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섹트먼 이스라엘 교수, 결정의 정의를 통째로 바꿔

"노벨화학상 발표 후 벅차고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준결정'이라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베이직한데, 노벨화학상으로 뽑혔다고 해서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박정영 KAIST 교수는 노벨화학상 발표 이후 여전히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준결정' 분야는 박 교수가 특히나 잘 아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준결정 구조의 신소재 원자들이 낮은 마찰력을 갖는 원인'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전문가다.

"다니엘 섹트먼 교수는 가장 처음 준결정을 발견했던 분이다. 당시 과학계에서 정의돼 있던 물질에 대한 인식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준결정은 놀라운 물질이다. 결정도 아니고 비결정도 아닌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셈이다."

섹트먼 교수는 지난 1982년 4월 최초로 규칙적인 구조를 갖지 않는 고체인 준결정을 알루미늄(Al)과 망간(Mn)의 합금에서 처음 발견했다. 그의 발견은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연구를 통해 결정의 정의가 바뀌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설명은 계속된다.

"일반적인 고체는 원자 또는 분자가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형태의 결정으로 이뤄져 있다. 과거 '결정'의 정의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물질'이었다. 그러나 섹트먼 교수의 발견으로 인해 이 정의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현재 결정의 정의는 '명확한 회절 패턴이 나타나는 물질'로 바뀌어 있다."

섹트먼 교수가 발견한 형태는 수직 방향으로는 결정의 구조와 비슷했지만, 평면은 기존 결정학 이론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어떠한 곳에서도 결정이라고 할 수도, 비결정이라고 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존재를 준결정이라고 이름붙였다.

100년 가까이 과학자들이 믿어왔던 결정 구조에 대한 통설은 즉각 무너졌다. 학계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박 교수는 "준결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수도 없이 많다. 과거 노벨화학상을 받았던 Pauling 교수는 준결정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던 적도 있었다. 인정 자체를 받지 못했다"며 "준결정의 존재는 전자현미경등의 방법으로 후에 검증이 되었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대와 이탈리아 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팀이 러시아에서 자연광물상태의 준결정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왕립과학아카데미의 입장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왕립과학아카데미는 그러나 뒤늦게 "섹트먼 교수의 발견은 당시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자신이 연구하던 그룹을 떠나야 했지만 결국 다른 과학자들로 하여금 물질의 근본 성질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준결정은 규칙적이지 않고 공간이 많아 일반적인 결정질 소재들에 비해 마찰력이 극히 낮다. 마찰력이 낮다는 것은 소재로 사용할 때 마모가 적어 내구성이 강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열이나 전기를 잘 전달하지 않고 표면에 다른 물질이 잘 달라붙지 않는 특성도 갖고 있어, 프라이팬 코팅재나 엔진을 보호하는 단열재 등으로 개발됐다.

현재 유럽의 일부 회사들은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준결정 소재를 이용해 면도칼이나 바늘, 칼 등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기계·항공 등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준결정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일본은 굉장히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베이직하면서도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내에서도 준결정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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