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기업 10년이면 남는 것이 없다"
외국제품에는 인센티브 부여 '기술 사대주의'

"잡스의 사망으로 글로벌 IT 업계가 새로운 경쟁구도로 갈 것이란 예상이 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딱히 변할 게 없다. 어차피 실적을 인정 받지못하는 국내 SW산업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은 주도권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지난 6일 사망하면서 IT업계는 경쟁구도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기술과 문화의 접목으로 세계 IT업계를 단숨에 장악한 잡스가 없는 애플은 더 이상 혁신의 주도자가 될 수 없을 거란 전망에서다.

해외에서는 잡스 이후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이, 국내에서는 삼성 LG 등이 선두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삼성의 갤러시S2의 판매 대수가 기록을 경신하며 '최고의 제품'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이 IT업계의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을까. 잡스를 능가하며 세계 시장을 리드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어림없다'는 지적이 국내에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적으로 인정도 못받는 한국 SW, 빛좋은 개살구

"소프트웨어(SW)는 생산 실적으로 인정받지를 못한다. 그러니 정부 지원 과제에 응찰 할 수도 없고 양산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방위산업 분야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방산업체 지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판이다. 잡스가 없다고 해도 지금 환경에서는 크게 기대할 게 없다."

"SW를 개발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투입된다. 개발 과정 중에는 어려움도 많다. 그러나 SW 구입하는 업체 대부분이 단지 결과만 가지고 가격을 헐값에 책정하려고 한다. 예전 코볼의 경우 몇줄인지 세서 계산하는데 기가 막혔다."

국내 SW기업 관계자들이 겪고 있는 한국 SW산업의 실상이라며 털어 놓은 하소연이다. 그나마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란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와 함께 'IT강국 한국'의 SW 실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IT 강국 한국'의 명성은 빛좋은 개살구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작 소프트웨어 기업인들은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올것이 온것' 뿐이라는 것이다. 잡스가 떠났다고 달라질게 없다는게 그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외면당해온 SW의 중요성이 갑자기 부각될리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SW 기업 10년 제자리 걸음, 결국 업종 전환

A 기업인은 10년전부터 SW 기업을 운영해 왔다. 방위산업, 민간 등 많은 분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SW를 개발했다. 제품이 양산되고 상용화되면서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SW 자체의 비용을 받은 게 전부다.

개발 비용 인정도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도 없다. B 기업 역시 방산 분야에서 SW개발로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군에서 사용하는 무전기 SW를 개발했다. 기술 개발에 들어간 비용만도 몇 억 원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가 개발한 SW를 탑재한 제품이 생산에 들어갔지만 그에게 돌아온건 아무것도 없었다. SW를 넘기면서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마저 넘어가버렸다. C 기업인은 대기업의 SW를 개발해 왔다. 그러나 거래하는 대기업과 협업관계라기보다는 단순히 하청업체 취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회사 창업 10년이 다되도록 매번 제자리 걸음으로 인력수급은 물론 회사 경영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SW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표를 하지만 기업 생태계에서는 전혀 달라질 게 없다는 관련 기업인들의 이야기다.

대부분 SW기업들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밤샘을 밥 먹듯 하며 개발한 기술인데 구입자는 단지 SW비용을 냈다는 이유로 기술마저 가지고 가버리는 게 국내 SW산업의 현실이다. SW개발자는 그야말로 닭쫓던 개 지붕만 바라보는 격이다. 정부의 지원정책도 SW기업에게는 독약이다.

SW 개발은 무형이라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몇 백건의 SW개발 실적이 있어도 유형의 제품이 없다는 이유로 실적 인정이 안되고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에 응찰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SW는 특히 방위산업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양산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도 못하는게 현실이다.

10년 넘게 SW기업을 운영하던 C 기업인은 자구책으로 3년전부터 로봇산업을 병행하고 있다. 양산이 가능한 산출물로 증명되면서 각 부처의 지원과제에 입찰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의 주력사업도 SW에서 다른 유형의 산업으로 바뀌었다. C 기업인은 "이제는 과제에 당당히 참여하게 됐지만 왠지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기술 사대주의 아직도 진행되는가, 외국SW에 막대한 비용 지출

그러나 외국 제품을 수입할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외국제품은 가격의 대부분을 SW가 차지한다. 또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도 지불해야 하는 조건이다. 국내 구입업체는 외국 제품에 대해서는 군말없이 비용을 지불한다.

미국 등 선진국 기업의 SW를 복제해 쓰다가 적발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SW기술료는 정부 노임단가의 120%로 계산된다. 그나마도 형편이 나아진거란다. 예전에는 기술 개발 과정이나 가치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단지 결과로만 계산을 했다.

물론 SW 가격을 계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무형의 제품이니 전문가가 아니면 판단하는 기준조차 애매모호하다. 또 국내 기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술 사대주의도 SW기업을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기업인들은 지적한다.

B 기업인은 "기술 사대주의의 심리인지 외국 제품에는 무조건 호의적인 반면 국내 기술은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말로만 IT 강국이지 실상은 SW기업인이 제대로 설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어떤 정부 관료는 SW를 몇줄인지 줄로 세서 계산을 한다. SW가 무슨 시(詩)도 아니고 어떻게 줄을 세서 계산 할 수 있는지 경악스럽다. 이렇게 비전문가들이 국내SW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울분을 통했다. 국내에서 SW기업 10년하고 나면 남는게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SW 없는 HW 무용지물, 지금부터라도 변화해야

하드웨어(HW)가 아무리 잘 만들어지고 우수한 제품이라해도 SW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최첨단의 신제품이나 군사무기 역시 SW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격 등 모든 기준이 SW보다는 HW 중심으로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SW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하고 저작권마저 존중받지 못하게 됐다.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IT강풍에 우수 두뇌들이 관련 대학 학과에 진학하며 IT강국을 이끌어 냈다. 또 SW기업들이 속속 창업을 하면서 한국의 IT산업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SW의 저작권 인식부족과 대기업들의 횡포에 관련 중소기업들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그 결과 SW산업계 인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SW산업 인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위 정도로 2008년 13만9000여명에서 2009년에는 13만8000여명으로 줄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유튜브, 안드로이드 등 SW관련 기업들이 구글에 인수되면서 관련 사업도 승승장구 하고 있다. 젊은 벤처 신화가 쏟아지면서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스마트 폰과 스마트 가전 등 IT 산업 전반에 모바일이 화두다. 관련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는 상황이다.

SW관련 기업인들은 "최근 국내에서도 SW의 중요성과 관련 인력 양성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SW 생태계는 개발의 중심축이었던 중소기업들이 이미 설자리를 잃은 상태다.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기업인은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에서 SW를 내놓고 시장을 개척하다보면 금방 대기업에서 비슷한 SW를 내놓고 시장을 싹쓸이한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차원에서 SW중소기업들이 역할을 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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