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에 오른 직장 사표내고 20년간 글쓰기 한 우물
"청소년 위한 과학도서 발간 계속 할 것"

"최연소 임원에 오르며 직장생활에 성공했지만 아쉬움과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거든요.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잘 됐냐구요? 허~ 바닥까지 떨어지며 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10년이상을 꾸준히 하면 길이 보입니다."

주요 일간지에 4년이 넘게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잡지 연재글 150개, 신문칼럼 400개, 직접 쓴 과학관련 책 30권 이상 등. 과학기술 대중화를 위해 거침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을 만났다. 그의 작업실은 집이다. 집에서 일하는 이유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시작한지 올해로 19년째인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과 인터넷으로 공부를 한다. 5시에 다시 잠을 청하고 8시에 일어나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공부와 글쓰기에 집중한다.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공부와 글쓰기에 몰입한다. 그가 이처럼 글쓰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이 소장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한마디로 말했다.

◆가정 형편상 공학 전공했지만 원래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

이인식 소장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글을 잘 쓰는 소년이었지만 가정 형편상 취업 중심으로 공부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4년내내 입주가정교사를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원래 꿈인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끼는 숨길 수 없었나보다. 그는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했다. 이 소장은 어려웠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체육 과목에서 F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려줬다.

"대학 1학년때 체육을 하는데 그때는 체육복이 있었어요. 체육복을 입지 않으면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고요. 운이 좋은날은 기숙사 곳곳을 돌며 겨우 체육복을 빌려 입을 수 있었지만 못 빌리는 날이 더 많아 수업을 매번 빼 먹게 됐어요. 결국 F를 맞았죠. 다시 수강하느라 고생을 했고요."

졸업과 동시에 그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다른 사람보다 한시간 먼저 출근해 영어 공부를 했다. 또 사보에 콩트를 연재하고 상사의 권유로 이를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잠재된 그의 꿈이 살짝 고개를 든 순간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최연소 부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난 전라도 광주 출신인데 당시에는 지역 차별이 심했어요. 회사 분위기상 내가 부장이상 승진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고민 끝에 1982년 일진금속으로 1987년 대성그룹으로 옮겨 상무이사에 올랐지요." 그의 나이 43세였다.

회사생활에 성공했지만 그의 가슴은 답답해졌다. 자신의 꿈에서 멀어질수록 안타까움이 커져갔고 허탈했다. 그런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대성그룹으로 옮기면서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아폴로'의 한국 법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지사장을 맡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처음 약속한 내용과 달라 거절했지요. 당시 받은 자료 중 한참 이슈가 됐던 '고성능 컴퓨터'에 대한 내용이 있었어요. 이를 토대로 공부해 '컴퓨터 월드'에 기고했습니다." 그의 글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하나 둘 늘어났다. 이 소장은 "처음에는 내가 교수도 아니고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써도 될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또 내가 쓴 글이 부끄러워 어쩔줄 몰랐다"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이 소장은 매달 미국에서 발행하는 과학잡지 10권 이상을 구독해 공부했다. 컴퓨터 월드의 기획 기사를 도우며 글쓰는 작업도 지속했다.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후회하지 않아, 고시원 등록해 글쓰기 계속

1991년 46세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 하고 싶었던 과학 글쓰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퇴직금까지 다 털어 과학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모든게 바닥까지 떨어졌다. "돈이 없어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집에는 생활비도 줄 수 없었지요. 직장생활을 계속 했던 친구들은 연봉 1억원을 받고 있었지만 난 천만원을 벌기도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고시원에 등록해 과학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그의 열정과 집념을 아는 박종만 까치출판사 사장과 박은주 김영사 사장이 말없이 금전적 도움을 주며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줬다. 이 소장은 "모든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진리를 실감했던 시기였다"며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보다 우선되는 건 사람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그의 일도 줄었다. 연재하던 글이 거의 다 끊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에게 위로를 준 것은 글쓰기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고시원으로 출퇴근하며 공부하고 글쓰기에 전념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원래 가난하게 자라 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본의아니게 무능력한 남편에 아빠로 처참했습니다. 그래도 비상금을 깨 아내에게 생활비는 꼬박꼬박 줬습니다." 그는 지금도 휴대폰이 없다.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지만 어려웠던 시기 지출을 줄이기위해 마련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해졌다.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연결하는냐가 관건 "융합이죠"

