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이 국가의 보물-③]정용환 원자력연 박사
"차세대 원전 핵연료 소재 개발의 큰 틀 잡겠다"

1991년 독일 원자력기업 KWU(프랑스 아레바에 흡수통합된 독일 굴지의 원자력 기업)의 실험실. 독일 기술자들이 실험실 한켠에서 원자력 발전소용 핵연료 피복관 소재에 대한 성능 시험을 하고 있었다. 그 현장에 한국의 한 원자력 과학자가 끼어 있었다. 물론 연구에 참여했던 건 아니다. 우연하게 그 실험 광경을 목격했을 뿐이다. 당시만 해도 IAEA(국제원자력기구) 장학생 제도가 있어 연구현장 우수 두뇌들이 원자력 선진국가에서 연수할 기회가 있었던 덕분이다.

선진 원자력 기술을 배우러 독일로 파견나간 한국의 과학자는 핵연료 피복관 소재 연구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참여할 수 없었다. 소재 연구에 끼워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귀동냥, 눈동냥도 허용되지 않았다. 독일 기업측 입장에서는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넘보고 싶어하는 한국 과학자에게 소재 연구의 비밀 풀이를 허락할 리 만무했다.

원자력 발전용 소재 연구는 발전소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개발도 어렵고 신약 개발처럼 검증 시간이 많이 걸려 원자력 원천기술 연구의 꽃이라 불린다. 원전에서 사고가 났다하면 재료가 깨져 발생하는 사례가 많은 것만 봐도 원자력 핵연료 소재 연구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원자력 핵심소재 원천기술을 갖지 못한 서러움 속에서 이를 갈던 그 과학자는 2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핵연료 피복관 소재의 국산화 주역이 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정용환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년 전 한국 대표로 독일 연구연수를 떠나 한국 핵연료 소재 국산화 연구에 눈을 떴고, 그로부터 20년만에 연구의 결실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무시당하면서 '우리도 언젠가 핵연료 피복관 소재를 개발해 내야지'하고 마음먹었던 꿈을 이뤄낸 것이다.

정 박사는 "20년 넘게 원자력 핵심소재 하나의 토픽을 연구한 나는 행운아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며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연구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 "한국에서 피복관 개발? 우리 자신도 두려워 했죠"

독일 연수를 마치고 1993년 원자력연으로 돌아온 정 박사는 곧바로 핵연료 피복관 소재 국산화 연구 프로포절을 연구소에 제출했다. 나름대로 오랜 고민 속에 국산화 연구 착수를 시도한 것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연 우리가 피복관 소재를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거대 기업도 수십년 걸려 해냈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는 자조섞인 비판도 들렸다. 그렇다고 푸념하진 않았다. 정 박사가 생각하기에도 사람들이 아직 걸어보지 못한 도전적 연구과제이기에 그런 반응이 나오겠다 싶었다. 언젠가 때가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HANA 피복관. ⓒ2011 HelloDD.com
1997년이 돼서야 핵연료 피복관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 소재 개발은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완료했다. 실험실에서 3년만에 끝났다. 중성자 방사능에 노출돼도 잘 깨지지 않는 지르코늄 성분과 주석, 철 크롬 등을 조합해 새로운 피복관 소재를 개발했다. 우리 손으로 개발한 피복관을 HANA(High performance Alloy for Nuclear Application)라고 이름 지었다.

문제는 제품화 단계에서 불거졌다. 정작 제품 만들 곳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 유럽 현장을 쫓아다니던 중 결국 일본의 한 회사가 도움을 줘 제품 성능을 평가할 수 있었다. 평가 결과 외국산보다 부식저항성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났다.

바로 국내 원자력 발전소에 투입할 수 있을까 싶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온 대답은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정 박사팀은 또 다시 외국으로 뛰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외국 발전소에서 성능 시험을 입증해 제대로 선보이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하다가 2004년경 노르웨이 할덴(Halden) 연구용 원자로와 인연이 닿았다.

