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 서술...원조국에서 독립국으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적' 아닌 독립의 '동지'

혹 우리나라가 제대로 독립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5천년 역사 가운데 일제 식민지가 된 36년을 제외한 전부? 고려시대 5백년? 조선시대 6백년?해방이 된 1945년 이후? 정부 수립이 된 1948년 이후?... 한국의 독립과 관련해 우리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다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책이 하나 나왔다.

더군다나 이해를 초월한 제 3자의 눈이 아니라, 우리의 목줄을 쥔 바 있는 나라인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본 시각이기에 오히려 더 리얼하기도 하다. 이 책을 보고 다다른 생각을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가 제대로 독립한 것은 20여년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확실히 낼 수 있게된 것이 그 기점이며, 구체적으로는 1987년의 6.10항쟁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리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는 우리 곳간에 먹을 것이 충분히 챙겨졌기 때문. 곳간이 풍족해지게 된 이유는 산업화 세대가 미국의 견제 혹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부국강병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대립되는 좌우의 세력이 아니라, 대한민국 독립 과정에서 산업화 세대가 기반을 쌓았고, 그 위에 민주화 세대가 건물을 세웠다는 맥락에서 이해가 되면서 둘은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인식에도 다다를 수 있었다. 역사는 여러 시각에서 보고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나라의 장래를 화두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시한다. 책의 제목은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이다. 부제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 미국이 우리의 생존에 결정권 갖게 된 1945년부터, 소극적 개입도 주저하게 된 1987년까지의 한미 관계가 내용이다. 이 시기 한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선 경제성장이고, 탄탄해진 산업구조에 풍성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우리 목소리를 낸 민주화가 그 내용이다. 저자는 그렉 브라진스키란 조지 워싱턴대 교수. 한국 이름을 갖고 있고 한국말이 유창하다. 그런만큼 사료를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것을 다 섭렵해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겠다.

해방이 된 신생아 대한민국은 미국 입장에서 상징적 존재였다고 한다. 2차대전이란 열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며 한국은 자본주의 진영의 우수성을 알리는 시범적 존재로 여겨졌다. 한반도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시에 실험에 들어간 지역이며, 이 지역에서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민주주의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만약 체제경쟁에서 지게 되면 민주주의 진영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는 만큼 미국은 전력을 다해 한국을 지원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자유세계에 있어서) 심리적, 정치적 측면 모두에서 중요한 국가다. 만약 한국을 잃으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모든 근거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 바 있다. 때문에 한국은 군사와 경제 원조를 동시에 받는 파키스탄, 베트남,대만,터키와 더불어 미국 원조의 '5대 수혜국'에 포함됐다. 1960년대까지 마국이 한국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매년 약 3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한국 국방비의 8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해방과 정부수립, 6`25 등을 거치고 한국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균형점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한국 만들기'에 들어갔다.

주된 내용은 자유민주주의란 미국의 이상을 심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의 교육체계, 언론의 전문화, 관료 조직의 성장에 관심을 가졌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미제 학용품을 보급하는 것에서부터, 교사들 워크셥, 미국 교재 제공, 암기 위주에서 학생의 수업 참여를 포함하는 현대적인 강의 기술 등등의 지원이 이뤄졌다. 스카우트 운동도 도입됐다. 기자들에게 미국 연수 및 시찰 기회 등을 주며 객관적 보도와 언론의 자유 등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했다. 행정관료와 정치인을 육성하기 위해 지도자 프로그램이란 것을 도입해 미국의 발달한 정치기구와 기업체 등을 직접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훗날 대통령이 된 김영삼과 김대중도 젊은 시절에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미국 현장을 보고 미국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등 우호적인 입장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도 당연히 있었다. 특히 관료들을 위해서는 미국 연수 등의 기회와 함께 미국 도움 없이 차세대 관료를 훈련할 수 있도록 경영과 공공행정 분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설립과, 연세대 및 고려대의 경영대학 교육 수준 향상 지원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친미 성향의 엘리트 관료들이 성장하고, 자리잡게 됐다. 이와함께 농민들을 위해 4-H클럽 운동도 소개됐고, 60년대 후반부터는 노동자들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미국의 한국 만들기에서 가장 역점이 두어진 분야는 군사 부문이다. 웨스트 포인트 미 육군 사관학교의 교육틀과 교재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한 육군사관학교, 엘리트 장교를 교육하기 위한 국방대학원, 고급 지휘관에 대한 미국 특별 연수 프로그램 등등이 실시됐다. 이 프로그램들에 참여한 장교들은 장차 본인들이 한국의 사회, 경제 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자극하였으며, 또한 미국인의 생활 방식을 모방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미국의 제도 및 문물의 우수성을 보고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인상을 갖게 됨과 함께 한국을 변화시키겠다는 열망을 갖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실제로 이는 그 효과가 뚜렷한 것으로 역사는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국가 발전에 대한 청사진과 수행 능력, 선진 사회에 대한 동경 등등을 배경으로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그렇지만 군은 미국식 방식에 대해서는 큰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에서 교육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이고,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과 애증의 관계가 반복됐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당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돼 미국과 갈등 관계가 빚어지기도 했고, 통화개혁은 미국의 반대로 유보되기도 했다.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 월남 파병 등등의 사안에서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키자 미국의 신뢰는 커졌다. 박정희 정권의 각종 정책에 대해 미국은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 연구소를 설립해주고, 군사 및 경제 지원을 강화했고, 한국의 경제성장은 빠른 스피드로 진행됐다. 미국은 1967년 이후 박정권 지원 방향을 수정해 반대 세력의 성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도입됐다.

박정권은 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 공백 우려에 따라 미국에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특히 카터 대통령때는 그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다. 여기에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노동자 반발, 사회 불안 등이 가중되며 결국 박정희 암살이란 파국이 일어났다. 이후 등장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출신 대통령들 시대에 어느 정도의 곡절은 있었지만 한국은 견실하게 성장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 기초되고 출발한 중화학 공업화와 한국의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돼 이것이 가능했다. 튼실한 곳간을 바탕으로 한국민들은 한국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비판적으로 보았고, 특히 87년의 6.10항쟁은 그 결정적 순간이었다. 미국은 한국민들이 반미로 도는 것을 꺼려해 한국 문제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게 됐고, 이후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자주적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때 노 대통령은 역대 한국 대통령과는 다른 자세로 회담에 임한다. 다름 아닌 다리를 꼬고 앉은 것. 강대국에 둘러 싸인 한국이 택한 생존전략은 전통적으로 사대였다. 단군이 기자조선에 의해 맥이 끊기고, 삼국시대 중국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려 시대에 원나라 및 금나라와 부딪히고,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청나라에 종속되고, 끝내는 일제에 식민지로 예속되는 등. 해방 이후로도 목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영향아래서 겨우 숨을 쉬어온 존재였다. 이런 약한 나라의 대표는 사대의 대상인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면서 대등한 입장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대좌에서 다리를 꼰 것. 이를 두고 어떤 기자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역규모 1조달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첫 나라가 된 오늘날의 한국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자존심의 출발인 먹거리를 만들려고 피땀을 흘린 사람과, 그를 기반으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해온 사람들 모두가 결국은 같은 지향점을 가진 동지라고 생각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바깥에서 한국을 보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춰 많은 문헌을 보며 자세하게 설명해준 저자가 참으로 고맙고, 좋은 책을 선택해서 우리에게 소개해준 역자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번영에 관심을 갖고, 장래가 궁금한 분께는 일독을 권한다. 우리 시대를 조망하는 의미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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