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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억 신약물질이 1조로···두 바이오벤처 '공생'의 마법

레고켐 개발 물질, 브릿지바이오 거쳐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
제3자에 다시 팔 때 이익 나눠···중간 마일스톤도 받을 예정
채제욱 레고켐 전무 "올해 기술료로 흑자 전환 예상"
"비교적 적은 금액인 300억 원에 팔았던 신약 후보물질이 수십 배 가치가 높아져 돌아왔습니다. 기술이전 기술료(마일스톤)만으로 올해와 내년 회사의 흑자 전환이 예상됩니다. 바이오벤처에서 이례적인 일이죠."

글로벌 기술계약과 공동연구를 총괄하는 채제욱 레고켐바이오 전무는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지난 3년간 채 전무가 해외 협업을 위해 만난 외국 기업은 300곳이 넘는다. <사진=한효정 기자>글로벌 기술계약과 공동연구를 총괄하는 채제욱 레고켐바이오 전무는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지난 3년간 채 전무가 해외 협업을 위해 만난 외국 기업은 300곳이 넘는다. <사진=한효정 기자>
2017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대표 김용주)에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대표 이정규)로 기술이전된 항섬유화제 'BBT-877'이 2년 만에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수출됐다. 거래 규모는 기존보다 50배 오른 약 1조5000억 원. 


기술을 직접 수출한 기업은 브릿지바이오지만, 원천물질을 개발한 레고켐바이오도 마일스톤의 절반 정도를 획득한다. 선금급과 단기 마일스톤은 기본이고, 베링거인겔하임의 임상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내년까지 상당량의 '중간 단계 마일스톤'도 추가로 받을 예정이다. 

채제욱 레고켐바이오 전무는 "브릿지바이오가 후보물질을 다른 기업에 다시 팔 경우 우리에게 이익을 일정량 분배한다는 '제3자 기술이전 이익 분배' 계약을 한 덕에 양 기업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었다"며 "한국 바이오벤처 생태계와 자체 비용으로 임상에 진입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에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 BBT-877, 폐 굳게 만드는 효소 차단 

BBT-877은 특발성폐섬유화증(IPF) 치료제로 개발 중인 저분자화합물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자체 약물 라이브러리와 스크리닝·합성 기술인 '레고케미스트리'를 이용해 약 3년 만에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이름에 붙은 '877'은 시작 물질의 구조를 877번째 변형해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물질의 대상 질환인 폐섬유화증은 폐에 흉터가 생기면서 조직이 단단해져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희소 질병으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 300만여 명이 이 병을 앓고 있다. 채 전무는 "폐섬유화증 치료제가 2개 판매 중인데 증상 완화 수준"이라며 "이 질병의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높다"고 설명했다.

BBT-877의 작용 원리는 인체 효소인 오토택신(ATX)의 작동을 멈춰 섬유화를 막는 것이다. 오토택신은 'LPC'라는 혈중 물질을 'LPA'로 전환한다. LPA가 폐 세포로 이동해 LPA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폐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다. 레고켐바이오는 폐섬유화증 환자의 체내에 오토택신이 많이 발견됐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이 효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채 전무는 "오토택신을 타깃으로 삼는 또 다른 글로벌 회사의 신약 후보물질과 BBT-877을 비교한 결과, 우리 물질의 LPA 생성 차단 능력은 10배 높고 독성은 낮았다"며 "BBT-877이 후발 주자이지만 신약 가능성은 더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라고 자신했다.

◆ 레고켐·브릿지, 각 기업 전문성과 시기 맞아   

신약이 될 가능성은 컸지만, 이 물질이 개발됐을 당시 레고켐바이오에는 다른 약물 파이프라인들이 늘고 있어 BBT-877의 임상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침 비임상에 들어갈 후보물질을 찾고 있던 브릿지바이오를 만나면서 기술이전이 성사됐다.

브릿지바이오는 이미 연구된 후보물질을 사들여 비임상·임상을 통해 가치를 높인 다음 제약사에 수출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형 바이오벤처다.

채 전무는 "브릿지바이오는 신약 가능성을 보는 안목, 소수 정예 비임상·임상 전문가, 외부수탁기관 조율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LG생명과학 출신인 이정규 대표와 김용주 대표의 의기투합도 기술이전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기술이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두 회사는 계약 이후에도 정기 회의를 하며 비임상·임상 결과를 함께 분석했다. 그러던 중 임상 1상이 끝나기도 전에 베링거인겔하임에서 계약을 제안했다. 

채 전무는 "베링거인겔하임은 이미 항섬유화 치료제 오페브(닌테다닙)를 팔고 있는 항섬유화 개발 경험이 많은 기업"이라며 "이런 회사에서 1조5000억 원에 거래를 제안하고 중간 단계 마일스톤까지 준다는 것은 우리 약물이 그만큼 높이 평가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는 "BBT-877은 흉터 생성으로 발병되는 지방간, 간경화, 심장·신장 질환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베링거인겔하임도 임상에서 효능을 입증한 후 적용증을 확장할 듯하다"고 내다봤다.

레고켐바이오의 ADC 파이프라인과 협력사. <그림=레고켐바이오 홈페이지>레고켐바이오의 ADC 파이프라인과 협력사. <그림=레고켐바이오 홈페이지>

레고켐바이오는 대부분의 사업을 협업으로 진행한다. 항체에 링커로 약물을 붙이는 ADC 플랫폼과 레고케미스트리 기술을 기반으로 항체약물, 항생제, 항응혈제, 항섬유화제를 국내외 기업과 함께 개발한다. 기술이전 된 이후 현재 임상에 진입한 약물은 3~4개 정도다.

지난 23일 레고켐바이오는 전년 대비 매출액은 375억 원, 영업이익은 280억 원 증가할 전망이라고 공시했다. 올해 흑자 전환에는 브릿지바이오와의 제3자 기술이전 마일스톤과 함께 푸싱제약(Fosun Pharma), 하이헤바이오(HaiheBio), 밀레니엄파마수티컬(Millenium Pharmaceutical)과의 기술이전 선금급과 마일스톤 등이 크게 기여했다. 채 전무는 "앞으로도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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