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번에 인사 드렸던 OOOO의 XXX 입니다. 오늘 쓰신 ‘왕따 세상 뒤집기’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현실을 마주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뒤집어 엎어야 할까’ 내심 고민합니다.

5~6년 전인가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때려 치우고 인터넷 벤처를 한답시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을 때, 모 대학교에서 4학년 생들이 방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 과제 중에 이런 게 나왔답니다. ‘벤처 업체를 탐방하고, 벤처가 살아갈 길은 무엇인지를 알아오라’는 게 교수님의 과제였답니다.

물끄러미, 후배들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죠.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아시죠?” “다윗이 골리앗에게 어떻게 이긴 줄 아십니까?” (그 당시는 벤처의 생존보다는 벤처가 대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뚫어내고, 시장을 헤쳐나가느냐가 이슈였습니다. 그때 저는 ‘다윗’을 벤처에, ‘골리앗’을 대기업에 나름대로 비유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골리앗의 가장 큰 약점을 노렸다. 그것이 현재 벤처의 정답이다. 다윗이 골리앗 흉내를 내면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 방심을 유도한 후, 빠른 몸놀림으로 이러 저리 피하다가 빈 틈을 보고 자신의 모든 힘을 돌팔매에 집중해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벤처도 다윗처럼 하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저희 회사도 벤처인데, 요즘 자꾸 대기업 흉내를 내서 어째 좀 껄쩍지근 합니다...억지논리인지는 모르지만, 칼럼에서 말씀하신 이 사회의 큰 주류(나이키 운동화)가 ‘골리앗’이라면, 저희 같은 비주류(검정 고무신)들은 ‘다윗’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부족한 부분만을 논하면서 그들을 따라 하거나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을 발휘한다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스톱의 판에서도 그 흐름이 돌고 돌면서 반드시 자신에게 찬스가 오게 되어있더군요. 단지, 하수일 때는 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당구 150을 치는 사람이 1000을 이기려면 어줍지 않게 1000이 치는 것을 흉내낼게 아니라, 자신의 스핀(일명 ‘히네루’라고 하죠)을 정확히 알아서 자기가 잘 치는 공으로 집중 공략하고, 찬스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Fluke(일명 ‘후루꾸’)를 상대방이 치면 열 받지만...

전 당구를 통해 인생과 철학, 마케팅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한 400 정도 칩니다) 하수가 고수와 같은 다이에서 쿠션으로 돈내기를 치면서 잡아주기(핸디)를 해주지 않고 치는 게 바로 인생이자, 기업의 현장입니다. 지금 하수이더라도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고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고요...(제 별명이 ‘고수킬러’ 입니다. 상대방이 강할수록 실력이 좋아지죠..~~)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멘탈(Mental)’이라고 봅니다. 멘탈에서 밀리면 결국 계속 밀리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하수라고 해서 평생 고수만 따라 하다가 한번도 못 이기고 끝날 게임이라고 스스로 먼저 인정해 버린다면 게임이나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않을까요?

보잘 것 없는 생각을 무리하게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네요. 바쁘실 텐데 어줍지 않은 생각을 적어보내 불편을 드리는군요...~~그럼. 계속 좋은 글 부탁 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분의 메일에 정답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세상의 벽은 높고 험하지만 노력이 여러 번 거듭되다 보면 언젠가 깨어질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80년대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힘도 작은 돌팔매질이 모여 만들어낸 염원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집념과 투지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역시 ‘멘탈’이 중요합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시는 분들을 만나다 보면 이 분들의 포부는 대개 2가지 입니다. 가장 많은 부류가 ‘전문기업으로 성공하겠다’는 쪽 입니다. 그 분야 기술이나 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심도 있게 준비를 해온 만큼,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겠다는 것이지요.

반면 그림을 거창하게 그리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현재의 사업을 잘 일구어 가면서도 관련분야의 신규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그룹화’ 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비즈니스답게 해보겠다’는 것인데 ‘비즈니스 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판을 크게 벌이겠다는 야심으로 보여집니다. 성공하겠다는 생각만을 놓고 보면 경영자들은 ‘기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 두가지 모델을 놓고 상상을 합니다. 거의가 그렇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에 어떠한 공상이라도 가능합니다.

