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부일 대구한의대 한의과대학장

조선시대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한약재를 공급해 온 한약 물류유통의 거점 대구. 대구 한의계의 심장, 대구한의대학교는 1981년에 개교했지만, 1959년 설립된 사설 한의학연구소인 제한동의학술원과 1970년 건립된 전국 최초의 한방병원인 제한한방병원을 모태로 하고 있어 실제 역사는 더 깊다.

5월 15일 스승의 날. 대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장실을 찾자 화사한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학생들의 메시지가 눈에 띈다. 메모들을 훑어보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글귀 사이로 빡빡한 수업과 어려운 시험에 대한 애교 섞인 투정도 보인다.

"제가 본초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로서는 외울 것도 많고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겁니다." '혹시 무서운 교수님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서부일 대구한의대 한의과대학장이 웃으며 항변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42세. 서부일 학장은 젊은 사람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한의학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비주류 한의학 현실 직시…정부 투자보다 자체 노력 강화하자"

"한의학의 가치와 우수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극단적으로 한의사가 없어도 되는데 어떻게 정부에만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한의학은 주류의학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부터 노력해야 합니다." 서부일 학장은 먼저 "한의학이 구호만 민족의학이지, 대중들에게는 귀족의학으로 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의학 진료와 치료를 표준화·규격화해 보다 저가로 공급할 수 있어야 시장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서 학장이 이를 위한 선결과제로 제시한 것은 네 가지.

첫째는 진료의 규격화·표준화이고, 두 번째는 보험약재의 현실화 등 상대적으로 양방에 비해 법적으로 소외된 한방의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또 신뢰성 있는 진단기기의 개발과, 물리치료 등의 보험화도 필수 제반 요소로 꼽았다. 그는 "20명을 보아도 경제적 문제없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의료비를 저가로 낮춰 100명의 환자를 진료하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이러한 기반만 형성되면 한의학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의학연 역할 중요…표준화 툴 개발 등 연구 앞장서야"

서 학장은 이러한 한의학 발전 기반 마련을 위해 무엇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 개별 한방병원과 대학에 연구풍토가 자리 잡지 못한 한의학계 현실을 고려해 국가 거점연구기관인 한의학연이 주도적으로 과학화·표준화 연구를 이끌고 제도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의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연구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서양의학은 전세계에서 연구를 해주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늦게 구도를 잡아가고 있어 안타까운 면이 많습니다." 서 학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한방병원들이 의료사고의 무풍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

그동안 신뢰성 있는 진단기기의 개발과 약재 안정성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의학은 대중들의 신뢰를 잃었으며, 서양의학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 학장은 "한의학연에서 맥진 로봇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워한 적이 있다"며 "연구원이 그러한 진단기기 개발과 표준화된 치료지침 개발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한 가지 더 제안하자면 한약재의 안정성과 함께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진행해 달라"며 "'약'이라는 것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한의사가 처방해주는 것인데 혹여 무조건 특정 약이 안전하다는 식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에 기대 커"

한의계의 숙원이었던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에 대해서도 서 학장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산대 한의전은 그 안에서 의대·치의대·약대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엄청난 연구업적을 쏟아내야 할 것"이라며 "우수한 교수들이 가서 한의학 연구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교육과정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한의과대학들과 공유한다면 전체적인 한의계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했다.

인터뷰 내내 한의학의 우수성을 강조하던 서 학장이 말미에 "사실 작년까지는 한의계의 앞날에 비관적인 입장"이었다고 고백했다.

한의학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서양의학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는 위기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희망이 생겼다.

한의학을 전공한 우수 인재들이 서서히 사회에 진출하고 있고, 또 연구결과들이 하나하나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이 도약할 기회가 충분히 온다는 것이다.

서 학장이 마지막으로 한의학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가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한의학도 음양을 통해 아주 많은 정보를 채집하는 살아있는 학문입니다.

또 혈관 개념을 포괄한 경락의 개념을 갖춘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의학입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수업 중에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한의학은 동양철학이 아니라 동양과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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