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넓고 할일은 많다...김종윤기자 하루 평균 8-9시간씩 달려 총 5천5백여마일 횡단

헬로디디 독자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뉴욕통신은 제가 최근 미국 땅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을 격식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스럽게 기술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저는 동료와 함께 8일동안 미국대륙을 횡단했습니다. 하루 평균 8-9시간씩 달려 총 5천5백여마일(1마일=1.6킬로미터)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미국을 보고 느낀 점은 이렇습니다.

우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단연 이들의 뛰어난 인프라입니다. 어디를 가든 사통팔달로 뚫려있는 도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달려도 최소 왕복 4차선,최대 왕복 16차선을 넘는 프리웨이가 거미줄처럼 전국을 감고 있더군요. 여기에 각 주별로 뻗어있는 연방도로와 주도로를 합하면 거미줄이라는 표현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대부분의 도로는 반듯하게 뚫려있더군요.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 땅과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그래도 물류와 사람의 이동을 위해 넓은 도로를 체계적으로 만든 이들의 지혜를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컨테이너트럭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서부에서 동부로 다양한 제품을 싣고 쉴새없이 달리는 이 컨테이너트럭들은 미국이라는 인체의 동맥역할을 하더군요.

다음은 이들의 절제된 운전문화입니다. 뉴욕같은 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든 뒤에서 빵빵대는 경적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특히 앞차가 천천히 가더라도 절대 경적을 울리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자기가 차선을 바꿔 추월해 가면 그만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프리웨이에서도 적어도 일흔살은 돼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조심조심 운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때문에 순발력이 떨어져 천천히 차를 몰다보면 뒷차의 진행을 막게 됩니다. 특히 편도1차선인 지방도로에서는 할아버지 운전자들 때문에 대도시의 교통체증처럼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하지만 뒤를 따르는 차들은 절대 경적을 울리거나 하이빔을 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더군요. 그저 천천히 기다리다가 추월라인이 나오면 조용히 추월해 갑니다. 일종의 시민의식이죠. 그럴 때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인데. 벤처비즈니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빨리빨리에 정신못차린 벤처기업이 실력도 키우기 전에 공개시장에 올라가고 돈을 모았지만 모래성이 무너지듯 허무하게 쓰러진 것 아니겠습니까.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산업단지도 미국의 장점입니다. 텍사스에서 광활한 목장과 사막을 지나는데 갑자기 산업단지가 나타나더군요. 누구든 입주를 환영한다는 팻말과 함께. 어떤 주를 가든 모두 산업단지 구축에 열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여겨봐야할 점은 이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접 투자같은 지원은 전혀 없고 세금을 조금 깎아주거나 전기비,수도료를 싸게 해주는등 간단한 지원이 대부분입니다. 대신 이들이 사업을 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제도적,법적 지원을 확실히 한다는 것입니다. 규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고요. 공정하게 경쟁해서 실력있는 기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게 산업단지의 목적입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운동장 안에서 기업들은 선의의 경쟁을 합니다. 기업들은 정부에 손을 벌리지도 않고 정부는 돈주머니를 풀 생각도 안합니다. 그저 공정한 경쟁의 룰만 강조합니다. 여기에 민족의식을 강조하거나 역사의식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한 때 경쟁력이 없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몇몇 벤처기업인이 국민들의 민족의식에 호소, 돈을 끌어모아 살려낸 적이 있었죠. 하지만 결론은 어떻습니까. 그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경쟁력이 없어 미국 거대기업의 제품에 크게 밀리고 있지요.

그렇다고 미국을 숭배의 눈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아메리카드림의 허구를 깨달아야 합니다. 테네시, 오클라호마, 텍사스 등 중남부 지역을 지날 때 동양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더군요. 하얀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친절한 웃음 뒤에 가린 인종차별의식을 접할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의 이중성도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미국 각 주마다 권위있는 신문들이 있죠. 이 신문의 기사 중 눈에 띄는 것은 살인사건기사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굉장히 크게 취급합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크게 강조합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3년만에 살인사건이 났을 때는 긴급뉴스까지 하면서 난리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비행기가 비행금지 구역을 넘었다는 이유로 이라크 땅에 폭격을 하고 수십명을 살상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남의 나라 하늘에 마음대로 선을 그어 비행을 못하게 하고 이를 어기면 폭격을 해 죄없는 양민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인들은 자국 비행기의 명분없는 폭격 때문에 타국 사람들이 죽든 다치든 관심이 없죠. 오직 자기들만 아끼고 신경쓰면 됩니다,. 자국 국민들의 생명은 중요하고 타국 국민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게 또한 미국입니다.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미국은 강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환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을 증오해서도 안되고. 우리는 미국의 힘을 배우고 미국의 이율배반을 들춰내 우리의 힘을 키우는데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을 제대로 보자. 그래서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 그리고 노력해 후손들에게는 미국을 능가하는 사회와 국가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뉴욕=김종윤 dalsae@j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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