4년간 성능 시험을 거친 결과 HANA가 외국의 신소재 피복관 대비 50% 이상 부식저항성이 뛰어났고, 노내성능도 외국 피복관 보다 40%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쯤되자 한수원도 정 박사팀의 끝없는 도전에 손을 들어줬다. 국내 상용 원전에 HANA 장전 시험을 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2007년부터 1·2단계에 거쳐 HANA를 각각 30개, 60개 정도 영광 원전 1호기에 장전해 5년간 연소시험을 펼치고 있다. 오는 6월경이면 완전한 HANA 집합체(16×16)가 들어간다. 완전하게 성능이 입증되면 우리나라 표준형 원전에 HANA가 본격적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핵연료 피복관은 원자력 발전소 연료인 핵연료 핵심부품이지만 현재까지 국내 독자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 등에서 수입해 사용해왔다.

원전에 핵연료를 공급하는 한전원자력연료(대표 김기학)는 HANA가 상용화돼 2016년부터 원자력 발전소에 공급되면 연간 5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 박사는 "연구개발 보다 제품 만들어 상용로에서 검증하는 작업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며 "처음하기 때문에 신뢰할 시간이 더 걸렸다"고 연구과정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 차세대 원전형 신소재 개발 나설 것…TF팀 가동중

정 박사에게는 HANA 프로젝트가 끝이 아니다. '넥스트 HANA'를 구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원자력 강국들은 지금 2세대를 뛰어넘어 3세대 피복관을 경쟁적으로 개발중이다. 우리도 개발해 놓지 않으면 또 다시 우리 미래형 원전에 외산 소재가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정 박사는 "핸드폰이 빠르게 신모델이 나오는 것처럼 피복관 소재 역시 신형 원자로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내 남은 연구 인생은 미래 원전형 신소재 개발에 바쳐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미래 원전인 소듐냉각고속 원자로 등 지금 보다 차원이 다른 극한 환경에서 좋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피복관 소재 개발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이라며 "후배 연구자들이 원자력 분야에서 비전을 갖고 소재 연구를 연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 박사는 프랑스 아레바(AREVA)사와 5년간 법정공방을 벌인 HANA 피복관 관련 특허 무효소송에서 '특허가 유효하다'는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이로써 그의 꿈은 더욱 확실해졌다.

"세계 최대 원자력 업체에서 한국의 원천기술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기술의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한번 더 인정받은 셈이 됐다."

그는 "시대적으로 한우물을 파는 전문 연구자의 양성 노력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며 "한 분야에서 오래 있다보니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고, 외국 연구흐름 감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연구방향 설정에도 도움이 된 나의 사례를 비춰보면 한국 연구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한 우물을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이라고 강조했다.
 

