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글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최근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차츰 고갈되어 가는 화석연료 에너지를 대신해 원자력 에너지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의 핵분열 방식에 의한 원자력 발전은 인체 및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방사성 폐기물 들을 배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종종 '화장실 없는 저택'에 비유된다.

또한 지난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원전의 방사능 물질 누출사고,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Chernobil) 원전의 폭발사고 등으로 인하여 선진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반대 운동이 고개를 들곤 했다.

산유국도 아니고 전체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별다른 대안 없이 무턱대고 원전을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 태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동안 이 문제로 인하여 오래 전부터 적지 않은 갈등과 충돌이 있었고, 담당부처 고위공직자들이 퇴진하는 등 진통이 잇달았었다. 최근에는 주민투표를 통하여 경주 지역이 건설 예정지로 최종 선정되었지만 앞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제대로 건설될 지는 장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가봉 지역에서 아득한 옛날에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연 방폐장'과 비슷한 곳이 발견된 바 있어 관련 학계와 원자력 전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즉 가봉의 오클로(Oklo) 우라늄 광산에서는 우라늄(Uranium) 235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낮을 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도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일명 ‘오클로 현상’이라고 지칭하는데, 자연 스스로 서서히 핵분열을 일으킨, 신기로운 일로 여기고 있다.

오클로 현상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72년으로, 오클로 우라늄 광산에서 캐낸 우라늄 원석에 포함된 우라늄 235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약간 낮다는 것이 프랑스의 한 핵연료 기술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자폭탄의 원료일 뿐 아니라,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에도 널리 쓰이는 우라늄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원소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서, 보통 우라늄 238과 우라늄 235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여기서 238이나 235라는 수치는 우라늄 원자핵의 양성자 수(=원자번호)와 중성자 수를 합한 '질량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두 우라늄 모두 원자번호는 같지만 중성자 개수가 약간 다르므로 '동위원소'이다.

이 중에서 핵연료로 바로 쓰일 수 있는 것은 방사성 동위원소인 우라늄 235이지만, 우라늄 238도 중성자를 흡수하면 역시 중요한 핵연료의 하나인 플루토늄(Plutonium) 239로 핵변환을 일으킬 수 있다. 천연 우라늄의 분포를 보면, 우라늄 238이 대부분이고 우라늄 235는 약 0.7%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감기(본래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는 우라늄 235가 약 7억년, 우라늄 238이 약 45억년으로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지구가 탄생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에는 우라늄 235의 비율이 약 20% 이상으로 훨씬 높았고, 오클로 광산이 만들어진 약 18억년 전에는 우라늄 235의 비율이 3%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오클로 광산에 대해 조사, 연구한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우라늄 235의 비율이 천연 상태보다 낮게 나타난 이유에 대해 원자력 발전소에서와 같은 원자핵 분열 반응이 스스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또한 광산 주변의 지하수가 냉각 작용을 통하여 핵분열 반응을 적절히 제어한 덕분에 원자폭탄과 같은 급격한 핵연쇄반응으로 인한 폭발을 방지하고 '천연 원자로 시스템'이 잘 작동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은 오클로 광산의 핵분열 반응이 30분간 계속되고 2시간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핵분열 반응에 의해 나오는 부산물인 방사능을 띤 물질들이 광산지역 밖으로 전혀 유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은 오클로 광산이 방사성 물질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던 원인을 알루미늄 인산염에서 찾았다.

즉 오클로 광산의 알루미늄 광석에서 방사성 기체 등을 추출하여 조사한 결과, 알루미늄 인산 원자들이 방사성 물질들을 둘러싸서 외부로 방출되지 않도록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천연 원자로이자 방폐장인 오클로 광산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원리를 잘 규명하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당면한 골치 아픈 문제인 방사성 폐기물들을 영구 보관, 처리하는 방법에 획기적인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주 옛적에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오클로 광산에 대해서도 벌써 신비주의적, 미스테리 이론적인 해석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설명이나 지나친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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