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존·타이어뱅크 등 서울·세종으로···벤처, 스타트업도 이전 고민
공무원, 지원기관 현장과 스킨십 없어···대학·출연연 중심 특구 환경서 기업인 중심으로

"대전시에 애정이 있지만 악화되는 인력, 자본, 시장 환경과 기업인을 우대하지 않는 환경에서 활동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떠나겠습니까." 

대전에서 20여년 이상 기업을 운영해온 벤처기업인 L씨는 이같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L씨는 기업활동이 지속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대학, 출연연 중심 특구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인 중심 네트워크 활성화와 지원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지역 벤처생태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추가 기업 이전·도산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의 탈대전(대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문제는 스타트업, 벤처뿐만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들까지 속속 수도권을 비롯해 세종, 대구 등 타지역으로 떠나는데 있다. 이는 대덕의 지속가능한 기업 생태계와 지역경제를 악화시키고, 인재유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기업 이전의 표면적인 이유는 기업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인력, 시장,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최저임금제와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개선, 타지역의 우수한 기업 지원 제도 활용, 대전 내 산업용지 부족, 특구법 규제, 출연연 중심 특구 환경 강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인들은 현재 대부분의 생태계 제도가 출연연, 대학, 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기업인을 우대하고,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체계가 구축되기를 희망했다. 대전광역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대전테크노파크, 대전경제통상진흥원 등 관이나 지원기관들이 현장의 기업을 등한시하지 말고, 기업 현장을 찾아 스킨십하며 기업인 중심의 특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향토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수도권, 세종 등으로 이전 

올해 들어 대전 향토기업들의 이전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골프존(대표 박기원)은 본사를 서울로 이사했다. 골프존은 지난 2000년 5월 설립한 이래 IT 융합기술을 융합한 스크린골프 상품으로 과학기술부(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성과지원사업, KAIST 브랜드육성지원사업 등을 받으며 지역에서 성장한 대덕벤처이다.

지난 2011년 코스닥 상장에 이어 일본, 미국 지사를 설립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골프존의 본사 이전은 해외거래처 증가에 따른 업무 효율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어뱅크(대표 김춘규)미래생활(대표 변재락)은 세종으로 본사를 이전한 사례이다. '잘풀리는 집' 브랜드로 알려진 미래생활은 지난 2005년 대전 문평동 공장을 준공하고, 보습티슈와 화장지 등을 출시했다. 이후 2011년 청원 공장을 준공하며 세종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타이어뱅크는 지난 2011년 창립한 타이어 전문 유통회사로, 마찬가지로 본사를 세종으로 이전했다. 

제조기업 대표 K씨는 "대전시로부터 지원도 받지만 세종시의 파격적인 분양 조건에 이전을 고민한 적이 있다"면서 "대덕에서 오래 기업활동을 수행하고 싶지만 특구 내 각종 규제와 생산 규모 용량 제한으로 추후 대덕을 떠날 상황도 염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덕의 스타트업, 벤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타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이전을 검토하는 사례도 있다. 정육각, 플라즈맵, 클라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이테크 기술로 주목되며 지역 성장의 기대주들도 대전을 떠나는 상황이다.

초신선 정육점을 지향하는 정육각(대표 김재연)은 지난해 2월 대전에서 성남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이전 이유에 대해 "물류때문에 회사를 이전하게 됐다"면서 "임차했던 대전 공장은 폐쇄하고, 앞으로 더 신선한 고기를 유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용 플라즈마 멸균기 전문기업 플라즈맵(대표 임유봉)은 지난해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내에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준공했다. 대전 공장에서 월 150대 규모를 생산할 수 있으나, 월 400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함에 따라 추후 본사 이전도 고려하고 있다.

클라썸(대표 이채린)은 올해 하반기 서울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양방향 학습 플랫폼을 제공하는 이 기업은 개발자, 투자자 등 현장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서울로 이전할 계획이다. 

◆ 대학, 출연연, 공무원 아닌 기업인 중심 생태계 키워야···"스킨십도 필요"

최소 10년 이상 대덕에서 기업활동을 영위한 대덕 벤처들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데다 인력, 자본, 시장 측면에서 대전에서 기업활동을 수행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해법으로 이들은 시나 산하기관, 지원기관 등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스킨십하고, 기업인 중심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특구출범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벤처생태계 조성을 요구하고, 역할을 담당한 만큼 이제는 이들을 대우하고, 돕는 선순환체계가 구축되기를 기대했다.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대덕내 지원기관 통폐합과 특구 범위 축소를 통한 규제 완화 ▲기술벤처 특허 보호 노력 등 대전시만의 강점 강화 ▲기업인 협의체 구성과 교육 기회 부여▲공무원, 지원기관 관계자 등의 기업 현장 방문과 스킨십 강화 ▲교통·정주여건 개선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 등 신기술에 적극 도전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중견기업 육성대책 강화를 제시했다.

벤처기업인 G씨는 "대전시 교통, 정주여건, 기술벤처 보호 정책, 기업인을 위한 어린이집 개원 등 벤처기업인 지원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특히 대전시 산하기관, 지원기관 등에서 각 기관 맞춤형 네트워크를 구성하다보니 본연의 기업인 네트워크 형성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G씨는 "기업인들은 기업인에게 배우고, 서로 돕는 생태계에서 활동하며 외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초기 스타트업이나 청년 지원 등 외형적 요소가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성장을 이끌 중견 기업, 대덕 벤처를 지원할 실질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벤처기업 대표 H씨는 "기술사업화나 창업자 숫자 증가 등 실적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행사를 찾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며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면서 "각종 협의체에도 대학 교수, 출연연 박사 보다 기업인이 특구 중심에서 주축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씨는 "대전 기업들이 대전이나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대전이 기업가를 위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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