▲HANA 피복관 관련 특허 무효소송에서 승소 후 찍은 기념 사진. ⓒ2011 HelloDD.com
 
◆ 다음은 정용환 박사의 특허소송 체험기

2010년 11월 1일 나는 박정용 박사, 3명의 원국제특허 변리사들과 유럽특허청이 있는 뮌헨행 비행기에 오른다. 연구원 생활 26년 동안 수많은 해외출장을 다녀봤지만 이번 출장처럼 머릿속이 복잡하고 부담스런 출장은 처음이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내내 특허와 관련된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지금 유럽특허청이 주관하는 특허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내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특허 소송에서 승소냐, 패소냐에 따라서 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갈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 어떤 심정으로 돌아올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HANA피복관 개발
이야기의 시작은 13년전으로 돌아간다. 우리 연구팀은 1997년부터 교과부 원자력중장기사업의 일환으로 핵연료피복관용 신합금 개발 연구를 시작한다. 연구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지금까지 원자력 선진국에서 개발한 어느 신합금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는 우리 고유의 신합금을 개발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원자력 소재분야에 최초로 독자기술로 개발한 HANA(High performance Alloy for Nuclear Application)합금이다. HANA 소재로 만들어진 HANA피복관은 3년의 실험실 평가와 4년의 노르웨이 Halden원자로에서 노내 성능 평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2007년 11월에 영광 원자력발전소에 장전되어 최종 노내 연소시험을 수행한다.
지난 3년동안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소시험 한 결과 HANA피복관은 외국 제품보다 40%이상 성능이 우수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특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운 소재의 조성과 관련된 특허, 그리고 어느 것은 제조공정과 관련된 특허 등을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등에서 약 30여건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특허권 확보의 마지막 단계로 HANA기술의 조성과 제조공정이 결합되고 상용화 대상 6종의 HANA합금이 모두 들어있는 HANA기술 종합본 특허를 2001년부터 한국, 미국, 일본, 중국에 출원하게 되고 차례로 특허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2년 7월 24일 유럽특허청에 출원한 HANA특허가 2004년 11월에 최종 등록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특허 전쟁은 시작되다
기쁨도 잠시. 우리는 2005년 8월 세계 원자력분야의 양대 산맥이며 유럽 원자력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프랑스의 거대그룹회사인 AREVA사로부터 기술전쟁의 선전포고를 받게 된다.
AREVA가 우리가 유럽에 등록한 HANA특허에 대해서 무효소송을 제기해 왔다. 처음 무효소송 통보를 받았을 때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왜 AREVA가 무효소송을 제기 했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까? 소장님과 본부장님에게는 어떻게 보고 해야 하나? 연구소내 다른 사람들과 HANA와 관련된 원전연료와 한수원의 관련 분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그동안의 경과를 정리하여 당시 정연호 본부장님과 박창규 소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두 분께서는 우리기술이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AREVA 같은 큰 기업에서 우리특허를 무효화 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건의 출원을 맡았던 원국제특허사무소와 해외 현지 대리인과 잘 상의하고 국내에서 이런 경험이 있는 기관이나 법무법인 등을 조사해서 철저히 준비를 해서 대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덧붙여 소송이란 것은 우수한 변호사 선정과 변호사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니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우수한 현지 변호사를 찾아보라고 격려해주셨다. 다행히 윗분들의 생각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인 반응이라 대처 방안을 찾고 단계적으로 대응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매우 큰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도 이런 격려에 대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3년 동안의 서류 공방이 오고 가다
소장님의 승인을 얻은 후 나는 차근차근 거대 회사와의 싸움을 준비해 나간다. 우선 이건 특허를 담당하고 있던 백종혁 박사에게 AREVA가 유럽특허청을 통해서 제기해온 50페이지가 넘는 이의 신청서를 철저히 분석하도록 지시한다. 우선 분석을 통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AREVA는 2개 일본 특허를 우리 특허와 철저히 비교분석하여 우리특허가 일본특허에 비해서 신규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우리 기술이 새로운 발명이 아니므로 특허를 무효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으로는 2개의 일본 특허에 추가하여 미국, 유럽, 일본에서 등록된 7개의 기존 특허를 우리 특허와 비교 분석하여 진보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기술은 기존에 모두 나와 있는 기술이고 기존에 나와 있는 선행기술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 특허는 신규성도 없고 진보성도 없으므로 반드시 취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특허는 기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매우 형편없는 기술이라는 것인데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원국제특허사무소와 1차 회의를 실시하여 원국제특허에서는 법률적인 대응방안에 대해서 준비하고 우리는 기술적인 대응방안을 준비한 후 AREVA의 이런 주장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참고 자료를 찾아서 증거자료로 제출하기로 협의하였다. 백종혁박사의 철저한 준비와 우리가 찾은 증거자료를 원국제특허에 송부하여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AREVA의 1차 이의 신청서가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펴는 60페이지의 답변서와 12건의 증빙자료를 만들어서 유럽특허청에 제출하였다. 우리가 철저하게 대응논리를 갖고 답변을 썼기 때문에 이 정도면 AREVA도 수긍하고 더 이상 이의 신청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싶었다.
답변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럽특허청이 주관하는 소송 경험이 있는 변리사나 기관에 대해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 노력해 보았으나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우리 연구소는 역사가 50년이나 되고 등록된 특허가 1300건이나 되지만 아직 한번도 특허 소송에 참여해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국제특허사무소는 그래도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특허 사무소인데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소송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국내의 유명한 법무법인에서조차 외국에 진출하여 소송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고 했다. 물론 일부 국내 대기업에서는 이런 경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내가 확인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참고가 될만한 선행 사례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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