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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원장 "연구자 현장 누비고 리더 밀어줘야"

​[원로에게 듣는다②]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
韓 'Why, How' 고민 필요···"과학산업계 국가 미래 위해 중지 결집"
지난 10일 현 정부의 출범 2주년을 맞았다. 한국의 현실은 산업, 경제, 일자리, 성장 동력 등 여러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지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과학선진국들이 인공지능, 자율차, 우주탐사 등 미래 과학기술 선점을 위해 질주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며 방향성을 잃고 있는 상태다. 본지는 과학계 원로와의 인터뷰(또는 가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와 정부의 역할을 들어 보았다.<편집자 편지>

"한국은 '패스트 팔로워'로서 국가 발전을 이뤄냈지만 지금은 모두 내리막길입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와 같은 후발주자에게도 뒤처지고 있습니다. 회복하는데 최소 20년 이상 걸릴 것입니다. 연구자는 현장에 가봐야하며, 리더는 밀어줘야 회복될 수 있습니다."

과학산업계 원로는 현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이같이 조언을 건넸다. 학사 출신으로 40년 가까이 이병철·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며 삼성 혁신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 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

손 원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큰 흐름(Mega Trend)에 계속 뒤쳐지는 한국의 상황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과학산업계가 위기의식을 갖고, 대변혁을 이뤄내며 국가 미래를 이끄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원장은 한국이 전 세계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가운데 과학산업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놓친 원인과 잘못을 철저히 분석하고, 기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지 못한 원인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술만 갖고 계속 이야기한다"면서 "20세기 방식으로 '무엇(what)'만 이야기하는 반면 '왜(why)'나 '어떻게(how)'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은 왜 존재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맞춰 토론하며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면서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앞장설 과학산업계 리더도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 이제는 좌시하지 말고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위기에 처한 삼성종기원 혁신···"현장 소통하며 일류 제품 양산"

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한다. 언제든 순위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은 가전, 휴대폰 등에서 경쟁력을 가진 삼성이지만 1990년대는 브랜드 이미지도 형성되지 못했다. 일본의 제품들이 가전제품 매장 중앙을 차지하고 삼성 제품은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방치됐다. 지금은 일본의 제품들이 맥을 못추고 있다.

손 원장은 과학산업계 회복을 위해 삼성그룹이 1993년 이후 신경영 체제에 돌입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삼성 임원단은 68일 동안 해외를 순회하며 세계 혁신 동향을 파악하고, 전략을 설정해 구습타파와 질적 가치 추구로 조직문화를 혁신했다. 전사적 차원에서 관리, 전략, 창의가 함께 어우러졌다.  

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사진=강민구 기자>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사진=강민구 기자>
손 원장은 "리더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위기감을 갖고 다 바꾸자는 혁신이 있었다"면서 "텃세도 심했던 삼성을 뜯어고치고, 문화를 바꿔 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핸드폰, 반도체 산업 발전의 키워드는 결국 인재"라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이 활약할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었던 부분도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기술의 R&D 플랫폼 역할로 이러한 노력이 실제 제품화되는데 기여했다. 손 원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 원장을 역임하며 세계 최고 제품, 현장 중심, 신뢰 문화를 만들어 이를 현실화했다. 기술전략과 사업전략이 조화되며 연구개발부터 제품 양산까지 과정이 속도를 냈다.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당시 삼성전자 중앙연구소가 별도로 있었고, 삼성그룹의 기술 허브가 되겠다는 비전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연구원들과 사업부서 직원 간 거리감도 존재했다. 그러나 10~20년 뒤 미래를 그리고, 4세대 통신 R&D라는 세계 최초의 목표가 제시되고, 자긍심을 고취시키자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과가 나오고, 사업부서 직원들도 쉽게 알아듣도록 용어 작업도 병행했다. 

