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연구실 ⑬] 극지연 빙하시추연구팀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남북극 빙하 시추부터 연구까지
"혹독한 환경이지만 다양한 연구 희망"

남극과 북극 기온은 매우 낮아 눈이 쌓이고 얼기를 반복하며 빙하를 만든다. 계속 쌓이는 눈으로 하층부 얼음은 압력과 밀도로 단단해지면서 층이 생긴다. 그 모습은 흡사 나무의 나이테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눈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공기 방울이 얼음에 갇힌다는 것이다. 이 공기 방울은 그 시대의 대기 상태를 고스란히 담는다. 맨 아래 빙하에는 오래된 공기가, 위쪽으로 올라올수록 최근의 대기 상태를 담고 있어 과학자들에게 세대별 기후변화나 대기 성분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외에도 화산재를 통해 화산이 활동했던 시기나 꽃가루 등의 흔적, 대규모 산불로 인한 대기의 변화 등 다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극지연 연구원들이 직접 남극에서 가져온 빙하코어. 그 시대의 대기 상태를 고스란히 담은 공기방울이 보인다.<사진=김지영 기자>
극지연 연구원들이 직접 남극에서 가져온 빙하코어. 그 시대의 대기 상태를 고스란히 담은 공기방울이 보인다.<사진=김지영 기자>
연구자들은 연구용 빙하를 얻기 위해 극지방에서 '빙하시추'작업을 한다. 시추기를 이용해 원통형 파이프를 빙하에 박아 뽑아 올리는 방식이다. 뽑아올린 빙하를 '빙하코어'라 부른다. 빙하시추는 위치 깊이에 따라 천부(200m 이내), 중부(500m 이내), 심부(1000m 이상)로 나뉜다. 심부로 갈수록 얼음이 단단해 다양한 국가들이 협업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천부 빙하시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극지고환경연구부 빙하시추연구팀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빙하연구팀은 2010년 국내기술로 몽골 호브드 주 뭉흐하이르항산 해발 3804m 지점의 빙하를 시추했다. 한반도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몬순 변화와 황사 기록, 강수량 변화 등 다양한 기후변화 기록을 복원했다.
 
이 외에도 2012년 그린란드 NEEM빙하시추(14개국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해 엠 간빙기(약 13만년 전)동안의 이상고온 현상 규명의 쾌거도 거뒀다.
 

우리나라 기술로 남극 빙하시추를 시작한 것은 2014년 이후다. 남극대륙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완공하면서 시작했다. <사진=극지연 홈페이지>
우리나라 기술로 남극 빙하시추를 시작한 것은 2014년 이후다. 남극대륙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완공하면서 시작했다. <사진=극지연 홈페이지>
남극에서의 시추는 2014년 남극대륙 내륙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완공하면서 시작했다. 1988년 완공한 남극세종과학기지도 있지만 세종기지 근처는 비교적 온화한 날씨로 시추할 빙하가 없었다.
 
빙하시추 작업은 빙하가 잘 보존된 극한 지역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그야말로 체력전이다.
 
직접 빙하를 시추해 한국으로 가져와 분석연구를 수행하는 빙하시추연구팀을 만나봤다. 최근 극지방 시추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한영철, 한창희 박사가 인터뷰에 자리했다.
 
◆ 선배들 맨땅 헤딩으로 이뤄낸 빙하시추 연구
 

(왼쪽부터)한영철, 한창희 박사는 빙하시추 연구를 위해 직접 남극에 다녀왔다. 지난 봄 한국에 돌아온 두 연구자가 빙하시추연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왼쪽부터)한영철, 한창희 박사는 빙하시추 연구를 위해 직접 남극에 다녀왔다. 지난 봄 한국에 돌아온 두 연구자가 빙하시추연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빙하 시료가 정말 비싸거든요. 기술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 않으면 국제공동연구도 어려워요. 초창기엔 선배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연구했죠."
 
빙하시추연구팀의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빙하학 관련 연구자가 없었던 당시 홍성민 박사(현 인하대 교수)가 1996년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유일 빙하학자로 활동한 것이 시발점이다. 홍 교수는 한창희 박사의 지도교수기도 하다.
 
극지연에 빙하시추연구를 도입하고 극지 빙하를 이용한 지구환경 변화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홍 박사팀은 국내 빙하실험실 환경을 갖추는 데 힘썼다.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받은 고가의 빙하 시료를 우리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영철 박사는 "실험실은 갖춘 후 선진 연구기관에 메일을 지속 보내며 맨땅에 헤딩하듯 공동연구를 제안하면서 빙하 연구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안다"고 말했다.
 
