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 KAIST 교수 "그냥 퍼주는 SW지원정책 개선해야"
"법 제도 개선으로 SW 한층 발전 할 수 있어"

 

 

스티브 잡스의 사망소식 이후 국내는 물론이요 세계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여지껏 이어지고 있다. KAIST 전산학과 교수이자 앱센터지원본부장을 지내며 국내 SW업계의 활성화를 지원해온 김진형 교수도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SW 세계의 큰 별이 떨어진 데 대해 상실감을 맛봐야 했다.

잡스가 전세계 컴퓨터 SW 세계에 던진 파문은 실로 놀랄만 하다는 것의 김 교수의 지적. 그는 이와 관련 잡스의 업적을 대략 이렇게 정리한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실행, 영화와 PC의 결합, 스마트폰 개척 등. 잡스는 일부 엘리트들만이 사용했던 컴퓨터를 개개인이 쓸 수 있도록 보급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고, 이후 기업이나 과학자 등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그는 기존에 명령어를 입력해 컴퓨터를 실행시켜야 했던 불편함을 마우스 클릭만으로 실행 가능토록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로 간단하게 바꾸는 혁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마우스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자체를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적절히 활용해 컴퓨터를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은 바로 스마트 폰. 휴대폰 안에 수많은 현대 문명의 기기를 한꺼번에 담았던 것이다. 휴대폰을 만드는 것은 통신제조업자라는 기존 틀을 깨고 휴대폰도 컴퓨터로 해석하고 컴퓨터로 보면 된다는 신념이 아이폰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SW도 찾아서 넣으면 된다는 그의 생각이 아이폰에 잘 적용됐고 잡스 덕분에 IT업계의 새로운 시장(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까지 창출됐으니 그가 다녀간 짧은 삶 속에 얼마만큼 혁신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SW업계 사람들은 잡스 덕분에 새롭게 형성된 시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됐다. 국내 SW업계의 인식과 근무환경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도 사실은 잡스의 공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국내 IT산업계는 HW에 너무 치중된 나머지 SW는 연구해 봤자 소용이 없으면서도 개발에는 밤낮이 없는 3D직업으로 불리었지만 이제 정부는 물론 기업, 일반 국민들까지 SW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한국에서도 SW시장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물론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진정 SW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SW생태계 문화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또 실패하더라도 재개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구축돼야 한다. 무궁무진한 시장성을 가진, 모든 산업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는 SW분야 육성을 위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김진형 KAIST 교수를 통해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상상 1.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며 물건을 배달하는 트럭은 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에 절대 빈차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 소프트웨어(SW)가 이동 중에 들릴 수 있는 장소에 물건을 전달할 수 있도록 효율적 루트를 직접 설정해 주기 때문이다. 상상 2. A동네가 재건축에 들어간다.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의 소득 분포와 직장 등을 감안하여 이들이 어디로 이사를 갈지 SW가 예측을 한다. 이사로 인한 교통대란을 막기 위해 몇 대의 버스와 전철이 더 편성돼야 할지도 SW가 스스로 판단, 효율적 교통환경을 마련한다. 상상 3. 어릴 때 어떤 질병에 어떤 성분의 약을 먹었는지, 언제 수술을 했는지, 나의 건강 상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생 목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SW가 구축되면 이제 더 이상 오진은 없다. 치료비도 저렴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무신과 가발을 만들어 해외에 내다팔던 시대를 지나 휴대폰과 TV를 만들어 IT관련한 세계 하드웨어(HW) 시장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 시장도 점차적으로 중국에게 따라잡히고 있다. 또다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야할 때가 온 것이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는 더 이상 HW가 아닌, 작더라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그리고 물건을 만들지 않아도 돈이 되는 '지식서비스' 기반 수익모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 특히 정부가 'SW생태계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정부는 SW이해하고, SW 인력 키울 연구소 설립해야"

'세계 IT강국, IT 1등 한국'. 우리는 이 문구를 오해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상당한 투자를 통해 통신선을 구축한 결과 외국에서 인정할 정도로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됐다. 하지만 선이 깔린 것이 1등일 뿐 아직 활용 측면에서는 외국인들 조차 아쉬워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세상 모든 제품에 SW가 들어가면 똑똑해지기 때문에 세계는 SW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선진국일수록 SW직장을 선호하고 있다. 냉장고를 굳이 열지 않아도 어떤 재료가 들어있고, 이 재료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지 계산해주는 인공지능 냉장고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스스로 가는 운전수 필요없는 자동차, 사람이 없을 때 불이 꺼져 전기 절약을 돕는 주차장 등 모든게 SW에 의해 이뤄진다.