연구원들의 인식 변화도 이뤄졌다. 애초 자신들을 '과학자(Scientist)'라던 이들을 '엔지니어(Engineer)'로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로 산업계 판도가 바뀌는 것을 보며 연구원들이 긍지를 가졌고, 러시아 등 해외에서 인재도 유치했다. 

연구원들은 반도체, TV 등에서 세계 최고가 돼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비전과 꿈을 가졌다. 이를 위해 자신들의 연구가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연구자당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 10명과 네트워크를 갖도록 했다. 세계 최고가 아닌 사업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원천특허 창출과 가치혁신이 이뤄졌다. 

손 원장은 "연구는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걸 수 있는 연구를 개시하고, 혁신 로드맵을 만들어 국가 기술의 큰 그림을 공유하고, 기술원을 개방하는 행사도 열었다"고 말했다.

기술원과 현장의 소통도 중시됐다. 당시 연구원들은 현장을 매달 1번씩 방문했다. 실제 과제 진행상황을 점검하며, 양산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했다. 현장에서 함께 소통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과제를 유연화하거나 지원책을 마련했다. 

​기술원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대부분 양산에 활용됐다. 이전까지 60~70%가 사업화되지 못하고 버려진 것과 달리 세계 최고 제품으로 구현되는데 접목됐다.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가 적용되자 회의적이었던 주변인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기술원에서 도입한 'Design Review'는 기술 개발을 뒷받침했다. 기술원은 이 과정에 각 부분을 지원하는 전문가들을 참여시켰다. 과제 진행중 실패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약점을 보완하도록 지원했다. 전문가가 없으면 다른 전문가를 연계했다. 연구원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지원한 것이 핵심 골자다.

손 원장은 "과제 평가는 전문가들이 문제를 파악해 보완하고, 지혜와 힘을 모으는 과정이 돼야 한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난제에 도전하며 과제 책임자가 자신이 없다거나 부족한 부분을 가감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질책 보다 격려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삼성을 비롯한 과학산업계의 노력으로 20세기 먹거리는 창출했지만 이후에는 마이너스 적자가 현실화되고, 미래 먹거리도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중국 알리바바나 텐센트와 같은 혁신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도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 과학산업계는? "국가는 신뢰하고, 연구원은 자긍심 갖고 몰입해야"

"현 체계로는 출연연에서도 꿈을 가진 기술을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박수를 받을 만한 과제도 찾기 어렵습니다.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고 잘하는 시대도 끝났습니다. 정부는 출연연을 믿고 전권을 부여하고, 연구원들은 세계적인 목표를 세워 명예를 걸고 이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손 원장은 출연연에 대한 조언도 건넸다. 손 원장은 현 체제나 연구문화로는 세계를 이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출연연 원장의 권한이 부족하고, 연구원들도 과제수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게임체인저'를 기대할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개선책으로는 임계질량(Critical Mass) 확대, 구성원을 위한 연구문화 조성 등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정부나 국민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비쳤다. 정부가 연구 현장을 신뢰하고, 목표관리(MBO)가 아니라 꿈관리(MBD)로 바꿔 인재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원장은 "각 분야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재원, 인재, 시설 등 임계 질량을 한군데 모아 세계 최고가 돼 전세계 인재들이 연구하고 싶은 곳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제는 임계질량 확대없이 세계를 선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며, 출연연은 전략과제에 집중하고, 대학은 창의력이 높은 젊은 인재를 중심으로 연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손 원장은 구성원이 행복하고, 긍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연구 문화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세기가 기술과 생산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창의력 시대인만큼 구성원 스스로 몰입해서 신명나게 일하는 문화, 'Thank you'로 대표되는 포용 문화를 구축해 융합·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원들이 세계를 이끌 표준기술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단순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함께 힘을 모아 자신감, 신뢰, 존중하며 융합하는 문화를 확립하고, 국가 미래를 위한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19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 후 삼성에 입사했다. 한국비료공업을 시작으로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을 거쳤다. 주요 보직으로 19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2004년 삼성인력개발원 사장, 2008년 농심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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