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부자 120명이 준비한 발렌타인데이 선물

실내 수영장, 영화관, 30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시냇물과 연어 부화장을 갖춘 주택과 자가용 비행기로 떠나는 휴가... 그래도 기업인이 존경을 받는 나라가 바로 미국 자본주의입니다.

돈많은 국내 부자님들이 보기엔 무척 부럽지요.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에도 엄격한 Rule이 있습니다.

김종윤 기자가 뉴욕에서 세번째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

이제 미국 부자들의 이름을 한번 보시죠. 워렌 버펫. 오마하 투자회사의 회장으로 포브스지에 따르면 미국에서 네번째로 부자인 사람입니다.

조지 소로스. 투기꾼이라는 비난도 듣지만 수십억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유명한 투자가입니다. 데이빗 록펠러 주니어. 뉴욕의 명물인 록펠러빌딩을 갖고 있는 록펠러사의 전(前)회장으로 역시 수십억달러 재산가입니다. 스티븐 록펠러는 록펠러형제재단의 의장으로 억만장자입니다. 여기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아버지도 낍니다. 그는 시애틀의 유명한 변호사로 빌엔드멜린다게이츠 재단(빌 게이츠가 아내 멜린다와 함께 만든 공익재단으로 2백억달러를 사회에 기증했습니다)의 의장이자 대단한 부자입니다. 제가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유는 왜일까요. 이들을 포함,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1백20명이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을 교환한다는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국민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부시대통령 앞으로 ‘상속세 폐지’ 안을 철회해달라는 청원을 했습니다. 부자들의 반란이죠. 엄청난 부의 상속이 가능함에도 이를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가난한 미국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답니다. 부시대통령이 지난 8일 의회에 제출한 ‘감세안’의 뼈대는 소득세인하와 상속세(estate tax)폐지입니다. 이 중 상속세는 67만5천달러이상을 물려받았을 경우 상속액의 37%-55%(3백만달러 이상 상속받았을 경우)를 세금으로 물리는 세제입니다. 매년 상속받는 미국인의 2% 만 이 세금을 낼 정도로 상속세는 돈 많은 특권층에만 적용되는 특혜(?)였습니다.

그동안 미국사회에서 ‘죽음의 세금(death tax)’으로 불리는 상속세가 끊임없이 논란이 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죠.

우선 이중과세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일구면서 소득세를 냈는데 자식들이 그 재산을 물려받을 때 또 세금을 내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얘기죠. 그리고 상속세는 투자나 저축의 의지를 꺾는다는 주장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줄 때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뜯기는데(?) 왜 저축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겠냐는 것이죠. 한마디로 일하겠다는 의욕을 꺾는다는 거이죠.

한편으로는 타당한 논리입니다. 자본주의 정신을 고양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상속세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화당은 그동안 줄기차게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거이죠. 하지만 돈을 많이 벌면 존경받고,사회적 지위도 돈이 있고 없음으로 인해 크게 영향받는 철저한 미국자본주의 아래서도 ‘부의 가치’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속세가 폐지되면 오히려 가장 특혜를 볼 1백20명의 부자들이 이들이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워렌 버펫은 청원을 하면서 “상속세폐지는 2020년 올림픽팀을 구성하면서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대표선수로 선발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정책”이라며 상속세폐지를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부는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부자들이 낸 세금이 사회복지를 확장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쓰인다면 ‘돈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된다는 주장이죠. 특히 상속세가 폐지되면 고아원,양로원 등에 기부하는 기부금이 크게 줄어들 것은 뻔합니다. 그동안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부를 통해 재산규모를 줄여 절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국내매출서비스 연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상속세로 인해 매년 1백40억달러 정도가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복지를 위해 기부된다고 합니다. 버펫은 그래서 “상속세는 박애정신을 실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청원은 지난 11일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란에 한 부자가 의견을 올린 뒤 급속히 확대돼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 등 부자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공정한 경제를 위한 연대’가 앞장서 부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청원사인을 받았는데 4명만이 사인을 거절했고 1백20명의 부자들은 흔쾌히 동의했다고 합니다.

미국 부자들을 보면 돈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것처럼 비춰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은(물론 모두는 아니고 일부일 수도 있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아는 것 같습니다. 발렌타인데이 아침에 ‘미국부자들의 반란’을 접하면서 “이런 자본주의 정신이 있으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큰소리 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부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이 가득할 때 후손들이 건강하고 튼튼한 나라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뉴욕=김종윤 dalsae@hotmail.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