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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주 52시간' 근무···"韓 연구실 무너진다"

국보연 제외 출연연서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
"연구는 생산직 아냐, 수년 뒤 연구성과 뒤쳐질 것"
오는 7월부터 연구개발 업종 기관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법이 시행된다. 25개 출연연 대부분이 대상이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52시 시행에 대부분 한숨을 쉬었다. 워라밸 중시를 존중하지만 제삼자가 근무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연구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 위주의 제도라는 의견이 다수다.<사진=대덕넷 DB>오는 7월부터 연구개발 업종 기관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법이 시행된다. 25개 출연연 대부분이 대상이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52시 시행에 대부분 한숨을 쉬었다. 워라밸 중시를 존중하지만 제삼자가 근무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연구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 위주의 제도라는 의견이 다수다.<사진=대덕넷 DB>

오는 7월 1일부터 연구개발 업종 기관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법이 시행된다. 25개 출연연 중 ETRI 부설기관인 국가보안기술연구소를 제외한 연구소가 대상이다. 근로시간 단축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연구소 내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하는데, 국보연은 보안상 문제로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아 근로시간 단축법 적용이 어려워 제외됐다.
 
출연연 근로 단축 시행안은 각 기관의 행정부서가 담당해 마련해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계획된 시간이 초과하면 PC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등 내용은 비슷하지만 기관마다 정규직, 비정규직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경우 정규직 연구원에게 재량근로시간제(업무수행 방법을 노동자 재량에 맡기는 것으로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던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를, 그 외 비정규직, 포스닥, 학생 등에는 선택적근로시간제(1개월 동안 총 근로시간을 넘지 않게 하되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가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음)를 도입할 예정이다. 6시 이후 컴퓨터 전원이 꺼지지만 '자기개발', '자율근무' 버튼을 누르면 추가근무가 가능하다. KIST는 제도 시행 이후 불합리한 부분은 없는지 계속 모니터링하며 노사간 협의를 통해 일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는 육아기단축근로자를 제외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택적근로시간제 시행안을 마련했다.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되 화·수·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월요일 오후 2시간, 금요일 오전 2시간을 필수 근무시간인 '코어타임'으로 지정했다. 근무시간 은 30분 단위로 측정된다. KISTI는 시행안을 오는 28일 노동조합과 합의해 시행 여부를 확정한다고 밝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전직원 대상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연구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코어타임을 지켜야 하며, 출근은 오전 7시부터 가능하다.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이 코앞이지만 대부분 연구원들은 냉담한 반응이다. '연구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 위주의 제도'라며 대한민국의 연구실이 제대로 유지될지 우려하고 있다. 연구 특성상 24시간 운영되는 장비나 오랜 시간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도 걱정이다. 연구인력을 더 충당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구책임자가 연구실 인건비 일정 비율을 과제 수주로 충당해야 하는 PBS(연구과제중심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마음대로 인력 충원을 하기 어렵고, 학생연구자 4대 보험 의무가입으로 학생인건비가 20~30% 상승해 학생연구원을 많이 고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A 연구자는 "실험과 연구가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수백수천 번 실험을 한다. 그러다 결과가 안 나오면 고민도 하고 머리도 식히면서 커피 한 잔을 할 수도 있는데 생산직처럼 6시 이후 퇴근을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연구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최근 10년간 후퇴하고 있는 출연연의 연구자율성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A 연구자는 "2017년부터 학생연구원들이 근로계약을 맺으면서 인건비가 올랐다. 고용계약을 한 학생연구자들의 급여를 매년 올려줘야 하는 상황인데다 자를 수도 없어서 우리가 과제를 더 많이 따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과제수는 많은데 일하는 시간까지 정해놓는다니 어떻게 연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뒤 연구결과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 기관 책임급 연구자도 "이 제도는 결코 연구소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에 따르면 연구 책임자, 박사후연구원, 학생은 열심히 연구해 특허를 내면 이력서에도 해당 내용을 쓸 수 있다. 어찌 보면 평생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는 "본인 스스로 미래 경쟁력을 위해 일한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주52시간을 악용해 주말 외 근무를 하고 금전적 이득까지 취하겠다고 권리만 주장하는 연구원들이 나올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해당 제도 도입 철학이 가능한 무리한 요구나 조건을 내세워 사람들을 엉터리로 대우하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그 철학이 잘 지켜질지 의문"이라며 "국감 기간처럼 특수한 경우일 때 하루 몇 시간 오버타임을 정해서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등 다른 방식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리더급 연구자도 "세계적인 연구리딩그룹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밤새도록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당 제도에 대해 과학계가 너무 조용한 게 이상할 정도"라며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연구실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이다. 한 번 만들어놓은 정책은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굉장히 걱정스러운 제도"라고 한숨을 쉬었다.
 
