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 전 청장, 지식재산 R&D 센터 설립과 국가 아젠다로
오원철 전 수석에게 전체보는 안목 배워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IPR). 문학 ·예술 및 과학작품, 연출, 예술가의 공연·음반 및 방송, 발명, 과학적 발견, 공업의장·등록상표·상호 등 산업재산과 문화가 가진 권리다.

정보 유통이 급속하게 이뤄짐에 따라 각종 정보와 기술문화가 쉽게 다른나라로 전달되면서 선진국들은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즉, 물건을 하나 만들면 몇개월 안에 똑같은 제품이 만들어 질 수 있어 이를 위한 보호가 필요한 것.

국가 간에는 보호장치가 되어 있느냐의 여부와 국가간 제도상의 차이로 분쟁 대상이 되면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두어 이를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1979년부터 WIPO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08년 지식재산 선진국 G5(한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의 일원으로 주도적인 입장에 섰다. 한발 더 나아가 IP5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인 실천방안까지 내놓으며 세계적으로 지식재산 강국의 위상을 확실히 했다.

또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 확보를 위한 방법론을 프로그램화 하고 이를 국가 아젠다로 발전시켜 총괄기관인 R&D특허센터를 만들었다. 이러한 성과를 내기까지 많은 이들의 역할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지난 4월 말일자로 제20대 특허청장의 임기를 마친 고정식 전 청장이 있었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테크노크라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지재권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등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2일 대덕넷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난 2년간 특허청의 수장으로 일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했고 보람있었다"고 말하면서 지나 온 시간을 담담히 소회했다.

KAIST 석사 재학시 아르바이트로 맺은 특허와의 인연, 지식재산권 본질에서 접근

▲고정식 전 특허청장. ⓒ2010 HelloDD.com

"앞으로 제조와 생산만으로는 경쟁이 안됩니다.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지재권 확보가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를 위해서 국가가 지식재산 R&D기구를 발족하고 실천가능한 방법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고정식 전 청장은 KAIST 석사과정 당시 특허사무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특허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이후 1979년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한 그는 에너지와 특허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고 이분야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보여줬다.

1994년에는 산업자원부 기술부 창설 멤버로 특허담당 과장을 맡았다. 이때 그가 내 놓은 신규사업은 '산업재산권진단사업'이다. 당시 특허청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이는 산업계를 위한 지재권의 효시가 됐다.

그런 그가 2008년 5월 20대 특허청장으로 부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특허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국가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지재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법론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한 것. 이전에도 지재권의 중요성은 강조돼 왔지만 HOW에 해당하는 방법론이 없었다. 구체적인 움직임도 없었다.

"실천에 앞서 직원들에게 우선적으로 한 일은 지재권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었습니다. 담당 국장들에게 이야기 하니 다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요. 각 국별로 한가지씩 맡아서 진행해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들 두개씩도 가능하다며 열정을 보였지만 우선 한가지에 전념해 줄것을 당부했습니다."

고 전 청장은 각 대학의 교수나 전문가들을 추천해 주고 그들에게 조언을 받아 계획서를 작성하라는 지시 이외에는 자발적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언론 홍보도 전혀 하지 않았다. 2009년 구체적인 안이 만들어지면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하기위한 19개의 시범사업을 대기업과 진행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에서 이를 받아들일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는 시큰둥했어요.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무슨 도움을 주겠느냐는 식이었지요. 그래서 초기에는 프로모션차원에서 무료로 했습니다. 기업들이 놓친부분을 전문가가 꼼꼼히 짚어가며 지적해주니 나중에는 담당 직원들이 서울에서 대전본청까지 한걸음에 달려오는 일이 많았어요."(웃음)

그는 의료부분 지재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이부분을 수익화 할 수 있도록 했다.

"한번은 한림공학원 특강에서 서울대 분당병원장이 강의를 하시더라고요. 가만히 들어보니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원을 보내 확인해보라고 했지요. 병원 간부진을 초청해 필요성을 알리고 지재권 제안을 같이 했습니다."

이후 이들 병원에서는 감사의 답례로 특허청 직원들의 건강을 챙겨주기로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재임기간 가장 큰 보람, 지식재산 선진국으로 IP협력체 구성과 국가 아젠다화

세계 무대에서도 그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2008년 세계 특허의 77% 이상을 차지하는 특허 강국들의 구성체인 G5 회의가 벨기에에서 열렸다. 기존에는 참석하는데 의미를 뒀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G5의 협력을 강력히 주장함은 물론 외국 특허청장들과 유대 관계를 돈독히 했다.

