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산업화⑥]눈높이 맞추기 요원…'국내외 네트워킹'이 해답

"미국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지 몰랐습니다. 2~3년, 길어야 5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직업을 찾을 수 없고, 미국이 보수나 조건이 더 좋아서 머무르고 있습니다."(UCSF의 A 박사)

"처음에는 학벌·성별 차별도 없고 분위기도 좋아서 계속 있고 싶었는데, 오래 있어보니까 한계가 느껴져 한국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국쪽 일자리를 계속 찾아보고 있습니다."(스탠포드의 B 박사)

"최근 저희 연구소가 예산을 삭감하는 통에 일자리를 잃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지금 한국에 가면 전교 꼴찌를 하고 적응도 못한다고 하더군요."(RTP의 C 박사)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한 번 놓쳤더니 이후에는 가기가 쉽지 않네요. 여기선 둘째 아이를 낳고 3년 이내에 들어가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간다는 말도 있어요. 기러기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잖아요."(미국 제약회사의 D박사)

한국 제약업체들은 재미과학자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지만 정작 재미과학자들은 여전히 '한국에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 국내 업체들이 원하는 해외연구소나 글로벌 제약사 근무 경험이 있는 한인 연구 인력들은 최고 대우의 채용 조건이 부담스럽고, 간혹 조건을 다 들어준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는 가족이나 아이 교육 문제로 귀국을 꺼려한다.

제약사 경험을 쌓았을 정도의 연령이면 이미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한참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재미과학자들은 학교나 정부출연연구원에 자리를 구하고 있는데 해당 분야는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대부분이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정규 직업을 찾아보는 시기의 30대 초중반 과학자들이거나,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낸 50~60대 박사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은 일 할 자리가 없다고 하고, 제약업계는 일 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만 양쪽의 입장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당장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을 듯 하다.

◆ 재외 과학자들은 국가의 자산…동아줄 '끈'을 잇자

바이오·제약 분야는 각국마다 규제가 달라 산업 자체가 진입장벽이다. 때문에 바이오산업은 마케팅·상품화 단계에서 적용해야 하는 정보들이 '암묵지(tacit knowledge)'로 통한다. 직접 그 안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우리나라가 바이오산업화를 위해 외국 연구소·제약회사의 한국인 R&D 전문가들에게 목매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이 당장 그 사람들을 최고의 조건으로 데려와 채우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가뜩이나 치열한 미국의 산업 환경에서 아직 한인과학자들의 위치가 공고하지 않은데 주요 위치에 오른 한국인들을 영입할 경우, 자칫 미국 내 한인과학자들의 기반이 흔들릴 수 것이 그 이유. 또 모든 인력을 해외에서 채우다보면, 국내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선 미국에 반드시 가야하는 것처럼 인식이 생겨 자의반 타의반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국외 과학자들 간의 네트워킹을 구축하고, 국내와도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실제로 국내외에서 이미 도입되고 있는 방식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디아스포라 네트워크(Diaspora Network)’는 해외로 이주한 전문가, 과학자, 기술자들을 두뇌유출의 개념이 아니라 ‘두뇌순환’으로 파악한다. 이들이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모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네트워크 자체를 국가적 자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외국에 나가있는 많은 인재들은 국내의 인재들과 비교하면 양적인 측면에선 작은 일부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모국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조건 하에서 교육과 전문적 실습으로 훈련받은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질적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에는 자국의 학생이나 연구자들이 외국에 가서 실험을 수행하도록 부추기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해당 학생의 논문은 두 나라 모두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상호협정을 체결하고, EU프로그램을 통해 타국의 실험실과 연계시켜 연구원을 상호교환하기도 한다.

또 두뇌유출을 가장 많이 겪는 나라 중의 하나인 인도는 'TiE(The Indus Entrepreneurs)'라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통해 실리콘밸리 기술경영인 출신의 경험 많은 인도인이 동포를 멘토링하고, 네트워킹과 학습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Red Caldas(Network of Colombian Research Abroad)'라는 과학기술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와 해외 콜롬비아 과학자들 사이에 협력연구를 진행하도록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높은 수준의 기초 분야 연구력을 산업화하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인 국내 바이오계에 필요한 것도 이러한 접근 방식이다. 이미 미국에 정착한 한인 과학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이며, 특히 이러한 네트워크가 국내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더욱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 젊은 과학자들은 성공적으로 높은 단계까지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들이 쌓은 경험들은 교육이나 컨설팅을 통해 국내로 받아들이는 것.

또 향후 바이오 시장의 규모가 커졌을 경우 이들이 보다 거리낌 없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미리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국내 바이오산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재미과학자들이 국가적 자산임을 주지하고, 국내외의 단단한 네트워크를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할 때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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