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이온가속기 건설 현장을 가다···평균 완공 70%
저에너지가속장치 가속모듈 설치에 박차, 700여명 매일 참여
권면 단장 "욕 먹더라도 문제해결하며 제대로 마무리할 것"

중이온가속기 '라온'의 가속 터널내 저에너지가속기 구간에 가속모듈이 테스트를 마치고 설치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중이온가속기 '라온'의 가속 터널내 저에너지가속기 구간에 가속모듈이 테스트를 마치고 설치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전시상황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전하면서 곳곳에서 셧다운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연구 현장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대형연구시설 건설 현장은 어떨까.

국내 최대 과학시설 중이온가속기 '라온' 건설현장. 지상은 코로나로 일상이 주춤하지만 이곳 현장은 일정을 맞추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조용하지만 현장에 임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다. 하루에 700여명의 인력이 참여한다. 모두들 코로나를 조심하면서  내년까지 장치설치 완공을 목표로 코로나 속에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전과 세종의 중간에 위치한 신동지구. 도로는 이미 정리를 마치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로 안내하고 있다. 정문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라온 건설 현장으로 들어섰다. 곳곳에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년 전 와 본 현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언덕위에서 보던 건설현장은 이미 건물이 완공됐다. 지금은 건물 아래 내부 장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원자 중 헬륨이온보다 무거운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표적 물질에 충돌시킴으로써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라온에서 나온 희귀동위원소는 우주의 기원부터 신소재개발, 난치암 치료법 개발 등 기초과학연구 발전에 활용된다.

라온은 유성구 신동지구 일대 95만2066m² 부지에 총 사업비 1조4314억원(장치구축 4602억원, 시설건설 6112억원, 부지매입 3600억원)이 투입되는 거대연구실험장치다. 2011년 시작해 2021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면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이하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에 의하면 건축물(85%)과 장치(78%) 공정률은 평균 70%정도다. 올해안에 건축물을 내년에는 장치 건설까지 완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권 단장은 제대로 하려면 고에너지가속기 구간은 늦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대덕넷이 코로나19 확산속에서도 한치의 오차없이 중이온가속기 장치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 가속기 터널 내 초전도 가속모듈 테스트하며 설치에 속도

클린룸에서 테스트를 마친 캐비티를 가속모듈에 장착해 실험하고(사진왼쪽) 그후 차폐막 공간에서 다시한번 테스트 후 통과하면 가속기 터널에 설치하게 된다.<사진= 길애경 기자>
클린룸에서 테스트를 마친 캐비티를 가속모듈에 장착해 실험하고(사진왼쪽) 그후 차폐막 공간에서 다시한번 테스트 후 통과하면 가속기 터널에 설치하게 된다.<사진= 길애경 기자>
가속기터널에 앞서 먼저 들른 곳은 조립 시험동. 가속터널에 들어가기전 가속모듈과 캐비티(cavity)를 테스트하는 곳이다. 우선 캐비티가 실험에 통과하면 가속모듈에 장착해 다시 실험을 한다. 캐비티는 가속하는 이온이 지나는 통로로 단 1개의 먼지입자도 허락하지 않는다. 당연히 클린룸에서 테스트가 이뤄진다. 클린룸 실험에 통과하면 가속모듈에 장착돼 다시 테스트가 진행된다. 가속모듈 테스트는 벽두께 80~1m의 차폐막 공간에서 이뤄진다. 2번의 테스트까지 거쳐야 비로소 가속기터널 내 장치에 설치될 수 있다. 하나의 가속모듈이 만들어지고 테스트를 마치기까지 50일이 걸린단다.

이어 이미 챙긴 안전모에 신발 덧신을 착용하고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3층 정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면에 대형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쪽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긴 터널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 보인다. 작업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 답답할만 한데도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다.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이온 발생장치, 초전도가속장치,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실험 장치와 가속기터널, 실험동 등으로 구성된다. 가속기 터널 시설은 완성된 상태.  전체 길이 520m 규모다.

가속기의 시작인 이온 발생장치(ECR)는 국내에서 설계해 제작됐다. 기존 실험에서 중이온빔 인출 여부를 확인했다. 9월말 테스트 후 연결하게 된다. 초전도가속장치는 지난해 9월 1호 가속모듈을 시작으로 모습이 조금씩 구체화 되고 있다. 현재 일주일에 5개의 캐비티가 생산돼 들어오며 장치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라온에는 340개의 캐비티와 104기의 가속모듈이 들어간다.

