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퇴직 후' 설문조사 결과
"56~60세 정년에 퇴직할 것으로 예상…경제적 불안이 가장 아쉬워"

정부가 과학기술인들의 전주기적 지원 시스템 구축을 통해 선진 연구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체감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퇴직 후 삶의 부분이 가장 열악하다. 1999년 외환위기 때 정부출연연구소들은 경영혁신 일환으로 책임급 61세, 그 외 58세로 연구원 정년을 낮췄지만, 경제 회복 후에도 65세로 환원되지 못하고 있다.

연구 환경 안정과 고급인력 활용, 과학기술인 사기진작 등의 차원에서 정년의 원상회복은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진전되고 있지 않다. 정부출연연구소를 기피하고 대학을 선호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도 퇴직시점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연구원들의 경우 대부분 내부 연구 활동만 한 덕분에 노후 준비에 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4년 과학기술인공제회(이사장 조청원·이하 과기공제회)을 통해 숙원이던 과학기술인연금(이하 과기연금)이 도입, 과학기술발전장려금을 기반으로 과기인들의 노후보장 제도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연금의 안정성을 위해 추가적인 연금재원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에서는 과기연금도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과 같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 가운데 과기공제회와 대덕넷이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퇴직 후’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기획, 시행했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퇴직을 위한 준비 실태를 파악하고, 국가 및 기관, 공제회에 바라는 제도 등을 조사한 이번 설문조사에는 총 2545명이 참가해 의견을 전달했다.

설문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52.0%), 과학기술분야 비영리기관(12.2%), 대기업연구소(10.4%), 정부부처(7.5%), 엔지니어링 활동주체(7.2%), 교육기관(4.8%), 중소벤처기업연구소(2.1%), 국공립연구기관(1.0%) 등에 소속된 연구직(53.3%), 기술직(27.0%), 행정직(15.2%), 기능직(2.6%), 임원(2.6%) 등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의 연령대는 40세 이하(34.9%), 41~45세(19.2%), 46~50세(17.2%), 51~55세(17.3%), 56~60세(9.7%), 61세 이상(1.6%)로 비교적 고르게 나타났다.
 

▲설문 참여자들의 일반사항 ⓒ2010 HelloDD.com

◆ 예상퇴직연령 56~60세…퇴직사유는 ‘직장의 정년’이 될 것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예상하는 조직에서의 퇴직 연령은 56~60세(45.9%)가 가장 많았다. 이어 61~65세(38.2%), 51~55세(8.3%)의 순으로 나타났다. 50세 이하 조기 퇴직을 예상한 경우도 5.3%나 됐으나, 65세 이상으로 예상한 비율은 2.3%에 그쳤다. 퇴직 사유를 예상해달라는 질문에는 과반수를 훨씬 상회하는 77.8%의 응답자가 ‘직장의 정년’을 꼽았다. 이어 ‘조직개편과 인원 감축(8.5%)’, ‘업무 외 개인적인 이유(6.9%)’, ‘연구 혹은 업무능력의 저하(4.6%)’, ‘기타(2.2%)’의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 참여자들의 예상 퇴직 연령과 예상 퇴직 사유 ⓒ2010 HelloDD.com

정부출연연구기관, 비영리연구기관, 대기업연구소 등 응답자 비율이 높았던 3개의 소속기관의 차이를 분석해본 결과, 대기업연구소에서 일하는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예상 퇴직연령이 가장 낮았으며, 이어 비영리연구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순으로 나타났다. 퇴직사유에서는 ‘직장의 정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답변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대기업연구소에서의 ‘조직개편 및 임원 감축’에 의한 퇴직이 다른 기관에 비해 2배 이상 높게 조사됐다.
 

▲예상 퇴직 연령의 기관별 비교 ⓒ2010 HelloDD.com

▲예상 퇴직 사유의 기관별 비교 ⓒ2010 HelloDD.com

◆ 퇴직 이후 경제적 준비는 “기본 연금에 의지”, 사회적 생활은 “유사분야 재취업할 것” 과학기술계 종사자들 중 퇴직 이후 경제적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71.3%. 이들 중 절반 이상(52.0%)은 국민연금과 과학기술인연금 등 기본적인 연금수당에 기대하고 있고, 노후에 대비해 개인연금보험과 은행예금 등을 마련하고 있는 비중은 23.7%였다.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 등을 통해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1.9%, 재취업 혹은 창업으로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도 11.1%였다.
 

