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어도 본다"···눈의 한계 극복케 하는 분석장비

[KBSI분석과학시리즈①]연구장비개발부 초정밀광학팀편
분석과학(Analytical Science)은 연구 대상 물체를 관찰하고 측정하는 학문으로 화학·물리학·지구과학은 물론 IT·BT·NT 등 거의 모든 과학기술의 연구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분야이다.

세계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과반수가 새로운 분석법과 분석기기를 개발한 분석과학자 출신으로 분석과학은 노벨상 수상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세계적인 연구경쟁력을 확보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온 분석과학이야기를 앞으로 24회에 걸쳐 기획기사시리즈로 연재하여 분석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기초과학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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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구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까? 우주에는 무엇이 있을까? 존재의 신비를 풀기 위한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물질을 더 작고 기본적인 단위로 쪼개기 시작했다. 마치 구조와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 전자제품을 분해하듯 과학자들은 조심스럽게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관찰하기 시작했고, 20세기 과학사의 주된 화두는 환원주의 물리학과 분자생물학이 됐다.

20세기 과학자들은 더 작은 것까지 보다 정확히 볼 수 있는 분석기기들을 개발해 물질을 원자와 소립자까지 분해하고, 인체를 구성하는 유전자 25,000개를 규명해냈다.

나누고 가르고 해부하는 '분석(分析)'의 힘이 과학발전의 경쟁력인 시대가 된 것이다. 1901년 노벨상이 창설된 이후 22개의 노벨상이 분석과학기술 분야에서 배출된 것은 분석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방증이다. 21세기, 10억분의 1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나노(Nano)'의 시대가 열리며 분석과학은 과학기술 전 분야에 쓰이는 기반 학문이자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되었다.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크기의 '초미니' 조직에서 수많은 정보를 캐내고 이용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 때문에 생명공학·기계공학·화학·물리학·지구과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맞는 새로운 분석법과 분석기기가 필요하게 됐다.

최첨단 분석기술은 연구결과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며 분석기기 보유 빈부 격차가 연구력과 직결되는 요소가 된 것이다. 분석과학에서 중요한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핵심의 하나는 광학계 관련 기술들이다. 흔히 가장 친숙한 분석 장비 중의 하나인 현미경·망원경에서 광학장비의 비중이나 활용도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정보의 시각화, 혹은 시각정보의 객관화는 분석의 가장 기본이 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원장 박준택) 연구장비개발부 초정밀광학팀은 광학계를 연구 용도에 맞게 설계하고, 시스템에 맞게 장비로서 활용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즉, 각종 분석장비들의 개안(開眼)을 담당하는 것.

연구팀은 부품의 목적에 따라 구조물의 형태를 설계하고 '초정밀가공기술'을 활용해 구조물을 깎아 '눈'이 생명인 장비들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과 분석력을 부여한다. 우리나라 다목적실용위성과 과학기술위성 1·3호의 지상망원경용 근적외선 카메라시스템과 NASA로켓에 탑재된 적외선카메라시스템(CIBER), 360도 시각의 보안 카메라와 내시경용 광각 카메라 렌즈 등이 그들이 개발한 장비들이다.
▲우주 초기의 은하에 대한 연구 수행을 위한 미NASA의 CIBER의 적외선 광학계(좌)와 장락원 60cm 천체망원경에 들어간 반사경(우) 모두 기초연 초정밀광학팀 작품.<자료 제공 = 기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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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의 연구개발 과정은 시력교정수술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각막의 모양과 두께를 알맞게 조절, 깎아내서 시력을 교정하듯 연구팀은 광학부품들을 나노 단위로 정밀하게 설계하고 가공한다.

이를 통해 장비들은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을 관찰하고 깜깜한 밤에도 적외선으로 물체를 식별할 수 있으며, 심지어 360도의 전방위 시각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광학부품들도 인간의 눈 못지않게 매우 정교해야 한다.

현재 연구팀의 초정밀 광학부품들은 1nm(나노미터) 이하의 표면 거칠기와 수백nm의 형상정밀도를 가진다. 해당 정밀도가 의미하는 것은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는 뜻. 연구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Freeform 700, NanoForm 600, 자유 형상 폴리싱머신 등 초정밀가공장비와 Laser Interferometer, Form Talysurf, NT2000 등 나노 단위까지 분석하는 형상측정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신의 손 부럽지 않게 완벽한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는 최초이자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인공위성, 망원경, 현미경, 감시카메라, 무인정찰기, 항공기, 탱크, 잠수함 등 초월적인 시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군수·민간용 장비들이 그들의 성은(盛恩)을 입기 위해 대기 중이다.
▲가공부품을 확인하고 있는 김건희 기초연 연구장비개발부장. 일단 가공된 부품은 육안으로 확인 단계를 거친다. 흠이나 잔선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무지개가 뜨는지를 본다. 무지개가 뜨면 불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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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초정밀광학분야에 뛰어든 이유는, 초정밀가공기술이 NT(나노과학기술)·ST(우주공학기술)·IT(정보통신기술)·BT(생명공학기술)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핵심기초기반기술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우주·국방 등 국가핵심전략분야에서 필수적인 기술이라 선진국들이 기술 공개나 이전을 회피하므로 기술자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기초연이 1996년부터 초정밀가공사업을 준비, 개별연구기관이나 기업들이 갖추기 힘든 장비들을 구축하고 산·학·연 전방위 지원에 나선 것이다.

14년 동안 그들은 수입 의존성이 강한 초정밀 연구용 부품의 국내 개발 기반을 확보하고, 연구 장비의 핵심부품을 개발해 보급했으며, 비구면렌즈와 360도 전방위 카메라의 반사경, 비구면프리즘, 헤드마운티드 디스플레이 등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제품을 지원했다.

핵융합장치에 들어가는 진단 장비와 포항가속기의 진폭관도 모두 초정밀광학팀의 작품이며, 곧 한전 전력용 송신탑 감시 시스템과 문화재관리 보안시스템에도 연구팀의 개발기술이 접목될 예정이다.

또 현재는 '초정밀 열영상 현미경'이라는 단독 최첨단 장비도 개발 중이다. 초정밀 열영상 현미경은 미세한 크기의 세포군이나 세포조직을 형광물질 없이도 직접 열 감지로 실시간 분석할 수 있는 장비다.

몇몇 사람들은 초정밀가공기술이 장비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되는 걸로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이다. 같은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명의(名醫)가 따로 있고, 같은 도구를 써도 장인(匠人)이 만든 것은 뭐가 달라도 다르듯이 초정밀가공분야에서도 노하우를 터득하고, 작업에 혼을 불어넣는 엔지니어의 능력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14년을 주경야독으로 연마에 파고든 연구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품 가공에서 시작해 드디어 그들만의 기술로 분석 장비 시스템 개발을 눈앞에 둔 그들이 현재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할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

기계·전산·물리 등도 알아야 하고, 실제 가공작업까지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업무량 때문에 연구팀은 인재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초정밀광학기술 발전사의 산증인 김건희 기초연 연구장비개발부장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초정밀광학 분야에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며 "천문연·항우연·ETRI 등 다양한 분야의 기관들과 협력연구를 하며 여러 사람들과 모두 융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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