 한 말이다.이 대목에서 작금의 KAIST 상황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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