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학노 제30대 한국원자력학회장

김학노 前 한국원자력학회장.
김학노 前 한국원자력학회장.
지난 8일 정부는 첨단산업의 원천기술 경쟁력 혁신을 위해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로 청주시(오창)를 최종 선정했다. 청주시는 이 시설을 '오아시스(OASIS)'로 명명하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원천기술 확보의 중심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OASIS와 같은 거대 연구시설을 추진한 바 있다.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와 '포항방사광가속기'이다. 10여년의 건설기간을 거쳐 하나로와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되고 가동에 들어갔다. 가동한지 약 3년이 지난 1998년 3월, 물리학계의 원로교수인 이동녕 박사가  한국물리학회가 발간하는 '물리학과 첨단기술'의 권두언인 '과학의 창'에 이 시설의 건설과 운용에 대해 기고했다.

이동녕 박사는 '방사광과 중성자원'이라는 기고문에서 '하나로'와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우리나라 과학과 기술, 산업에 대단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성자원과 방사광원이 상호 보완적으로 잘 활용된다면 이들을 개별 또는 융합하며 이용하는 연구기법이 크게 발전할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과 기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돌이켜 보면, '하나로'와 '포항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자는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데 필수적이었던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대담한 투자였다.

40년이 지난 2020년 우리 정부의 OASIS 구축 의지도 소·부·장 산업의 혁신을 이끌 대담한 투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OASIS는 인근에 위치한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충북 오송의 바이오산업클러스터, 수원과 청주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과 연계해 다양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대덕특구 내 중성자원인 '하나로'와 서로 보완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협업으로 더욱 큰 시너지가 예상된다.

물리적으로 물질과 소재를 연구할 때, 과학자들은 크게 빛과 전자, 그리고 중성자를 도구로 사용한다. '빛'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다양한 영역의 전파를 포함해 엑스선, 감마선 등 광자(photon)라고 지칭한다.

'방사광'은 저장링이라는 도넛 원형 가속기 구조물 내에서 전자선이 가속되면서 접선 방향으로 빛을 방출하는 아주 밝은, 극강의 밝기를 가진 엑스선이다. 물질의 성질이나 소재 특성을 분석할 때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다.  '전자'는 원자의 구성 요소로서 전기를 띄는 기본 입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자공학에 기초해 다양한 기구와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극미세한 물질 구조를 조사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대표적이다.

질량이 없는 에너지 덩어리인 '빛'이나 극히 가벼운 '전자'에 비해 '중성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입자(전자 질량의 약 1800배)이다. 전기를 띠지 않지만 자기를 띤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중성자는 수소, 탄소, 산소 등과 같은 가벼운 원소로 구성된 물질이나 소재 분석에 유용하다. 또 물질의 스핀 구조와 스핀동력을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서 양자물질 연구에 필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성자가 발견된 1930년대 이래, 오랫동안 중성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연구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고성능 중성자원인 '하나로', 방사광원인 '포항가속기'가 가동됐다. 2012년 포항방사광가속기 성능향상, 2013년 하나로 '냉중성자과학연구시설' 가동에 들어갔다. 2016년 오창에서 '생물 전용 초고압전자현미경'이 가동되었다. 2021년 말을 완공 목표로 IBS(기초과학연구원)의 '중이온가속기연구시설'과 2028년 완공 일정을 제시한 청주·오창 신규 '방사광가속기'를 포함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빛과 전자, 중성자를 최고의 연구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명실상부한 과학기술의 G7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계, 산업계가 이들 중성자원, 방사광원, 전자빔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는 물론 산업도 앞장서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도전하길 기대한다. 또 소⸳부⸳장 문제 해결은 물론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같은 미래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 김학노 前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 석사 후 KAIS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이용기술개발부장, 정책연구부장, SMART개발본부장, 전략사업부원장을 지냈으며 2017년 9월부터 1년간 제30대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자력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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