저는 ‘벤처가 걸을 수 있는 길’에는 5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망할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첫번째는 많은 분들의 생각과도 같은 ‘전문기업으로 성공하는 길’ 입니다. 끝까지 ‘다윗’으로 활약하면서 성공하겠다는 집념과 패기가 있다면 이런 비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조직으로 역동감 있게 움직이며 기술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합니다. 사세가 커지더라도 ‘내 밥그릇은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업 외에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관료주의를 꼽습니다. 한 때 ‘성공 벤처의 대명사’로 불렸던 몇몇 기업들에 엄청난 군살이 붙고, 마침내는 비효율의 낙인이 찍혀 쇠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특정 분야의 전문기업으로 성공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남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의 가능성은 ‘스스로 대기업이 되는 길’ 입니다. 일부 벤처들이 벌써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풍부한 자금으로 금융 계열사도 만들고, 잘 되는 기업에서 신규 분야를 인큐베이팅 한 뒤에 그 사업부문을 분리, 독립시키기도 합니다. 본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엉뚱한 사업에 진출해서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사업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 모회사와 자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규모화’를 이룩하는 것이 목표 입니다. 어설픈 대기업 흉내를 내다가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곳도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이런 회사의 경영진은 새로운 시대의 수익모델을 좇아 항상 좌고우면 해야 합니다.

엄숙주의자들은 이런 사업 모델에 대해 욕을 합니다. ‘기술도 없으면서 요령 좋게 돈을 많이 끌어다가 머니 게임에 몰두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꼭 기술로만 풀리는 것은 아닌 이상, 자칫하다가는 어색한 비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경영자의 야욕이 너무 크거나 일이 잘못 풀리면 대형 금융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는 ‘기업을 잘 키워서 팔아먹는 길’ 입니다. 속칭 ‘먹튀(먹고 튀기)’ 라고도 합니다. 회사의 경영 목표를 ‘M&A 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영자를 지금까지 단 한명도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면 반드시 사기꾼으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인수 당한다는 것을 실패 또는 포기와 같은 항렬로 보는 시각에 익숙해져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잘 일궈놓은 기업을 좋은 조건에 매각함으로써 주주와 경영진,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다면 M&A도 좋은 방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자주 오가는 분들의 경우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목표가 먹튀’라고 농담 비슷하게 말 합니다. 많은 벤처기업 경영진의 꿈이 대기업에 회사를 팔아먹는 것이라지요. 특히 천문학적인 규모의 연구개발 비용이 필요하고 제품화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바이오 분야의 경우, 벤처들이 대기업에 보내는 러브 콜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국내 모 은행에 거액을 투자하려 했던 재미교포 김모씨의 경우, 현지에서 일으킨 벤처회사를 엄청난 가격에 팔아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국내 기업인들의 경우, 이런 외국의 M&A에 대해서는 부러워 하면서도 국내 M&A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성향이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미국과 한국의 기업 환경이 많이 달라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네번째의 가능성은 ‘계속 그만그만한 사업을 하면서 입에 풀칠 하는 길’ 입니다. 통상적으로 벤처기업의 성공률(단순히 기업공개까지 간다는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이 5%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대개는 ‘풀칠’ 범주에 들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말이 쉬워 코스닥 등록이지, 상당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합니다. 매출을 수십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코스닥위원회 심사위원들의 눈에 찰 만큼 이익을 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코스닥 등록을 기대하기 힘든 업종의 경우에는 함께 벌어서 먹고 사는데 치중할 수 밖에 없겠지요.

어떤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자를 만났더니 ‘소박한 꿈’을 피력하시더군요. “공장 하나 차려서 제품 뽑아내면서 먹고 사는 게 소원”이랍니다. ‘대박’ 같은 것은 자신과 별로 관계가 없는 용어일 뿐이라고 합니다. 성공에 대한 기준과 바람은 이처럼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입에 풀칠하며 사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남들이야 어떻든 ‘나는 내 팔자대로 나의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면 된다’는 확신만 선다면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가능성은 ‘망하는 길’ 입니다. 혼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기업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조용히 간판을 내리고 다른 기회를 모색해볼 수 밖에요. 남들이 속칭 ‘후루꾸’로 성공했다고 해서 ‘왜 나만 미워하느냐’며 세상을 원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메일을 보내주신 분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다윗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 팔매에 능한 다윗이 되어 골리앗의 약점을 노리는 것이 벤처의 살 길이라는 점에 동의 합니다. 거친 들판에서 잡초처럼 자라난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양상을 보면 대기업과의 경쟁보다는 벤처들간의 박 터지는 싸움이 더욱 치열합니다. 이런 사정을 보면 다윗이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수 킬러’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무신을 신고도 성공에 이르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만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신문에 모 기업 경영인이 쓴 칼럼이 문득 생각 납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잠을 설치고 아침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더니, 그 분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언제는 세상 사는 일이 쉬운 적이 있었니? 닥치는 대로 살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을 하니?” 닥치는 대로 살아 봅시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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