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일본탐방단, 교토대 유카와 히데키 기념관 방문
학사 출신의 샐러리맨 노벨상 수상자 낸 '시마즈제작소'로

▲KISTI 일본산업탐방단은 최다 노벨 과학상 배출지인 교토대학의 유카와 히데키 기념관을 찾았다. 일본 첫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박사가 일본인들에게 어떤 희망을 줬는지 배울 수 있었다. (사진은 교토대 기초물리연구소 앞 유카와 박사 동상.) ⓒ2011 HelloDD.com

첫 일본인 노벨 과학자를 키워낸 곳이자, 일본내에서 지금껏 가장 많은 노벨 과학자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 바로 교토대학이다. 특히 첫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의 소식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해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일본 국민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그가 수상한 노벨상은 당시의 일본인뿐만 아니라 최근의 일본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과학 꿈나무들에게는 희망을, 교토대 학생과 교수, 임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유카와 박사에 대해 좀더 심도있게 알아보기 위해 탐방단은 지난 28일 오전 9시 교토대학에 위치한 유카와 기념관을 찾았다.

교토대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쿠고 기초물리연구소 소장과 사토 연구국제부장이 탐방단을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들을 따라 들어간 교정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묻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 설립 초기에 세워졌다는 붉은 벽돌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주변에는 최첨단 연구소가 위치해 있었는데, 건물들의 역사는 각각 다르지만 고전과 현대적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탐방단은 먼저 기초물리연구소로 들어가 유카와 박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그의 기념관을 둘러봤다.

유카와 박사는 1934년 중간자이론 구상을 발표하고, 1935년 '소립자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를 발표해 중간자의 존재를 예언했다. 이 연구는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유카와 박사는 이 연구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기념관은 기초물리연구소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유카와 박사가 1952년 교토대에 설립된 기초물리학연구소 소장시절 머물렀던 건물이 그대로 기념관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그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설명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그가 직접 사용했던 책,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논문의 첫 장, 직접 그가 수필한 에세이 등도 함께 눈길을 끌었다. 유카와 박사의 에세이 '여행하는 자(타비비토)'는 그의 인생 일대기를 담은 책으로 1966년 5월에 쓰여졌다.
 

▲(상)유카와 박사가 쓰던 소장실.  그가 사용했던 책들이 그대로 보관 돼 있다. (하) 유카와 박사가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책. 영문으로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칸에 메모가 가득하다. ⓒ2011 HelloDD.com

더 안쪽에 들어가니 큰 책장에 다양한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쿠고 소장은 그 중 하나의 책을 꺼내들었다. 유카와 박사가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책이었다. 책은 영어로 되어 있었고, 유카와 박사의 꼼꼼한 메모가 책의 빈칸을 메우고 있었다.

탐방단은 그가 직접 사용한 책을 보며 어릴 적부터 공부에 열정을 가진 그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유카와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국외 학술지 보다 국내 학술지에 게재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실력 하나로 일본의 학술지를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오기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어가지만 그를 찾는 일본인, 그리고 교토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의 발걸음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유카와 박사의 노벨상 수상은 2차 세계대전에 패한 당시의 일본인뿐 아니라 많은 기초연구자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교토대 오피스 매니저인 니시무라 씨는 "기념관은 평일에도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직접 기념관을 찾아 토론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방을 따로 마련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필요성과 자부심 등을 느끼고 학업에 더욱 전념한다. 학생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그를 공부 한다"고 설명했다.
 

▲(위)유카와 박사가 파이중간자의 존재를 예언하면서 나온 pion 식.  (아래 시계방향으로)그가 쓴 에세이 '타비비토',   노벨수상논문, 그 외 상장,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연구 논문 첫페이지 등. ⓒ2011 HelloDD.com

◆ '과학기술로 사회에 공헌하자'…노벨상 수상자 배출 기업 '시마즈 제작소'

시마즈 제작소의 주임연구원 다나카 코이치는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얻는다. 그는 '연성 레이저 이탈 기법'으로 단백질 같은 고분자 물질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대학이나 유명 연구소가 아니라 제조회사의 일개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과학이론을 정립했고 또한 그것이 노벨상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다나카 연구원은 전기공학과 학사 출신 연구원으로 노벨상 수상자 중 유일하게 대학원 경력이 없다.

그러한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과학기술로 사회에 공헌한다'라는 사훈을 가진 '시마즈 제작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마즈 제작소가 어떤 기업이기에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냈을까. 탐방단은 시마즈 겐조가 1875년 창업해 12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시마즈 제작소의 '교토식 경영'을 배우고 특별한 생산라인을 직접 보기위해 현장을 찾았다.

시마즈 제작소는 현재 분석계측기구와 의료용기구, 항공기구, 산업기구 4개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시마즈 제작소는 향후 20년을 내다보며 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기업이다. 연구원들은 스스로 연구테마를 정하고, 연구비까지 자기가 책정한다.

