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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發 연구자 빛났다···세계 첫 블랙홀 영상에 일조"

'산소마스크 필수' 해발 5000m에서 긴장하며 연구
김종수 박사"천문연구 협력하는 학문···'자부심'느껴"
김지영·강민구·김인한 기자 orghs12345@HelloDD.com 입력 : 2019.04.11|수정 : 2019.04.15
세계 첫 블랙홀 관측에 일조한 우리나라 연구자들. (왼쪽부터) 광야오 자오 연구원, 정태현 UST 교수, 조일제 천문연 연구원, 김재영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연구소 연구원.<사진=정태현 교수 제공>세계 첫 블랙홀 관측에 일조한 우리나라 연구자들. (왼쪽부터) 광야오 자오 연구원, 정태현 UST 교수, 조일제 천문연 연구원, 김재영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연구소 연구원.<사진=정태현 교수 제공>

"대부분 망원경이 고지에 있습니다. 산소가 부족해 마스크를 쓰고 망원경과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며 연구를 했네요. 고산병으로 몇몇 연구원들은 산에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기도 했죠. 천문학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하는 학문이라는 걸 더 느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성과는 상당한 자부심이 듭니다."(김종수 천문연 박사)
 
한국천문연구원 등 전 세계 연구기관 20여 곳의 과학자 200여 명이 참여해 인류 최초로 관측한 블랙홀 모습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연구진이 지난 10일 공개한 'M87'(Messier87·처녀자리 은하단) 블랙홀의 모습은 그동안 물리학 이론을 근거로 과학자들이 그려져 왔던 이미지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타원형의 깊은 어둠과 밝은 빛의 둥근 고리. 104년 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것과 들어맞았다.
 
'EHT연구진이 초대질량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는 타이틀에는 천문연과 UST 등 대덕소속 연구진의 노고가 숨어있다. 대덕의 연구자들은 관측데이터를 처리하고 바로잡는 등 분석작업을 통해 신뢰성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운영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전파망원경 10기가 모인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의 관측결과도 EHT 연구에 활용됐다. 여기서 얻어진 관측결과는 10일 자로 미국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 특별판에 발표된 6개 논문 중 4개에 결과가 게재되는 성과를 얻었다.
 
EHT연구진에 합류해 2017년부터 연구를 해온 우리나라 연구진으로부터 연구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산소마스크가 일상? "협력하는 연구 자부심 느껴"

한국인 연구자들은 블랙홀 전파신호를 영상화하는 작업에 여러 기여를 했다. 사진은 EHT에서 전파신호를 영상화하는 팀의 모습. <사진=조일제 연구원 제공>한국인 연구자들은 블랙홀 전파신호를 영상화하는 작업에 여러 기여를 했다. 사진은 EHT에서 전파신호를 영상화하는 팀의 모습. <사진=조일제 연구원 제공>

'망원경을 활용해 데이터를 얻고 분석하는 연구는 앉은 자리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연구진은 하늘을 날고 산에 오르는 등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가 운영하는 관측망인 KVN과 EAVN에는 천문연 연구원이 상주해있어 관측결과 활용이 가능했으나, 국내 연구진은 동아시아관측소(EAO) 산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하와이섬 마우나케아에 위치)과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의 협력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해발 고도가 높은 망원경에 관측을 위해 올라가야만 했다.
 
연구진들은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우주까지 갈 순 없었지만 높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각 전파망원경의 관측자료를 동기화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덕분에 고산병도 앓았다.
 
높은 산에 망원경이 위치한 만큼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JCMT로 가는 길은 대부분 도로가 잘 닦여있어 비행기와 기차 등을 이용해 해발 3000m에 있는 관측자용 숙소까지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정작 연구를 위해 가야만 하는 망원경(JCMT)이 위치한 해발 4000m까지는 비포장도로라 고생도 꽤 했다.
 
김종수 천문연 박사는 "아무래도 산소가 부족하다 보니 생활이 많이 불편했다. 적응을 못 하는 연구원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도 했다"면서 "고산병은 평소 건강과는 무관하게 오더라. 뛰는 것도 자제하면서 늘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ALMA는 해발 5000m에 망원경이 있어 더 까다로웠다. 연구자가 고산지대에서 견딜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사전에 건강검진자료를 제출해야 했고, 올라가기 전후로 의사의 건강체크가 필수로 이뤄졌다.

