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소 출신 이병령유성구청장...과학자 1% 진출론 역설

"과학자들이 무시당하는 것은 힘이 없어서입니다.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에요.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과학자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해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유성구청장에 재선된 이병령 구청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과학자 출신이다.

27일 집무실에서 만난 이구청장은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탓인지 약간 피곤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과학자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과학자들의 처지에 대한 질문을 하자 목청을 높였다.

이 구청장은 "지금 대덕밸리에는 1만5천여명의 과학자가 있는데 이 가운데 최소 1% 정도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특히 정치나 행정, 언론 분야 등으로 진출해야 과학자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1% 진출론'을 역설했다.

과학자 사기진작과 관련해서 그는 "안정적인 연구분위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지원과 동기 부여가 최우선되어야 한다"면서 "정권이 바뀔때마다 흔들거리는 과학정책 구도로는 결코 과학자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구청장은 이밖에 대덕밸리의 과학자간 연계문제, 과학자와 벤처기업인과의 연계, 대덕밸리 투어,의회와의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재당선된 소감은. "몇 차례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 선거만큼 어려웠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월드컵이다 뭐다 해서 선거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아무튼 다시한번 선택을 해주신 구민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유성구청의 최대 현안은 무엇인가.

"(한숨을 쉬고 손가락을 유성구청 길 건너편에 조성된 택지를 가리키며)저 건너편에 대규모 '러브호텔' 단지가 들어선다. 지금 1백8개 규모인데 앞으로 최소한 1백개는 더 들어설 예정이다. (흥분하면서)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완전히 관광유성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음란특구', '러브호텔 특구'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러면 유성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지금 첨단과학도시라는 대전의 이미지도 먹칠을 하게된다. 대전시는 왜 이런식으로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업자들이야 돈버는 기회이니까 계속 주장하지만 시청에서는 업자들 편을 들어주는 등 동조하고 있다.벌써 30여건의 러브호텔 신청이 들어온 상태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막아볼 생각이다."

-연구소 박사 출신으로서 한 구청장 2년을 해보니까 어떤가(이병령 구청장은 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 출신으로 한국형 경수로의 실무책임자로 유명하다)

"관료주의의 벽이 두텁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처음에는 너무 외로웠었다.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공무원들과 어울리기가 쉽지가 않았다.초기에는 사사건건 마찰이 일 수밖에 없었다.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일부 공무원들이 속으로 내가 떨어지길 바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구정방침이 '원칙에 강하자'인데... "무슨일이든 원칙이 서야 진행이 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소신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공무원들이 변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외국과 비교가 많이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공무원들은 국민들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They pay for me'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We serve them'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공무원 마음가짐으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근무 자체가 봉사라고 생각하면 주민들을 상대하면서 그 위에 군림할수 밖에 없게된다." -선거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공무원들간 줄서기가 이렇게 심한 줄을 몰랐었다. 지난 2000년 선거에서도 그랬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나 였다.

일을 해서 인정받는 분위기가 아니라 선거에서 인정받으려는 분위기가 일부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덕밸리 육성에 대해서 복안이 있나. "올초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ISO 인증을 도운적이 있다. 창업보육센터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실 구청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

대전시가 지금 여러 가지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한 범위내에서 지원할 생각이다. 벤처기업들의 지방세 문제도 해결해주었다.고민이 있으면 언제라도 좋으니 구청장실 문을 두드려 달라."

-대덕밸리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책은. "우선 공간을 하나 마련할 생각이다. 얼마전 대덕클럽 신성철회장과 만났다. 대덕클럽 사무실겸해서 지금 충남대 앞에 신축중인 건물에 과학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처음이라서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런식으로 하나씩 해나갈 생각이다. 기존 주민과 과학자가 만나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대덕밸리와 관련해 시와 의견 교환은 자주 하는가. "시청에서는 구청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안다. 존중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대목에서 대덕밸리 행사와 관련 통보 받는 것이 있나라고 물으니 이 구청장은 펄쩍 뛰었다. 제발 시청에서 알려주기라도 하면 구정에 도움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대덕밸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정기투어를 하는 방법은 어떤가. "일단 대전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기투어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다만 명분이 있어야 하고 실질적인 수요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들어 놓고 수요가 없으면 큰일 아닌가."

-2년뒤 국회의원 출마설이 나도는데.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라면서 운을 뗀뒤)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데 어떻게 2년뒤를 알수가 있나. 정권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한번 욕심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구청장직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아직 잊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메신저가 되려고 정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정치를 한 적은 없었다." -과학자들이 푸대접 받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다. 뭉쳐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모래알이다. 모두가 누가 해주겠지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치에 들어와 보니 이제야 조금 깨달았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입당제안을 받은적은 있나.(이구청장은 현재 자민련 소속이다) "(웃음으로 넘기면서)한나라당에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만 자민련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대선전에 어떤 식으로든 가부간의 결단이 날 것이다."

-29일 퇴임하는 홍선기 대전시장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대덕밸리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지방정부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대덕밸리라는 이미지를 창출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다만 내용면에서는 약간 불만이다. "

-과학자출신으로서 우리나라 과학정책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과학이 살수 있다. 과학자들을 페이퍼로 감독하려해서는 안된다. 과학자들의 사기를 높이려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주는 방법밖에 없다. 또 하나는 안정적인 연구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사는 나무라면 연구원은 안정을 먹고사는 조직'이다.

과기부의 과장만 바뀌어도 연구단지 정책이 흔들리는 식으로는 과학의 미래가 없다. 30-40년 동안 그래왔다. 흔들어도 괜찮으니까 흔들리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뭉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복안이 있나. "과학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야 하다. 스스로 개선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연구단지 과학자들이 1만 5천명인데 이가운데 1% 정도는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정치나 언론, 그리고 행정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

진행 = 대덕넷 이석봉 대표 factfind@hellodd.com 정리 = 대덕넷 구남평 기자 flint70@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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