"우리나라는 특허 숫자는 많은데 내용은 부실하다는 인식때문에 다른 국가에서 살짝 무시한게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특허심사관 경쟁대회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나라 심사관들의 실력을 믿었기때문이죠. 그런데 중국 빼고는 다들 들은 척도 안했어요."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그해 10월 G5 회의가 제주에서 열렸을 때 다시 제안했다. 마침내 IP5 업무협력체가 구성됐고 경쟁대신 워크숍 형태로 대전에서 제 1회 회의가 열리게 됐다. 이자리에서 각국 심사관의 심사 노하우는 공유하고, 심사 절차 표준화, 최종적으로 특허 검색시스템까지 통합시킨다는 내용 등10개의 프로젝트 합의안이 만들어졌다.

이를 인증하기 위해 5개청의 대표들이 손도장을 찍었고 특허청에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일본과 특허심사하이웨이(Patent Prosecution Highway, PPH)를 추진해 성사시켰다. 이로써 국제특허 심사시 25개월이 걸리던 시간이 3개월로 단축되면서 특허 출원을 위한 서류를 줄이고 비용도 절감하게 됐다. 또 고 전 청장이 임기 중 가장 강조했던 일 중의 하나인 지식재산 전략의 국가 아젠다화.

그는 "지재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면서 "정부에서도 지재권의 필요성을 알고 적극 수용해 국가 아젠다로 정책을 수립하게 됐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현재는 이를 관리하기 위해 총괄기관인 R&D특허센터가 구성돼 있다. 국무총리실에 특허청 직원이 직접 상주하면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또 민간 차원에서는 지난해 3월 5일 산업계.과학기술계, 시민 사회단체 등 16개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지식재산강국 추진협의회'를 발족했다.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허진규 한국발명진흥회장 등이 모여 '지식재산 비전 및 실행전략'을 선포했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중국에서는 원자바우어 총리가 11차 전인대회에서 중국의 지식재산 인재양성 정책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지식재산권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전략이다"면서 "지재권 전략으로 R&D 전략을 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가 아젠다화로 지식재산 R&D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니 큰 그림속에서 장기적으로 진행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큰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피력했다.
 

▲지난 3월 'IP Wisemen Committee' 1차 포럼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2010 HelloDD.com

오원철 전 수석 밑에서 사무관 일 시작, 전체보는 안목 길러

"1979년 오원철 전 수석 밑에서 사무관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큰 행운이었지요. 당시에는 어렸기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전체를 보고 그 안에서 일을 해 나가는 안목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찾아뵙고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임 후 그가 가장 먼저 찾은 이도 오원철 전 수석이다. 고 전 청장은 "수석께서 그동안 잘했다고 한마디 해주셨는데 다른 어떤 말보다 감사했고 뿌듯했다"고 말하며 멋쩍어 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오 수석이 추진하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신과 명예 지키기 위해 자긍심을 가지고 일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테크노트라 출신답게 원전 에너지 등 여러지식을 예로 들어 차트 2개로 정리해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첫번째 차트는 시간에 따라 어떤 리소스를 어떤 순으로 투입해야하는지, 결과는 어떻게 나오는지를 정리했습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설득해야할 그룹들을 정리해 어떤 메시지를 어떤 경로로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얻고자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뭔지 입체적으로 정리해줬죠."

또 국가적으로 선점해야할 산업별 지재권 전략 청사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문가 인프라까지 후배들에게 전해줬다. 그는 "관료는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내가 이처럼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후배)들과의 탄탄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나머지는 후배들이 잘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고 전 청장은 재임 시 후배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허관련 공부를 당당히 할 수 있도록 국내 최고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도록 했다. 이에 대한 성과는 2009년부터 특허청 내 변리사 합격자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특허청 직원들은 매월 모의고사를 치렀다.

해외 근무 직원 선발시 G5개청 공동출원건이 있는 직원으로 한정해 1개월에 1번 영어로 발표하고 전문가가 심사해 선발하는 과정인데 고 전 청장과 직원들은 이를 '모의고사'라 했다. 그는 "이런식으로 하니 해외에서도 불만이 거의 없었다"면서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실력을 발휘할 무대 만들어지니까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끝으로 대덕에 대한 관심도 조심스레 표현했다. 그는 "초고령 사회에서 경쟁력은 IPR이다"고 조언하며 "기업들이 수십억원씩 창의자금을 출원해 펀드를 조성했다. 앞으로 세부사항을 잘 채워나가면 창업까지는 아니더라도 IPR만으로도 부와 명예가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런 사례가 대덕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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