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대덕특구, 대책은?③]LG연구원 벤치마킹위해 잇따라 방문
과학계 원로들 "출연연·정부관계자, 민간연에 배워야"

'누더기 대덕특구' 기획 기사 1, 2편이 보도되고 몇몇 정부출연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기사 내용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건축 건수나 금액 등을 뺄 수 없냐'는 것.

관련 정부 부처에서 이를 보고 내년예산을 삭감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란다. 대덕연구단지 구성원 누구도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정부 부처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하는 출연연의 현주소다.

이런 현실속에서 연구원 건축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일이 가당치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 대덕연구단지에는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연구원이 하나도 없는걸까.

그렇지는 않다. 대덕연구단지에도 마스터플랜에 의해 건립이 진행된 연구원이 있다. 바로 LG화학기술연구원이다. 20년간 전통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외부인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물론 민간연구소이기 때문에 마스터플랜대로 건물을 짓는 일이 수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통을 만들고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스터플랜에 의해 세워진 LG화학기술연구원에 가봤더니

문지동에 위치한 LG화학 기술연구원(원장 유진녕·이하 LG). 정문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동산과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연못이 한눈에 들어온다. 휴식같은 평온함에 잠시 마음을 빼앗길 정도다. 오른편으로는 회색톤의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1989년 무렵 연구소 건립이 처음 계획되고 1992년부터 건물이 착공되기 시작했으니 처음 완공된 건물은 올해로 20년째다. 민간연구소의 20년된 건물이 뭐 그리 화제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단연 시선을 끄는점이 있다. 처음 지어진 건물이나 최근에 완공된 건물 모두 외관에서부터 전해지는 단정함과 통일감이다. 그리고 본관동을 중심으로 연구동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동선은 줄이고 연구의 효율성은 높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기관들이 필요에 따라 들쑥날쑥 지어 올리는 건물과는 차별된다. 연구원마다 갖는 특성을 무시하고 유행에 뒤질세라 제각각의 외관으로 지어진 건물들과는 사뭇다르다.

◆모든 건물 유기적 관계 갖도록 마스터플랜에 명시

LG연구원은 1989년도 말 지금의 자리에 연구소를 건립하기로하고 부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2여년동안 기본설계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여기서 밑그림은 건물을 어떻게 지을것인가에 대한 설계가 아니다. 10년, 20년후까지 건물의 위치를 어떻게 배치하고 층수는 얼마로 하고 건물 외관은 어떻게 할지, 인력 증가에 따른 연구동은 어떻게 확충해 나갈지 등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일종의 연구소 건립 마스터플랜이었던 것. 이 연구원의 대지면적은 28만6223.9m²(8만6582.72평)이며 그중 조성지는 19만7803.2m²(5만9835.46평)이고 원형지는 8만8420.7m²(2만6747.26평)다. 굴지의 대기업이 미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연구소 규모로는 대지가 넉넉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으로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

당시 연구소 수장이었던 최남석 원장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 곳의 연구단지를 둘러보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서고 LG의 연구소가 대덕에 자리를 잡게 되자 그는 한국의 명품연구단지에 어울리는 연구소, 가장 쾌적한 연구환경을 조성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리고 마스터플랜에는 앞으로 확장되어가는 단계를 명확히 제시해 후에 세워지는 건물들이 모두 전단계에 세워진 건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또 연구원들에게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물 주변과 연구소 사이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둘 것을 기본으로 했다. 이런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자료들이 수집됐다. 93년부터 LG연구원의 시설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완 부장은 "당시 기본 계획에 대한 자료가 캐비닛으로 하나였다"면서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계속 다듬어가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건축에도 유행이 있어 그를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대덕연구단지와 연구원의 특성을 먼저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의 연구원 건립이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최 원장이 건립안을 경영진에 올리니 '예산 낭비가 크다' '호화롭다'며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 원장은 연구원 마스터플랜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며 경영진을 설득했다. 결국 모두 동의했고 LG연구원은 연구원 건물의 모델이 되며 대덕연구단지의 명소가 됐다. 하지만 최 원장은 지금 연구원의 원장실에서 근무 해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동력동이 들어서고 연구동은 사업확장에 따라 차례로 들어섰다. ⓒ2012 HelloDD.com