초전도가속장치는 저에너지가속기(100m)와 고에너지가속기(200m)로 구축된다. 선형 가속기로 저에너지가속기와 고에너지가속기가 180도로 꺾여 나란히 설치되고 각각의 장치에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가 붙는다.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는  ISOL(Isotope Separation OnLine)과 IF(In-flight Fragmentation)가 동시에 장착된다. 지금까지 가속기는 ISOL, IF 중 하나를 선택해 설치한 것과 달리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ISOL은 가벼운 이온을 가속해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저에너지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순도가 매우 높지만 추출 시간이 소요돼 수명이 긴 희귀동위원소만 생산할 수 있다. 반면 IF는 무거운 이온을 가속해 가벼운 원소 표적에 충돌시키는 고에너지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짧은 수명의 희귀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지만 순도가 낮은게 단점이다. 라온은 둘을 접목, ISOL에서 생성된 희귀동위원소를 재가속해 IF 방식으로 더 특별한 희귀동위원소를 확보하게 된다. 이처럼 두개의 장치가 결합돼 설치되는 것은 라온이 첫 사례다. 각국에서 라온 건설에 주목하는 이유다.

초전도가속기도 라온이 처음이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셈이다. 권 단장에 의하면 초전도 가속기가 아닐경우 가속장치 길이는 현재 300m(저에너지와 고에너지장치 합쳐서)에서 1km까지 늘어나게 된다. 비용부담도 당연히 커진다. 권면 단장은 "초전도가속기는 작은 거리로 원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서 "다만 초전도체는 희토류가 많이 사용되는데 처음에는 열흡수, 표면처리 등 재질의 성질을 분석하며 제작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은 다 습득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 과정이 기술 축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저에너지가속기 분야의 가속모듈이 하나씩 설치되고 있다. 고에너지가속기 가속모듈 설치까지 내년에 마친다는 게 당초 계획이다. 하지만 권 단장은 조금 늦어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관련케이블과 캐비넷 설치도 한창이다. 초전도 상태는 절대 온도에서 가능해 저온 상태 유지가 필수다. 영하 270도 극저온 유지를 위해 250m³의 탱크 8개를 설치, 기체 헬륨을 액체로 바꾸는 장치 구축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 권면 단장 "포항가속기, KSTAR, 라온까지···욕 먹더라도 제대로"

2018년 12월부터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면 단장. 그는 포항가속기, 핵융합연 KSTAR에 이어 라온 구축을 맡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2018년 12월부터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면 단장. 그는 포항가속기, 핵융합연 KSTAR에 이어 라온 구축을 맡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핵융합을 전공하고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중 포항가속기, KSTAR, 라온 건설까지 주로 시설 구축을 맡게 됐다. 기술을 알고 이해해야 장치 구축도 가능해 포항가속기부터 참여하다보니 대형프로젝트 세개를 맡게 됐다."

권면 단장은 대형 프로젝트 구축 전문가로 손꼽힌다. 포항가속기, KSTAR, 라온 등 빛으로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이어서 맡고 있다. 라온은 2018년 12월부터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으로 부임, 막바지 건설에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오후 일과는 건설 현장을 한바퀴 도는 일정이 포함돼 있다. 하루하루 진척 상황을 보며 발생되는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기 위함이다.

중이온가속기건설은 시작이후 정권이 여러번 바뀌면서 우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당초 2017년까지 장치구축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사업 기본계획이 변경됐다. 또 2015년에도 기본계획이 변경되며 기간이 2021년까지 연장됐다. 일부에서는 중이온가속기 건설 무효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권면 단장은 "대형 사업은 전시상황과 같다. 원래 계획대로 안되는게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들을 풀어가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특히 누구도 해보지 않은 처음하는 것들이 많아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인데 검증 결과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본계획이 변경되면서 기간이 늦춰진 것도 있다. 정부나 예산 관계자들은 계획대로 할 것을 강조하지만 욕을 먹더라도 제대로 마무리 할 것"이라면서 "KSTAR 시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했다. 대형 과제는 장기적 안목으로 봐줘야 하고 인정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저에너지가속기 구간에 구축되는 가속모듈. 전체 가속기 구간에 캐비티 340개, 가속모듈 104개가 장착된다.<사진= 길애경 기자>
저에너지가속기 구간에 구축되는 가속모듈. 전체 가속기 구간에 캐비티 340개, 가속모듈 104개가 장착된다.<사진= 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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