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수 자원연 박사, 폐전지 안정적 재활용 시스템 완성
프론티어사업 이후 '우수유망기술도약지원사업' 통해 2년 후속 연구
"시장 예측 상용화 연구 어려워…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산업기술을 연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미래 시장을 예측한 원천기술 연구는 처음이었습니다. 덕분에 급변하는 시장 환경을 제대로 읽지못해 눈물을 머금고 2번이나 연구 방향을 바꿔야 했죠.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과제는 재활용기술 선진국가인 일본에서 기술이전을 요청해왔고, 사장될 뻔했던 그 전 연구결과도 국내 기업에서 기술이전을 검토 중입니다. 전화위복이 됐죠. 무엇보다 제가 많은 경험을 해서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연구주​제들입니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날도 손정수 박사는
국내 전기자동차, 대용량 2차전지 제작 기업들의
담당자들을 초청해 비공개 워크숍을 개최할
정도로 폐전지 재활용 기술 연구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2011 HelloDD.com
손정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 금속회수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지난 10년간 폐건전지 속에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자원재활용사업단을 통해 각종 폐전지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를 진행해왔기 때문. 그는 산화은전지·망간전지·리튬1차전지·리튬이온2차전지 등의 폐전지로부터 코발트, 망간, 아연 등의 금속을 친환경적으로 회수, 이들을 활용해 황산망간·황산아연·황산코발트 등 고부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최근엔 모두 실용화 단계로 이어졌고 특히 2차전지에서 코발트를 추출하는 기술은 향후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에도 쓰일 수 있어 관련 연구를 함께 하자며 여러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처치곤란한 골칫거리가 있었다. 바로 망간전지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사용되는 6억개의 일차전지 중 80%가 망간전지고, 무게로 치면 20,000톤에 육박해 단순 소각·매립하게 되면 환경에 큰 부담을 준다.

때문에 EU에서는 2003년부터 모든 전지를 재활용하는 것을 의무화했고, 우리나라도 2008년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에 망간전지를 포함시켰다. 문제는 망간전지의 주 재료인 망간·아연은 가격대가 낮아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봐야 경제적 효용이 떨어진다는 것.

추출하는 과정을 단순화해 공정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채산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 손 박사는 공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추출한 망간·아연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를 처음부터 결정짓는 방법을 택했다. 목표물질로 바로 만들어져야만 중간 공정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사례들을 살펴보니, 망간이나 아연 제련소에 그냥 집어넣는 경우도 있었고, 일본에서는 놀고 있는 수은광산에 망간페라이트(ferrite) 원료를 만드는 재활용공장을 지어 운영 중이었다. "망간페라이트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부품이었습니다. 일본 공장도 가서 보고 사업성도 따져보니 잘 만들면 부가가치가 높은 공정을 만들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망간페라이트 만드는 걸 개발했는데 결과가 아주 잘 나와서 흡족해하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LCD와 PDP가 출시되면서 빠른 시간에 텔레비전 브라운관 시장을 잠식하더군요. 한 달 만에 사업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아주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폐전지 빙산의 일각. 국내에서 연간 배출되는 폐전지의 양은 2000톤이 넘는다. 재활용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단순 매립, 소각을 하기 때문에 환경에 큰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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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연구팀이 방향을 전환한 건 망간·아연페라이트. 반도체, LED 등 텔레비전 말고도 용도가 다양해 시장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기존의 분쇄방식이 아니라 용액상태에서 나노입자의 결정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최종제품의 품질이 기존보다 월등했다.

이번엔 시장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중국이 산화철 분야의 모든 시장을 독점했다. 공장이 모두 중국으로 옮겨갔고, 국내 전문가들은 모두 그 분야를 포기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은 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손 박사는 결연한 의지와 각오로 세 번째 도전을 했다. 이번엔 폐건전지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연구를 따라하지도 않고, 누구도 하지 않는 분야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것이 가축들 먹이와 비료에 미네랄 첨가제로 쓰이는 황산망간, 황산아연 제조. 인광석을 수입해 만드는 인산비료에서 착안했다.

또 황산망간·아연은 국내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모두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영향을 줬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결과는 소위 말하는 '대박'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이 모두 총집합해 완성도가 뛰어났고, 제조된 용액을 증발, 건조시키기 때문에 공정 과정에서 폐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폐수발생 없이 폐망간전지를 재활용한 손 박사의 기술은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에코프로세스(eco-process)로 최근 국제 학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 중 하나가 됐다. 국내에서는 청정 지역인 전라북도 임실에 위치한 (주)에코닉스에 기술 이전해 사업화가 진행 중이고, 자원재활용 분야 선진국인 일본의 노무라흥산(野村興産)에서도 기술이전을 희망했다.

노무라흥산은 현재 손 박사의 기술에 만족해 국내 참여업체 측에서 제시한 이전료 120억 원을 검토 중이다. 폐건전지에서 황산망간·아연을 추출하는 것은 손 박사가 세계 최초다. 일본과 미국에 국제특허를 냈다.