ALMA 망원경은 유럽, 북미, 동아시아, 칠레가 서로 협력해 해발 5000m 높이에 있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세워진 66개 전파안테나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전파간섭계 시설이다. 고산지대에 위치해 산소부족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국내 연구진은 이곳에서 수 일간 연구를 했다.<사진=천문연 홈페이지>ALMA 망원경은 유럽, 북미, 동아시아, 칠레가 서로 협력해 해발 5000m 높이에 있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세워진 66개 전파안테나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전파간섭계 시설이다. 고산지대에 위치해 산소부족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국내 연구진은 이곳에서 수 일간 연구를 했다.<사진=천문연 홈페이지>

연구환경이 녹록치 않았지만, 연구진은 6개 대륙 8개 망원경으로부터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관측된 데이터를 처리·분석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조일제 천문연 연구원은 "4개의 그룹으로 나눠 블랙홀의 전파 데이터를 영상화하는 동일한 연구를 수행했다"며 "이번 작업이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데이터를 처리·분석해 만든 이미지가 4개 그룹에서 모두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김종수 박사는 협력해 연구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그는 "이번 관측은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같은 시각에 이뤄졌다. 8대의 망원경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데이터를 모아야 하므로 연구자 간 협력이 없으면 가능하지 못한 연구"라면서 "천문학은 서로 경쟁하는게 아니라 협력하면서 하는 학문이라는 걸 느꼈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블랙홀 관측, 1년 전 완료...향후 목표는 움직이는 영상
 

EHT연구진은 약 1년 전 블랙홀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실체를 관측했지만 바로 공개를 할 순 없었다. 논문제출과 국제공동연구 등의 사정으로 발표까지 1년이 걸렸고, 대망의 발표 순간이 지난 10일이었다.
 
김종수 박사는 "1년 전 출장 등으로 8명의 연구진이 모두 한 자리에 있진 못했지만 5명의 연구자는 한 자리에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회상했다.

이번에 관측한 M87.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관측자로 향하는 부분이 더 밝게 보인다. <사진=천문연 제공>이번에 관측한 M87.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관측자로 향하는 부분이 더 밝게 보인다. <사진=천문연 제공>

EHT연구진의 다음 목표는 블랙홀의 움직이는 영상을 얻는 것이다. 향후 미국 애리조나와 프랑스 고산지대, 그린란드 3곳에 망원경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이 보유한 전파망원경을 직접 동시 관측에 참여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선 작은 연구 성과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조일제 연구원은 "2015년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에서 중력파를 검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검출은 없는지 철저한 검증이 이뤄졌고, 그러한 태도를 참고해 이번 연구에 임할 수 있었다"며 "M87 관측 성과는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의 관측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Sagittarius A)는 M87보다 질량이 작아 블랙홀의 크기가 작다. 대신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측에 용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 연구원은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에서 내뿜는 빛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가스, 물질 등 여러 장벽이 있다"며 "알고리즘 개발, 데이터 처리·분석 연구를 고도화해 관측데이터를 바로잡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해 데이터 교정, 전파신호 수집, 이미지 변환 등을 담당한 광야오자오(Guangyao Zhao) 천문연 박사후연구원은 "2013년부터 천문연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했고, 한국연구재단의 해외우수신진연구자 사업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해 왔다"면서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이루고 싶었던 연구 성과의 한 축을 담당해 기쁘다. 앞으로도 한국의 우수한 전파천문관측 노하우와 KVN을 활용해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Sagittarius A)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를 계기로 천문·우주 분야 저변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의견도 이어졌다. 변도영 천문연 박사는 "국제협력 프로젝트로 전 세계 기관, 국가간 활발한 교류와 소통이 연구성과 창출에 원동력이 됐다"면서 "EHT 프로젝트가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해 10년에 걸쳐 이제 영상 하나가 나왔는데 이처럼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관심과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인류에게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큰 질량 주변의 시공간은 왜곡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에 참여한 국내 연구자는 천문연의 김종수, 변도영, 손봉원, 이상성 박사와, 정태현 UST 교수(천문연), 조일제 UST 학생(천문연), Guangyao Zhao KRF 박사후연구원(천문연), Sascha Trippe 서울대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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