그는 후진국의 경우 인터넷이 안 되니 못한다고 치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한 인프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SW는 투자도 활용도, 사람도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SW활용도는 선진국의 3분의1 수준이다. 기반이 다 설치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SW 최강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 20년간을 분석한 결과 정부가 잘못한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통신을 깔기 시작하면서 전자정부 시스템을 만들었으나 정부가 SW의 특성을 모르고 발주를 시작했다. SW사가 100원에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 70원으로 깎아서 만들어야겠다며 대립한 것이다. 김 교수는 "SW란 만들기 전까지는 얼마가 들어가는지 만드는 사람도, 발주하는 사람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가격 책정이 어렵다"며 "SW특성에 대해 분석을 해서 가격을 측정하고 발주를 해야 하는데 일반직 공무원이 이게 얼마짜리 SW인지 분석할 능력이 없어 무조건 싸게 하라고 한다.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체적인 SW의 가격책정은 이렇다. 어떤 기업이 SW를 100원 들여 만들었을 경우 5명 이상이 이 SW를 산다는 가정 하에 20원에 판매를 한다. 그래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한, 한 기관을 위한 SW는 그런 식으로 판매해서는 이득을 얻을 수 없다. SW라는 게 지식사업이다보니 애매해서 가격책정이 쉽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김 교수는 일단 예산을 잡아 놓고 한도 내에서 섬세하게 얼마가 들어가는지 중간 중간 따져가면서 금액을 추가하거나 차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SW제조회사 오라클의 경우 SW개발 가격이 100원이면 매해 23원씩 즉 23% 가량을 더 주게 돼 있다. 기능 업데이트나 버그 수정 등 지속적으로 손을 봐야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100원만 주고 다하라고 하니 SW업계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정부와 SW사, 그리고 SW발주사와 제작사의 갈등은 서로를 이해 못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발과 관련, 기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 SW발주는 1년 단위로 한다. 예를 들어 6월에 정부가 발주를 요청했다고 치자. 충분한 개발 기간을 두고 내년 6월에 SW제작을 마치도록 해야 하는데 내년 예산 회기 문제로 12월 안에 끝내달라 요청한다.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공공사업이 후반부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SW업계 사람들의 근무 환경은 어떻게 되나. 전반부에는 일거리가 없고 대신 후반부에는 밤낮이 없다. 그럴수록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지금까지 HW만 사봤던 정부가 SW를 사고판 적이 없어 물건 값 깎듯, 물건 사듯 SW를 거래 하다보니 SW업계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김 교수는 "SW상품 가치에 대한 공부가 그동안 부족했고 SW를 사용하기 위한 거래관행도 잘 안 돼 있다. 이제는 지식산업이다. 공무원 또한 지식사회로 넘어가는 것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며 "컴퓨터 학과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SW의 산업적 특성을 공부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급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연구소와 SW정책연구소를 설립해야한다고 권고한다. "SW 형태의 연구 결과물은 기술이전이 어렵기 때문에 연구결과와 함께 사람이 이동되는 연구소이어야 한다. 즉 인력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SW연구소를 만들어야한다. 또 소프트웨어 정책은 섬세한 연구가 필요한데 정책연구소가 없다. '국가적으로 이런 경제적 혹은 사회적 효과가 있으니 이런 SW를 만들자'라고 연구하는 곳이 없다보니 연구자 스스로가 개발해 객관성도 없다. SW정책연구소를 설립해야한다"

◆ 그냥 퍼주는 SW자금 지원은 그만…정부의 업무를 잘 하려고 투자해야

SW개발을 위해 정부가 기업에게 연구비를 나눠주는 등 직접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런 방법은 옳지 못하다는게 김진형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SW시장을 살리기 위해 영양제를 줘야하지만 기업이 정부 지원에 익숙해지면 단단해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 중에서 소홀했던 일을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급선무를 예로 들자면 세종시와 서울로 나눠지는 부처의 문제점. 그는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서울 중심이던 부처가 갈라진다. 부처간 업무를 위하여 회의를 하게 될텐데 원격회의와 협업 SW가 필요하다"며 "이런 것들을 제대로 준비해 놓지 않으면 정부의 생산성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냥 기업 지원을 하겠다고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을 공공사업으로 돌려 투자해야 한다. 공공투자를 통해서 시장을 창출하고 일자리도 만들면 관련 산업이 스스로 육성된다"고 주장했다.

◆ "법 개정, SW 한층 발전할 수 있어"

김 교수는 "SW개발에 돈만 넣을 때가 아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법 등에 대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SW담당 부처는 지식경제부이고, 국가 계약법은 기획재정부가 하는 등 SW는 범부처적으로 걸려있어 협조가 어렵다. 지식창조사회 조성을 위해 제도 개선에 있어서 할일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SW 관련 법 뿐 아니라 다른 법들도 지식정보사회에 맞도록 고쳐져야 SW가 좀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는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데이터 센터에서 보관 관리해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Health Vault 같은 서비스이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위법이다. 의료법의 '진료기록을 잘 보관하라'라는 조항을 경직히게 해석하여 법에 위반된다며 거부한다. 심지어는 IDC(인터넷데이터센터, 기업의 전산시설을 위탁 관리하는 곳)에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것도 안된다는 해석도 있다. 개선해서 개인 정보는 보호하되 데이터를 널리 활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법만 풀리더라도 평생 의료기록을 가까운 의사에게 가져가거나 인터넷으로 발송해 직접 가지 않아도 진찰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의료 SW시장이 열릴 것이다. 이 외에도 사회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SW산업을 살릴 수 있으며 분야는 많다. SW전문가들이 이런 공공사업 분야를 살필 필요가 있다"

사회 전체가 SW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제약이 워낙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고 있다.

"최근 모바일 시장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SW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됐다. 국민이 관심이 없으면 SW가 발전할 수 없을텐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제 개발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특히 우리 젊은이들이 글로벌화 돼 한국시장을 목표로 SW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SW산업의 변화가 가속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