제일 비싼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시장을 모두 점유하는 재활용 분야의 특성상 앞으로 기대 수익이 더 크다. 그는 "한 번도 상용화되지 않은 폐기물 재활용 과정을 만들다 보니까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경제성 없는 것을 사업화 하려다보니 10년도 길지 않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10년으로 끝나는 연구 없어…사업화, 심화연구 등으로 할 일 더 많아져"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진행한 10년의 연구는 손 박사에게 더 많은 새 과제를 남겼다. 어떠한 의미에서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됐다. 먼저 폐망간전지를 재활용해 황산망간·황산아연을 생산하는 기술은 지난해 6월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후속 지원 사업인 '우수·유망기술 도약지원사업'에 선정돼 상용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기존 지원사업을 통해 공정을 확립해 기업에 기술이전했지만, 재활용분야의 산업체들이 자체 연구개발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기업이다 보니 공정 표준화와 설비 개선 등을 위해서 연구기관의 도움이 절실했다. 손 박사는 1차 연도에 연간 300톤을 처리할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를 운전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고 공정을 개선, 매뉴얼 작업을 진행했다.

2차 연도에는 일본·동남아 등 해외제품을 테스트하며 기술의 해외수출을 도모하고, 황산망간·아연의 구매처에서 요구하는 입자크기, 불순도 등을 반영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손 박사는 "재활용연구사업을 하면서 배운 것은 수요가 많지 않으면 원료인 폐전지를 처음엔 돈을 받고 처리하다가 나중엔 돈을 내고 사와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하나에만 종속돼 있으면 업체가 문을 닫기 쉽기 때문에 후속 제품 개발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산화망간이 질소산화물 제거하는데 효과가 탁월한 것을 활용해 탈질촉매용 이산화망간 제조 연구를 2차 연도에 대학교수들과 같이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이전 업체에 구축한 폐전지 재활용 시스템의 전경.  ⓒ2011 HelloDD.com

리튬이온전지는 10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식경제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지원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한다. 전기자동차의 전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내용이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는 휴대폰보다 100배 이상의 대용량으로 재활용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유가금속의 양도 그만큼 많다.

또 LG·삼성·SK 등 국내의 관련 분야 제조기업들이 현재 원료를 외국에서 전부 수입해 오고 있어 재활용기술이 개발되면 수입대체의 효과도 크다. 해당 연구도 내년에 파일럿 플랜트를 짓고 상용화 연구를 진행한다. 예상 밖의 반가운 소식도 있다.

폐망간지로 망간·아연페라이트를 만드는 기술은 기껏 연구했으나 수요가 없어 포기해야만 했던 분야다. 그러나 최근 한 업체에서 찾아와 해당 기술을 문의했다. LED와 풍력발전 등 여러 군데에 쓰이는 망간페라이트를 제조하는 기업이었는데 연구팀에서 개발한 것이 조성과 크기, 결정 등이 본인들이 기존에 만들던 것보다 월등하다며 기술협력을 요청해온 것. 따로 연구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함께하던 참여업체를 연결해주고 손 박사는 기술개발과정에서 자문을 담당할 계획이다.

"프론티어사업이 시작될 때 무슨 연구를 10년씩이나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는 10년을 한 주제 가지고 해보니 이제 그 분야에 조금 눈이 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금은 외국에 나가서 굴뚝 하나만 봐도 대충 압니다. 담당자랑 짧게 얘기 나눠보면 무엇을 연구하는지 다 알 수 있고요. 상대도 제 수준을 간파하고 말하는 게 달라집니다. 연구원들에게 한 분야에 꾸준히 연구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최근엔 어디를 가도 연구소재가 보이고, 연계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며 "연결시킬 수 있는 게 끝도 없이 나온다"고 말했다. "에코마이스터라는 기업이 제철소에서 나오는 슬래그를 이용한 친환경 신소재인 PS볼(Precious Slag Ball)을 개발해 신기술인증 받은 게 90년도 중반입니다. 2000년도엔 장영실상도 받았죠. 하지만 사업화가 된 것은 2005년입니다. 현장에 설치하고 실제 수익이 창출되는데 10년이 걸린 거죠. PS볼은 현재 중량재, 도로포장재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각광받고 있습니다. 폐전지 분야의 기술도 반드시 사업화의 결실을 맺도록 긴 흐름으로 노력할 계획입니다."

◆"자원재활용 분야는 수요자가 개발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현재 환경부의 신규 중장기연구사업으로 글로벌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에 재활용분야가 선정되어 8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업 역시 경제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다. 손정수 박사는 자원재활용분야의 기술상용화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며 연구개발 과정에서 여기에 대한 타개법도 같이 강구돼야 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재생종이를 만들어도 소비자가 쓰지 않는 것이 그 예"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첫째, 수요자가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해 원료에 대한 보안이 이루어져야 하고, 둘째는 훌륭한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기물을 이용해 비료나 사료를 만들어서 작물과 소에게 먹이는 것에 대해 소비자가 거부감을 가지면 사료업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부가가치 산물 제조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소재업체들이 어떤 원료로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수요업체가 연구개발사업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전체공정을 모두 다 알고 가장 마지막을 담당하는 수요자가 반드시 참여해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해야 상용화가 가능합니다."

손 박사는 "소비자들에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의 사용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가격경쟁력이 있는 공정을 개발하고 더 나은 품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원재활용기술은 환경 뿐 아니라 소비자도 함께 연결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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