◆미래를 내다본 내부 구조도 눈여겨 볼만

연구소 건물은 보통 연구동, 파일럿트 플랜트(Pilot plant), 행정동, 공동시설동 등이 들어선다. 따라서 이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가장 효율적으로 지을 것인지가 필요하다. 또 연구 과제는 계속 달라지므로 연구동은 어떤 기준을 세워 지어야 지속적으로 활용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LG도 마찬가지였다. LG연구원의 설계는 기초 Engineering 설계는 Bechtel이라는 외국설계회사가, 기본 설계는 재미교포 김태수 건축가가 맡았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6단계로 나눠서 설계했다. 인력 증가와 연구분야 확대에 따라 20년동안 장기적인 계획하에 단계적으로 시설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건물들은 모두 마스터플랜에 나온대로 전(前) 단계 건물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지어졌다. 기술적인 면에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조금씩 변화가 있긴 하지면 전체적인 균형과 통일감은 그대로 유지했다. 건물의 컬러도 밝은 회색톤으로 통일했다. 자칫 지루한 감이 있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녹색의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배합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건물이나 최근에 준공된 건물이 큰 이질감 없이 조화롭다. 지금까지 LG연구원의 외관에 대해 살펴봤다면 이제 건물 내부의 마스터플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연구원 내부의 가장 큰 특징은 층고와 여유 공간이다. 또 연구동에는 실험실과 업무공간을 같이 뒀다. 연구원들이 업무와 실험을 동시에 진행하며 연구에 집중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위험한 특수연구분야는 일괄적으로 관리를 한다. 연구동의 생명은 가변성이다. 프로젝트의 변화로 수시로 가변이 필요하다. LG는 연구동마다 가변적인 공간을 뒀고 벽에는 유연성을 뒀다. 천정고는 5.25m로 해 첨단 설비와 전기 시스템을 위한 공간을 뒀다. 연구동의 바닥 하중도 당시로는 최고인 메타제곱당 700kg(보통 300kg)으로, 파일럿동은 1톤의 하중이 가능하도록 해 대형 장비가 불편없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했다.

김 부장은 "장기계획을 세워 진행하다보니 초기에 기본 시설 건립 비용이 많이 들어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소 건물은 한번 지으면 여러 조건들 때문에 증축이 쉽지 않다"면서 "처음에 잘 해 놨기에 지금은 프로젝트에 따라 가변이 가능한 벽만 조금씩 변화시키면 된다. 이 건물이 LG만의 전통이 되면서 외부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LG연구원은 연구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연구동 마다 작은 마당을 만들었다. 또 동선공간인 아트리움은 서양의 가톨릭성당을 연상시키는 높은 천정으로 시원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연구원들이 자체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출연연·정부 관계자도 연구단지 특성 알고 계획 세워야

▲부지 부족을 겪고 있는 기계연의 1996년(사진 위)과 2010년(아래) 전경이다.
마스터플랜 없이 건물이 들어서 성냥갑 같은 작은 건물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다.
사진 오른쪽을 보면 녹지가 많이 사라진 모습이다.
ⓒ2012 HelloDD.com

"초기에 세워졌던 마스터플랜이 정권에 따라 변경되면서 대덕연구단지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명품연구단지는 연구공간이외에 또 다른 문화가 될수 있다. 이는 후대 연구자들을 위해 꼭 지켜져야 한다." 대덕에 30년이상 거주한 과학계 원로들에게 대덕연구단지는 일터, 삶터, 놀이터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이다. 이들은 대덕연구단지의 전통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원로 과학자들에 따르면 각 출연연마다 내부적으로 장기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영향에 따라 이를 모르는 외부인사가 낙하산으로 기관장에 부임하고 마스터플랜에 상관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그러다보니 명품대덕연구단지의 전통은 사라지고 건물들만 나열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과학계 원로들은 "현재 출연연의 시설은 필요에 따라 정부에 요청하고 예산이 확보되면 건립에 들어간다. 장기플랜을 세우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이는 결국 출연연들의 부지부족을 가속화시키고 명품연구단지의 녹지를 누더기화 시키는 상황을 초래할 뿐이다. 정부차원의 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이어 "앞으로 조성되는 과학벨트는 연구 성격과 환경에 걸맞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출연연과 정부 관계자가 같이 논의 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의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LG연구원을 다녀온 원로 과학자는 "LG는 초대 원장이 CEO와 상의해 마스터플랜을 세웠고 그를 기본으로 건물이 지어진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들어가면 차분하고 정리된 환경이다"면서 "정부 관계자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출연연에서도 기관장이 임의로 수정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원로 과학자들이 이처럼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연구환경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대덕연구단지의 많은 출연연들이 역할을 했듯이 앞으로 미래를 선도할 과학기술 성과들이 이곳에서 쏟아져 나올 온전한 보금자리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편 지난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가 결정됐다. 앞으로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마다 시설이 본격 조성될 예정이다. 우선 기초과학연구원은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지만 아직 연구원 건립을 위한 설계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마스터플랜에 의해 세워진 LG연구원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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