◆ 외국인 연구자도 갸우뚱 "연구시간, 연구자 스스로 정하는 것"

해외 연구자의 생각은 다를까. 외국에서 근무 중인 연구자도 연구개발 업종 근로 단축법에 대해 설명하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점점 중시되는 분위기는 어디든 비슷하지만 연구를 하다 시간이 다 됐다고 장비를 끄고 집에 돌아가는 것은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사례라는 것.

NIH(미국국립보건원)에 근무 중인 C 연구원은 "연구시간을 한정하는 것은 리서치와 맞지 않는다. 연구는 한없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유연해야 해야 한다"면서 "NIH의 경우 오후 3시에 들어오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들은 밤새워 연구한다. 그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NIH의 모든 연구실은 24시간 오픈되어 있다. 연구시간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며 "제삼자가 연구시간을 통제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잘라 말했다.
 
NIH 연구원 말처럼 연구자 스스로 연구시간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제도가 만들어져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출연연의 K 박사는 "몸을 쓰는 근무자들은 일정 근무 시간과 휴식 시간을 지켜야 하고, 일반 기업인은 늦게 일하는 게 당연한 문화가 있으니 이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자는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어떤 날은 오래 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적게 하기도 한다"면서 "지금도 밤 10시 이후나 주말 근무는 일하는 시간에 반영이 안 된다. 주 52시간이 굳이 있어야 할까. 연구소에 적합한 제도는 아닌 것 같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좋지만, 강제성 있게 하면 안 된다. 지금은 너무 급하게 바꾸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P 연구 본부장은 "최근 선택적근무제로 많은 연구자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에는 만족하지만 9시에서 6시까지 일하던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고 더 할 사람은 더 할 것"이라며 "예전에는 근태를 사람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봤는데, 이제 이런 생각을 지양하고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제도에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출연연 P 박사후연구원은 주 52시간 업무의 장점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근무 시간을 편하게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며 "원하는 시간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업무 효율성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연연의 Y 박사후연구원은 "논문이나 실험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주 52시간을 실시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며 "단지 시간이 정해지면 그 시간 안에 처리하도록 집중하게 될 것 같고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 창업 장려해놓고 52시간? 치열한 시장에서 스타트업 패(敗)할 것
 

300인 이상 사업장(2018년)과 연구개발 업종의 근로시간 단축법에 이어, 2020년부터 50인~299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2021년 7월 1일부터 5인~29인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법이 시행된다. 기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창업을 막 시작한 연구자나 기업인들은 걱정이 앞선다. 치열한 시장에서 주 52시간을 지켜가며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연구소에서 기술을 개발해 창업을 준비 중인 P 박사는 "소규모 기업도 수년 안에 주 52시간을 시행하게 될 거다. 정부가 연구소 창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치열한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근로 단축법을 시행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며 "이 같은 행정 위주의 제도가 연구소 창업까지 위축시킬 것"이라 우려했다.
 
연구소에서 창업해 회사를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H 기업가도 후배 연구자들의 창업을 걱정했다. H 기업가는 "1~3년 차 기업은 매출 없이 에너지만 투입해 개발과 마케팅을 해 이후 매출로 연결해야 하는데 주 52시간을 적용하면 데스밸리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처럼 사업경력이 있는 기업은 그나마 낫지만 신생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52시간은 결국 4교대로 일을 하도록 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방안으로 보인다. 젊을 때 일을 해 안정을 찾고 싶은 근로자들의 급여가 줄어들어 불만의 소리도 듣는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R&D기반 기업관계자는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가 근로시간 단축법으로 출퇴근과 휴식시간 모두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출장 시 주말을 끼여 휴가와 연결했는데 그런 것도 힘들게 됐다. 신뢰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며 "컴퓨터를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등 방어장치 설치도 기업주에게 불필요한 예산이 투입돼야 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B 씨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워라밸을 중시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감소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업무 효율 향상이 기대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52시간 근무 적용이 힘든 직업군도 많다고 본다. 산업에 따라 차등이나 적응 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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