작은 실험실이지만 공동연구로 다양한 성과도 나왔다. 남극 보스토크 빙하코어에서 세계 최초로 지난 42만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로 이어지는 장주기 기후변화에 따른 납, 구리, 아연, 카드뮴 등 다양한 미량금속들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북극 그린란드에서 시추한 빙하코어 운석의 추적자 원소인 백금과 이리듐 성분 분석을 통해 매년 지구로 유입되는 운석의 연간 유입량 산출에도 성공했다.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연구축적으로 빙하시추연구팀은 미량의 중금속을 낮은 레벨에서 분석하는 연구에 특화된 팀으로 성장했다. 연구자들은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만한 팀이라고 자부한다. 장보고기지 완공으로 단독 빙하 시추 연구도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분석연구도 할 수 있게 됐다.
 
한영철 박사는 "선배들이 얼음 속에 미량으로 들어있는 금속이 가진 의미를 연구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연구실의 강점이 됐다"면서 "미량금속 분석은 지구역사와 환경변화에 대한 의미 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극한직업? 빙하시추 "눈 앞 1m 안보이는 눈보라 만나기도"
 

남극의 여름, 빙하시추를 위해 떠난 연구팀. <사진=극지연 제공>
남극의 여름, 빙하시추를 위해 떠난 연구팀. <사진=극지연 제공>
"빙하는 지구의 일기와도 같아요. 손실되지 않은 일기장을 찾기 위한 사전연구부터 시작하죠. 시추 작업을 마친 후에는 빙하 속 세밀하게 남겨진 기록들을 잘 읽어내야 합니다. 지난 기록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죠."(한영철 박사)
 
남극의 겨울은 6월에서 8월경, 여름은 12월부터 2월경이다. 땅이 드러날 정도로 눈이 녹는 곳도 있지만, 갑자기 눈보라가 치기도 한다. 그나마 따뜻하다 보니 남극의 여름은 연구자들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빙하시추연구팀도 매년 남극 여름 시즌에 장보고기지에 머물며 빙하시추작업을 직접 한다. 겨울이 오기 전 한국으로 돌아와 채취한 샘플을 바탕으로 연구하면서 재출항을 준비한다. 극지역에 여름 시즌이 오면 다시 출항하는 시스템을 반복한다.
 
한영철, 한창희 박사는 지난해 말 출항해 올 초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영철 박사는 4번째, 한창희 박사는 첫 극지방 연구다.
 
빙하연구는 시추를 통해 무엇을 밝혀낼지와 적정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한영철 박사는 "눈이 다져져 얼음이 되는데 그 전에 눈이 날아 가버리면 지구가 쓴 일기장이 찢겨나간 것과 마찬가지"라며 "손실 없는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바람이 덜 불고 흐름이 덜한 곳을 조사하고 찾아 위치를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한창희 박사도 "맨눈으로 빙하 깊이를 알 수 없어서 연구를 통해 몇 미터고 몇 년의 기록이 담겨있는지를 사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치 선정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장보고기지까지 가는데도 며칠 걸리지만, 빙하시추를 위한 여정도 만만치 않다. 한영철 박사에 따르면 장보고 기지가 산악지역에 있어 내륙으로 가기 위해 항공기를 이용한다. 화물과 인력 등을 헬기로 수송해 원하는 지점에 도착한 연구자들은 빙하 위에 연구, 숙박, 식당, 화장실 등 캠프를 설치한다.
 
캠프 일정은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다. 지난해의 경우 블리자드(남극에서는 빙관으로부터 불어오는 맹렬한 강풍) 습격으로 16일간 캠프를 하며 빙하 60m를 뚫었다.
 
한영철 박사는 "이번 캠프는 기지에서 그리 멀지 않아 처음 가는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혹독한 환경이라 어려웠다"고 말했다.
 