다나카 고이치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시마즈 제작소는 연구에서 비롯되는 실패에 대해 묻지 않았다. 실험의 실패는 연구비의 낭비와 직결되나 3~5년 후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해도 좋다, 연구 예산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회사 방침이 있었기에 상을 탈 수 있었다"라고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교토 중심 나카교구에 위치하고 있는 시마즈 제작소 본사에 도착한 탐방단은 시마즈 제작소 관계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높지 않은 낮은 건물, 깨질 듯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창문 등이 그리 세련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마즈 제작소의 제품 생산라인과 주력상품이 전시돼 있는 쇼룸의 다양한 의료 기기들을 보는 순간 건물의 외관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쇼룸에는 다양한 X-선 촬영장비가 놓여있었는데 그 이유는 시마즈 제작소가 X선 촬영장비 제작에 남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

아버지 시마즈 겐조의 뒤를 이어 시마즈 제작소를 물려받은 시마즈 겐조 Jr(아버지와 이름이 동일해 그를 호칭할 때는 Jr을 붙임)는 초등학교 1학년밖에 공부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발명가로 '일본의 에디슨'이라고 불렸다. 그의 최고의 작품은 1896년 일본 최초의 뢴트겐. 이는 1895년 독일의 뢴트겐 박사가 처음으로 X선 촬영에 성공한지 불과 10개월의 차이밖에 안 난다.
 

▲(상)사람의 뼈로 만든 인체모형. 제대로된 X-선 촬영장비를 제작하기 위해 실험용으로 제작했다.  (하)시마즈 제작소에서 만든 X-선 촬영장비. ⓒ2011 HelloDD.com

쇼룸을 조금 더 둘러보니 실제 사람 뼈로 만든 인체모형이 간이 침대위에 놓여있기도 했다. 굳이 쇼룸에 사람 뼈가 있어야하는지 궁금했다. 시마즈 관계자는 "제대로 된 X선 촬영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뼈로 실험하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심장과 뇌, 혈관 등을 볼 수 있는 장비 등 시마즈 제작소를 대표할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 돼 있었다. 분석계측기구와 의료용기구 등 생산라인도 직접 살펴봤다. 생산라인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퀴가 달린 작업대와 이동이 가능한 장비들. 시마즈 제작소 관계자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에 의뢰해 생산라인을 체계적으로 바꿨다.

재고에 맞춰 물건을 제작할 수 있도록 했는데 주문이 들어올 때 그 수량만큼 만들 수 있다. 먼저 액체를 분석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라인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자 색색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작소 관계자는 "모자색마다 하는 일이 다 다릅니다. 녹색 모자를 쓴 사람들은 하나의 기계를 만들 때 들어가는 부품을 세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산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부품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도록 분업체계가 돼 있죠"라며 "제품을 다 만들었는데 부품이 하나 남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으로 제품을 만든 것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탐방단은 생산라인을 둘러보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생산라인과 사무직을 보는 사무실이 한곳에 붙어있던 것. 시마즈 제작소 관계자는 "생산라인과 사무실이 칸막이 없이 붙어있는 이유는 갑작스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생산라인을 둘러본 후 탐방단은 시마즈 제작소 창업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창립기념관은 설립당시 공장을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화학기기와 의료용 X-선 제품을 시작으로 일본 근대과학기술발전과 함께 성장한 시마즈 제작소의 개발 제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자료 약 600점을 일반 공개하고 있다.

▲시마즈 제작소 창업기념관에 전시된 제품들. 초창기에는 어린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 교구 제작에 힘썼다. ⓒ2011 HelloDD.com

탐방단은 기념관 관계자의 인솔을 받아 시마즈 제작소의 개발 제품설명과 함께 기업의 역사 등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념관에는 어린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주기 위해 제작한 다양한 과학교구들을 직접 실험해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 탐방단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교구를 만지며 과학에 대한 원리를 다시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 향후 20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에 투자를 한다는 시마즈제작소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어제와 오늘 얻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20년 전에 투자한 결과 인 것이다. 우리의 오늘과 미래는 어떤지를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KISTI 차세대 연구환경 개발실 - 김영진 # 이번 탐방에서 실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투자와 기다림'이라고 하겠다. 한국을 떠나며 계속 머리를 아프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와 일본의 과학분야에서 비교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에 대한 아픔이다. "정부는 연구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연구자는 정부에게 무엇을 보답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부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다. '투자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일본 R&D분야의 특징, 인류에 공헌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기업가들의 철학을 돌이켜 볼 때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연구의 자유로움이 도덕적 해이로 지적받고야 마는 우리의 현실이 가슴 아프다. 연구자를 포함해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가치체계를 새로이 재정립해야 할때가 아닌가 가늠해본다. KISTI 정보화전략팀 - 정택영

▲시마즈 겐조Jr이 제작한 렌트겐. ⓒ2011 HelloDD.com

▲시마즈 기념관 입구 모습. ⓒ2011 HelloDD.com

▲중간자론을 형상화한 '친자상(親子像)'. 유카와 박사의 친구인 동경예술대학교 키쿠치 교수가 그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 만들었다. ⓒ2011 HelloDD.com
<교토 = 김지영, 이재택 기자> orghs12345@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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