▲퇴직 이후 경제적 생활에 대한 준비 ⓒ2010 HelloDD.com

응답자들 중 32.0%는 2개 이상에 복수응답, 기본연금 외에 개인연금이나 재테크 수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 이상의 수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후의 경제적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비중은 8.9%였다. 현재 국민연금과 과기연금 등 기본연금은 노후의 최저 생계비를 보장할 뿐 안정된 생활에는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 상당수의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안정된 노후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퇴직 이후 사회적 생활에 대한 준비 여부는 이보다 더 미흡했다. 60.4%에 달하는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따로 퇴직 이후의 활동에 대해 준비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준비는 ‘유사 분야 재취업 준비(31.2%)’, ‘기타(18.2%)’, ‘타 분야에 대한 수학 및 자격 등 준비(15.8%)’ ‘창업 준비(15.2%)’, ‘기업의 연구개발에 참여 준비(11.8%)’, ‘독자적인 기술 연마(7.7%)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퇴직 이후 사회적 생활에 대한 준비 ⓒ2010 HelloDD.com

◆ 퇴직연령 63~65세가 적정…“정년 연장, 과기연금 확충 희망”

그렇다면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희망하는 퇴직시기와 퇴직 후 삶은 무엇일까. 먼저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퇴직 연령은 63~65세(43.5%). 평균적으로는 63.9세로 나타났으며, 무정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9.7%나 됐다. 앞서 본인들이 예상했던 퇴직시기인 56~60세에 비해 최소 3년에서 8년은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본인이 희망하거나 기대하는 퇴직 시기에 비해 빨리 퇴직을 하게 됨에 따라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경제적 불안(51.4%)’으로 조사돼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들의 퇴직에 대한 의견 ⓒ2010 HelloDD.com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국가 및 기관차원에서 과학기술인의 퇴직과 관련해 도입해야 할 제도로는 7개의 보기를 제시해 중요도에 따라 1순위, 2순위, 3순위를 꼽도록 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 정년연장’과 ‘과학기술인연금 지원 확충’에 1순위와 2순위 선택이 집중됐으며, ‘석좌연구원, 자문연구위원 등 기관별 정년 후 연장근무제도 도입’이 뒤를 이었다. 이를 1순위는 3점, 2순위는 2점, 3순위는 1점으로 가산점을 부여해 수치화해 본 결과, ‘과학기술인연금 지원 확충’이 4193점으로 가장 높게 열망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어 ‘임금피크제 도입 후 정년 연장’이 4037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2010 HelloDD.com

이에 대한 주관식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은 과학기술인연금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과학기술인들의 노후를 보장해 줄 것을 원하고 있으며, 후배들을 위해 절대적인 숫자의 정년연장보다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보다 유연하게 연구조직을 운영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 지금이 과학기술인 정년 연장과 과학기술인연금 확충 등 여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임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았다.

이어 과기공제회에서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퇴직 이후를 위해 지원해줬으면 하는 서비스에는 ‘퇴직 후 경제적 안정을 위한 다양한 연금·보험·금융·재테크 프로그램 제공’이 1위를 차지했고, ‘기술분야 재취업에 대한 정보 제공’과 ‘퇴직을 대비한 건강관리 및 생애설계 교육·강연’이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해당 문항 역시 보기를 제시한 후 우선순위를 매기도록 하여 가산점을 부여, 점수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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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응답자들은 기타 의견을 통해 과학기술인공제회가 과학기술인 분야 종사자들이 퇴직 후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구심 역할을 해주길 당부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퇴직 후 희망하는 ‘제2의 인생’은 무엇일까. 해당 문항에서 역시 11개의 보기를 제시한 후 우선순위를 매기도록 하여 가산점을 부여, 점수화한 결과,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만큼 ‘현 조직에서 쌓은 업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혹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응답도 높게 나타나 과학기술계 종사자들도 타 분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불안만 해소된다면 퇴직 이후엔 치열한 연구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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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타 의견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바람이 표출됐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은 타 산업체에 비해 현격히 낮은 복지제도를 지적하고, 처우 개선에 힘써줄 것을 강조했으며, 무엇보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본인들의 분야에서 쌓은 높은 전문성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에 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줄 것을 희망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퇴직 후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특히 이번 조사를 통해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희망하거나 혹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비해 빨리 퇴직을 맞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인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과학기술인들이 퇴직 후 경제적 생활을 기본 연금에 의지하고 있음은 이에 대한 보다 확실한 지원이 필요함을 시사하며, 높은 전문성을 가진 과학기술인들이 퇴직 후 사회적 활동에 대한 계획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인들이 희망하는 대로 과학기술인연금 확충과 정년 연장 등을 실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과학자들에게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은퇴를 포함한 생애설계 교육을 실시하고, 퇴직 후 과학자들이 노하우를 전수하고 높은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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