빙하시추를 위해 연구팀은 헬기를 타고 이동 후 텐트를 치고 캠프를 만든다. 지난해 다녀온 시추연구에서는 10박 이상 한 곳에 머물며 빙하시추 등을 수행했다. <사진=극지연 제공>
빙하시추를 위해 연구팀은 헬기를 타고 이동 후 텐트를 치고 캠프를 만든다. 지난해 다녀온 시추연구에서는 10박 이상 한 곳에 머물며 빙하시추 등을 수행했다. <사진=극지연 제공>
한창희 박사는 첫 극지역 연구에 느낀 점이 많다. 그는 "한국에서 빙하 샘플로 연구만 하다 작년에 처음 남극에 갔다. 여름인데 블리자드가 엄청나 눈앞 1m가 안보이더라. '이런 데서 가져오는 샘플이구나!' 남극에 다녀오니 연구하며 느끼는 점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영철 박사도 "연구적인 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진다. 현장을 다녀오면 연구를 이해도 깊어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극지연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수개월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익숙하지 않은 추위에 고생 하다보니 한국 연구자뿐 다른 나라 기지의 연구원들과도 의지하며 생활한다. 그만큼 유대감도 끈끈하다고. 가족같이 지내면서 시키지 않은 일도 스스로 나서 하거나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타인을 돕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극지방 연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 연구자는 '체력'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꼽았다. 이는 빙하시추연구팀에 소속된 우리나라 유일 빙하시추 드릴러 정지웅 선임기술원이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창희 박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안전,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이번 첫 극지방 연구에서 선배인 한영철 박사가 스스로 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해나가는 걸 보며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 남극보다 더 추운 한국 연구실? 시료 정리만 2달
 
빙하시추연구팀이 시추한 빙하는 지름 10cm가 조금 안 되는 원통 모형이다. 최상부는 덜 다져져 가볍지만, 하층은 점점 밀도가 높아져 무겁다. 세로 7cm의 빙하의 무게가 약 6kg쯤 나간다.
 

빙하시추연구팀이 직접 시추한 빙하코어. 연구원의 빨개진 두 볼과 코끝에서 남극의 추위가 느껴진다.<사진=극지연 제공>
빙하시추연구팀이 직접 시추한 빙하코어. 연구원의 빨개진 두 볼과 코끝에서 남극의 추위가 느껴진다.<사진=극지연 제공>
한영철 박사는 "전용 상자 1개에 시료 30~40개를 담아 아라온에 실어 한국에 가져온다. 돌아올 때 짐이 더 많다"면서 "도착한 시료들은 전부 전용 냉동실험실에 잘 보관했다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한창희 박사에 따르면 가져온 시료를 연구용으로 작업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빙하 샘플을 아무 때나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녀서 절반은 보관용, 절반은 연구용으로 가공한다. 영하 15도의 냉동실험실에서 약 두 달간 교대로 시료를 자르고 오염원을 제거한다. 전용 옷과 신발 등으로 무장해도 너무 춥다 보니 소위 말하는 병든 닭처럼 된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냉동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10분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냉동연구실에는 반듯하게 잘린 시료들이 진공 팩에 포장돼 보관돼있었다. 그중 한 시료는 중간 부분이 투병한 갈색으로 돼 있었다. 갈색인 이유는 대형 화산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그대로 빙하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귀한 시료들이 냉동 창고 방에 가득했다.

연구를 위해 절삭해둔 빙하코어. 가져온 빙하코어를 정리하는데만 약 2개월이 소요된다.<사진=김지영 기자>
연구를 위해 절삭해둔 빙하코어. 가져온 빙하코어를 정리하는데만 약 2개월이 소요된다.<사진=김지영 기자>
이 시료들의 분석연구는 청정실에서 이뤄진다. 화장도 안 된다. 온몸을 청결하게 한 후 들어가야 한다. 한영철 박사는 "시료 안에 어떤 물질이 얼마큼 들어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내 몸, 주변 물질 모두 깨끗하게 해줘야 한다"며 "이 작업을 얼마나 철저하게 하느냐가 연구를 할 수 있냐 없느냐를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빙하시추연구팀은 작년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3만년 전 빙하에서 사하라사막에서 기원한 먼지들을 관찰하고 세계 첫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앞으로도 극지역의 퇴적물과 빙하에 남겨진 기록을 해석해 과거 기후와 환경변화 복원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연구자들은 남극에 여름이 오면 또다시 한국을 떠난다. 한영철 박사는 "시야를 넓혀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연구지역까지 확장해 연구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빙하는 지구의 일기와도 같아요. 지난 기록을 통해 앞으로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알아낼 수 있죠. 시야를 넓혀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연구지역까지 확장해 연구하고 싶습니다."<사진=김지영 기자>
"빙하는 지구의 일기와도 같아요. 지난 기록을 통해 앞으로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알아낼 수 있죠. 시야를 넓혀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연구지역까지 확장해 연구하고 싶습니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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