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단지 불자모임 24년간 염원한 자리, 태전사서 개최

"무엇이 과학인가? 과학이라는 건 논리 즉, 사유로 증명하려 하는 행위다. 일반인이 부처님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하기보다 논리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주제, 불교와 과학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연구단지 성불회(회장 김정수)와 조계종 태전사(주지 도일스님)는 14일 태전사 법당에서 '불교와 과학'이란 주제로 첫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1987년 결성된 연구단지 내 불자모임인 '성불회'와 그를 기반으로 건립된 태전사가 함께 마련한 자리로서 연구원과 교수 등 50여명의 청중들이 참석했다.

성불회는 대덕연구단지 불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24년 전 구성한 단체이며 현재는 약 500명의 연구원들이 활동 중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태전사는 불교의 교리를 탐구하고 불심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20여년 전 태동했다.

이번 행사는 불교에 대한 과학적 연관성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관심과 함께 태전사의 단청불사 회향을 기념하고자 하는 뜻이 더해져 마련됐다. 포럼은 국내 과학자들과 대학 교수들이 발표자로 참석해 불교와 과학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 강연과 토론 시간을 가졌다.

발표자인 ▲지옥표 성균관대 약학대 교수▲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박문호 ETRI 박사▲박덕근 원자력연 박사가 대규모 불상으로 새단장을 마친 법당 안에서 약 2시간동안 열강을 펼쳤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옥표 교수, 이순칠 교수, 박덕근 박사, 박문호 박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옥표 교수, 이순칠 교수, 박덕근 박사, 박문호 박사.
도일 스님의 축사에 이어진 이날 강의는 지옥표 교수가 '깨달음으로 가는 약(藥)'이란 제목으로 문을 열었다. 지 교수는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 중 하나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을 가장 잘 표현한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라며 "우리의 눈에 영원히 존재할 것같이 보이는 물질도 시간의 함수에 따라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사라져 간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색소포(chromophore)라는 물질이 빛을 받으면 고유의 색을 반사하는데 그와 같은 현상 때문에 무지개가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파장의 극히 일부만을 보는 것이며 그와 같은 과학적 사실을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깨달음에 대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이어 "물리학 용어 중 퀀텀점프(Quantum Jump)란 것이 있는데, 양자가 일정 부분 모이면 계단 형식으로 뛰어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라며 "일정 부분 모여 점프를 하는 양자처럼, 우리도 수행을 통해 어느 순간 퀀텀점프를 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순칠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부처님 말씀이 난해한 이유에 대한 물리적 해석'이란 주제로 "불자들은 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서 "하지만, 부처님 말씀은 어렵고 물리학을 공부하다보니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진 못해도 왜 어려운지에 대해선 알 것 같다"고 본 강연을 이어나갔다.

이 교수는 E=mc²이란 공식으로 대표되는 '상대성 이론'과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세상에만 맞는 개념에 사고가 고착돼버린 우리는 진실을 들어도 이해하진 못한다"며 "돈오점수(頓悟漸修), 즉 갑자기 깨우치고 점진적으로 수양한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그저 꾸준히 정진하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박문호 ETRI 박사는 '대칭과 반야의 세계-대칭 관점에서 반야심경 해석'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박사는 우주탄생설, 지구 산소발생의 기원, 척추동물의 출현과 인간진화 등 인간존재의 기본이 되는 과학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진화된 인간은 1000억개의 뉴런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에 의해 행동한다"며 "동물이 '감각의 장(場)'에 갇혀있듯, 인간 역시 이런 '의식의 장'에 갇혀있다. 반야심경은 위대한 지혜를 설명한 경전이며, 그것을 이해하기 보다는 의식 너머의 것으로 지칭하고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덕근 원자력연 박사는 '불교의 과학적 이해-과학에서 본 연기법의 세계'란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박 박사에 따르면 불교의 세계관이 명상과 논리적 추론을 위주로 하고 현대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실험과 관찰에 의한 현대 물리학이 명상에 기반한 불교의 실체접근과 그 결과를 공유하면서 놀라운 일치점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적 사물을 가장 성공적으로 설명한 이론이 현대물리학이라면, 인간 내부의 문제를 다루면서 외적 조건으로부터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을 얻는 방법을 구하는 것이 불교"라면서 "물리학자들이 불교교리를 탐구함으로서 양자성이론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고자 하는 '통일장 원리' 해법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청중들과 6명의 과학자들간의 토론이 이어졌다. 4명의 발표자 외에도 윤현노 ADD 박사와 김천석 KT&G 연구원이 패널로서 함께했다. "불교와 과학의 합일점을 찾았나?"란 청중의 질문에 윤현노 박사는 "불교가 보편타당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모든 과학을 포용할 수 있다.

불교는 계속 과학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천식 박사는 "과학자로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늘 고민하는데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더 많은 사유와 고민을 할 수 있었다"고 행사 참여 소감을 공유했다.

이날 청중으로 참석한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태전사의 사찰 준공을 축하하고, 앞으로 이곳이 대덕특구 정신적 안식처로 승화되길 바란다"며 "향후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불교의 역할이란 주제로 다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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