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덕밸리 선포식이후 변화의 물결

"대덕밸리 벤처기업의 서울 상륙작전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느낌이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 열린 대덕밸리 벤처페어 2000행사에 참석한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의 소감이다.

지난달 28일 대통령이 직접 참석, 연구단지에서 대덕밸리로의 변신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한지 26일 만이다. "대덕 밸리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한국벤처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메디슨의 이민화회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회장은 이달초 대전을 방문, 벤처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서 벤처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대덕 밸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덕밸리는 여의도의 10배에 해당하는 전체면적 2천752만㎡으로 17개 정부출연연구기관, 29개 민간 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옛대덕연구단지를 핵심축으로 충남 천안과 아산의 반도체 밸리와 충북 오창을 중심으로 중부벤처 하이웨이를 포괄하기도 한다.

대전시와 충남북도가 밝힌 이 지역의 벤처기업 수는 공인 받은 업체의 경우 8백여개, 하지만 인증을 준비중인 벤처와 인큐베이팅이 진행중인 벤처 등을 포함할 경우 1천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대덕밸리 변화의 선봉은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벤처생태계 구축 움직임에서 감지된다. 대덕밸 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벤처기업간 최대 네트워크인 21세기 벤처패밀리(회장 이경수·지니텍대표)가 출범하면서 부터다.

기술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포괄하고 있어 어느곳보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부권 기업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벤처밸리로 공인하고 이를 기점으로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단 벤처캐피털에서 불을 당겼다. 지난달 26일 대전리베라 호텔에서는 국내 최대규모의 투자회사인 무한기술투자이 지역기업인들을 초청, 대덕밸리 벤처생태계 구축 심포지엄를 개최하자 3백여명이 참석하는 등 벤처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개별기업의 성공이 아닌 벤처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원 배종태 교수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급성장 뒤에는 개별기업이 역량은 물론 벤처생태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이 속성상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특화된 벤처기업은 다른 전문화된 분야의 벤처와 사업제휴, 인수합병 등의 퓨전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배교수는 "한국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자본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대덕 밸리에 벤처캐피털 뿐만 아니라 법률·마케팅·IR 전문가 등이 유입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며 "대덕이 이미 한국벤처의 중심권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벤처캐피털의 대전유입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대전에 사무실을 내고 투자할 기업을 찾아다니고 있는 벤처캐피털만 6개. 벤처생태계 구축 심포지엄을 개최한 무한기술투자도 가장 활발하게 투자처를 찾고 있는 곳중에 하나다. 지난달 6일에는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문을 연 자본금 2백억원 규모인 신보창업투자도 기존에 대전 둔산동 산업은행 빌딩에 둥지를 튼 산은캐피털과 에이스월드, KTB 네트워크, ADL 파트너스 등과 벤처투자조합을 결성에 앞을 다투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반적으로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대덕 밸리로의 자금시장 이동현상은 대덕 발 벤처열기를 짐작케하고 있다.

이민화 회장은 "국내의 벤처캐피털 가운데 우량한 10여 개가 올 연말을 전후로 해서 대전지점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의 투자가 가시화될 경우 벤처캐피털의 특성상 무더기 투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벤처생태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휴먼 네트워크 결성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서로 잘난 맛에 마음 문을 닫고 있었던 대덕밸리 구성원들이 조금씩 마음문을 열면서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8일 벤처카페 아고라에서 열린 신입 대덕인 환영대회가 대표적이다. 대덕넷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대덕밸리의 새내기 벤처기업인 등 50여명과 벤처캐피털리스트 · 대전시와 유성구청 등 각계 인사등 1백5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대덕밸리 최초로 지난 20일 대덕바이오커뮤니티(대표 구본탁)에서 열린 대덕인의 밤 역시 대덕밸리 휴먼네트워크 결성의 일환으로 실리콘 밸리 파워의 근본인 네트워크 결성이 대덕밸리에서도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1일 열린 대덕벤처협동화단지 입주 6개 기업간 한마음 체육대회에서는 대덕밸리 공동체 구성 가능성을 확인해주는 자리였다.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치러진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참석자들은 함께 땀을 흘리면서 벤처하면 떠오르는 삭막함을 떨쳐버렸다. 벤처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전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홍선기 대전시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올 연말까지 창투사와 기술금융회사,은행등과 함께 대덕밸리내 벤처기업에 투자할 제2호 대덕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할 것"이라며 "또 벤처기업의 경영능력을 높이기 위해 2002년 개원을 목표로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벤처문화가 움트면서 대덕 밸리 벤처기업들의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이같은 추세라면 1천억원대의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포네이도라는 인터넷 폰을 개발해 미국에 수출키로 한 기가시스네트의 경우 올 연말까지 2백억원 상당의 수출계약이 성사단계에 있으며 대덕밸리 두 번째 코스닥 등록기업인 하이퍼 정보통신의 경우 지난해 매출 2백50억원의 두배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이밖에 블루코드테크놀로지,액팀스,지씨텍,오프너스,SMIT,뉴그리드테크놀로지,한백,빛과전자,해동정보통신,다림비젼,동양엔터프라이즈,새길정보통신 등 20여개 업체가 1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이미 넘겼거나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본격인 매출이 시작되는 내년에는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코스닥 행이 러시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성급하게 나오고 있다. 이경수회장은 "대덕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연구소 등 현장에서 10여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산업화에 접목시켰다는 점"이라고 밝힌 뒤 "연구와 생산기능이 접목된 대덕밸리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과제도 많다. 최대 화두는 생산시설이 들어설 땅 문제. 기업이 성장하는데다 창업되는 기업마저 늘어나면서 땅에 대한 기하급수적인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박성 때문에 대덕밸리 선포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토지용도 변경 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대덕밸리 벤처기업인들은 건폐율 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정부출연연들의 건페율을 보면 이해가 간다. 표준과학연구소 4.54%, 원자력연구소 4.74%, 화학연구소 6.86%, 기계연구소 5%, 에너지연구소 15.01%, 전자통신연구원 6.12%, 한국과학재단 4.71%, 천문연구소 4.17%, 항공우주연구소 10.67%, 자원연구소 4.17%, 생명공학연구소 8.22% 등이다.

상한선인 20%를 넘기는 곳은 한곳도 없다. 10%조차 넘기지 못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때문에 벤처기업인들은 법적으로 가능한 한도의 땅이라도 풀어달라는 주장이다. 반면 과기부와 출연연 측은 어림없다는 반응. 대부분 연구소 연구원들도 녹지지역의 개발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며 연구단지가 벤처기업과 벤처인 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TBI 등을 통해 혜택을 누린 벤처기업이 너무 욕심을 부린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들의 토지부족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면서 "하지만 본래 대덕에 연구단지를 조성한 기본적인 목적은 생산시설을 갖추자는 것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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