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사람들은 모르는 수컷들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

대덕넷은 8월부터 수요일 격주로 '최병관의 아·사·과'를 연재합니다. '아주 사적인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도서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저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 실장으로 올해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병관 작가의 과학 서평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은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 초에는 '과학자의 글쓰기'라는 책을 집필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대덕넷 DB>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은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 초에는 '과학자의 글쓰기'라는 책을 집필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대덕넷 DB>
일본의 농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는 재미있는 일화로 시작된다. 라디오 전화상담 프로그램에서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세상에는 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있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다. X염색체, Y염색체를 얘기해야 하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아이가 알아들을지 당황해 하는 전문가를 돕기 위해 프로그램 진행자가 질문한 아이에게 되묻는다.

"남자 친구들끼리만 노는 거랑, 남자 친구랑 여자 친구랑 함께 노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이 질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동호회나 모임을 생각해 보자. 남자만으로 결성된 모임은 유지될 확률이 적다. 여성만으로 된 모임은 그나마 유지되지만 남성만으로 된 모임은 깨지기 쉽다. 오랫동안 잘 유지되는 모임은 남자와 여자가 적당히 섞여있는 모임이다. 암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암컷과 수컷,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빠 동물들의 눈물겨운 자식 키우기'라는 부제가 붙은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는 흥미진진하다. 책은 자연계의 동물이나 곤충들이 어떻게 육아를 하며 살아가는지, 또 수컷들은 어떻게 육아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개론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생물에게 육아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동식물의 진화에서 왜 유성생식이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육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한다. 2부에서는 종족 보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육아를 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생물들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책에 푹 빠져든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포유류 수컷의 육아를 다룬 부분이다. 조류는 90% 이상이 부부가 힘을 합쳐 육아를 하는데 비해 포유류는 수컷이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인간은 육아에 있어 새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포유류 중 수컷이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는 5%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전체 통계일 뿐이다. 눈물겨운 육아를 하는 수컷들은 부지기수다.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남성들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육아에 모범을 보이는 동식물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황제펭귄을 예로 들어보자. 황제펭귄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육아를 하는 새'로 불린다. 그는 영하 60도의 혹한 속에서 4개월 동안 먹지도 않고 알을 품는다. 아기 펭귄이 알에서 깨어나고, 먹이를 찾아 나섰던 엄마 펭귄이 돌아올 때쯤이면 아빠 펭귄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해 숨을 거두기도 한다. 아! 눈물겹다. 좀 과장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육아에만 전념하다니!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새인 에뮤는 수컷 혼자서 육아를 한다. 암컷은 알을 낳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면 수컷은 8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다. 그리고 18개월 동안 혼자서 육아를 담당한다. 번식기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품고,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면 새끼들을 데리고 방랑하는 것이 '에뮤의 삶'이다.

꿩은 또 어떤가? 암컷은 들판에 불이 붙어 불길이 가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알을 품는다. 불에 탄 몸으로 끝까지 알을 지킨다. 그런데 이 때  수컷은 높은 울음소리를 내며 암컷과 알을 지키지 않고 줄행랑을 놓는다. 하지만 이런 비열한 행동은 스스로 적의 미끼가 됨으로써 적의 시선을 돌려 암컷과 알을 지키려는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다. 수컷이 그토록 야단스럽게 도망치는 것은 암컷과 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살신성인이 따로 없다. 이쯤되면 그동안 육아에 무관심했던 남성들은 속이 뜨끔할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를 마무리한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같이 음미해보자.

수컷이라는 것은 슬픈 생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보기에는 한심하게 보여도 수컷은 사실 고상한 생물이다. 그리고 행복한 생물이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수많은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물 수컷들의 육아를 보면서 마음속 깊이 그런 생각을 했다.(pp 228~229)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98명이다.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의 가임 기간(15~49세)동안 아이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추세라면 2016년 약 5000만명인 우리나라 인구는 약 120년 후에는 1000만명으로 줄어든다. 2300년이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사실상 소멸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육아는 강한 생명만이 할 수 있다. 육아 과정에서 강한 포식자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에게 저항하거나 피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최상위 포식자인 포유류 남성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것은 강한 수컷이라는 방증이다.

수컷은 자손을 증식시키는 암컷이 유전자를 더욱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은 여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모든 수컷들은, 특히 남성들은 명심해야 한다. 물론 나부터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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