각 분야의 책을 섭렵하며 공부하고 글쓰기를 계속하던 중 청소년을 위한 연재물이 인기를 얻으면서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원고 의뢰가 이어졌다.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한지 10년만이다. "어느 분야든 10년을 집중하면 방향이 보입니다. 그 분야를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가면 그들의 관계에 대해 알게됩니다. 좋게 말하면 융합이고 나쁘게 말하면 잡식이죠." 그는 일부러 모르는 분야를 선택한다. 모르는 분야라도 끈질기게 공부하고 노력하다보면 하나하나 자료가 쌓이면서 자신의 것이 된다. 그동안 공부하며 챙겨놓았던 자료들은 그가 일년에 책을 몇 권씩 낼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됐다. 그는 "최근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연구가 강조되면서 너도나도 융합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지식 융합은 각 분야의 지식들을 어떻게 엮는냐가 관건인데 19년동안 공부하다보니 방향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일년에 한권 내기도 어려운 책을 몇 권씩 내고 많은 강연을 한다. 지난해는 6권의 책을 냈고 강연만 30회를 넘었다. 올해는 가을학기부터 KAIST에서 '지식의 융합'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그가 쓴 '나노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자연 발효 화장실', '인공 창의성' 등 총 3편의 칼럼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최근에는 TV 방송에서 융합지식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 관심이 집중됐다.

이런 그를 두고 혹자는 잡학 지식의 대가라고 폄하한다. 일부에서는 그는 지식의 전문성을 인정할 석·박사 학위도 없다며 비난한다. 그가 쓴 글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로 인해 그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도 작지 않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제도권 교수들로부터 받은 견제는 말로 다할 수 없다"면서 "과학기술부가 해마다 50~60권의 책을 추천도서로 발표하는데 내 책은 단 한권도 들어가지 못했다. 책 대부분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몇몇 안티 교수들의 방해로 번번히 떨어졌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 소장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대중이 읽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중이 읽는 글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쓴다면 누구도 읽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두고 전문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로 인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걸 포용할 만큼 담담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인식 소장은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를 통해서도 과학대중화에 앞장선다. ⓒ2010 HelloDD.com

◆과학기술 대중화 위한 글쓰기 작업 계속 할 것

이인식 소장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 과학 전문 서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려운 용어들도 쉽게 풀어냈다. 과학기술하면 어렵고 딱딱한 내용이란 고정관념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일반인이 과학기술을 쉽게 알기에는 용어도 내용도 너무 어렵고 딱딱합니다. 실제 대중이 읽을 만한 과학기술 서적도 거의 없고요. 글을 쓸때 자연과학자는 물론 사회과학자, 일반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씁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정리하고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쓰기 위해 철저히 공부한다. 이런 노력위에 그의 글쓰기 실력이 더해져 대중에게 읽히는 책이 탄생한다. 그의 글 솜씨는 대학시절 단편집을 냈을 정도로 이미 인정받았다.

이런 자신을 그는 창작자라고 정의한다. 글을 만드는 일 자체가 창작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공부하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럼 연재시 토씨하나도 고치기를 거부한다. 이런 행동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는 원칙과 예의를 중시하며 오늘의 그가 있도록한 근간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이 소장은 "글을 쓰기위해서 공부를 하다보면 모든 학문이 연결돼 있다. 인지과학,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 등 여러 분야를 알아야 한다. 모든분야를 공부하다보니 융합이란 코드와 맞게 됐고 융합 글쓰기가 가능해졌다"고 말하며 "그래서 칼럼도 과학면이 아닌 교육면이나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칼럼면에 글을 싣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융합 지식 뿐만 아니라 융합 사회, 융합 뉴스 등 융합 르네상스 시대가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며 글쓰기에 전념하진 올해로 19년째인 이 소장. 지금은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 마케팅'을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었을때 걱정하던 지인들이 이제는 그를 부러워한다. 모두들 현업에서 물러나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소장은 어느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어려움을 함께해준 아내에게 가장 감사하고 또 많은 지인들의 격려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지난시간을 소회했다. 

여전히 매일 공부하는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앞으로 문명비판서, 미래예측서 등 써야 할 책 생각으로 머릿속이 벅차다. 이 소장은 선비 같은 성품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책 쓰기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현재 4권까지 선보인 어린이를 위한 '주니어 미래 지식사전'을 20권까지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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