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학회 경험자들 "한개 회의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진행하며 토론 안돼"
동료심사 지나치게 간소하고 마케팅 과하면 일단 의심 필요
연구재단, 부실학회 특징과 예방대책 발표

부실학회인지 사전에 알아보는 체크리스트.<자료=한국연구재단>
부실학회인지 사전에 알아보는 체크리스트.<자료=한국연구재단>
부실학회 1회 참석과 자녀 호화유학, 외유성 출장 의혹 등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지명철회를 당한 가운데 부실학회 문제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과학계 현장에서는 '기조연설자 등이 탄탄하면 한번은 모르고 갈 수 있지 않느냐'와 '경험많은 연구자로서 어떻게 부실학회 모르고 갈 수 있는가'로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일부 연구자의 반복적인 부실학회 참석 사실이 확인되며 과학계에 큰 파장이 일었다. 과기부는 연구자의 윤리 문제를 언급하며 출장비 환수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2017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인도계 학술단체 오믹스(OMICS) 관련 학회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믹스는 정상적인 논문의 출판 문화를 해치고 과장 광고를 한 혐의로 2016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공식 제소된 바 있다.

후보자는 관련 학술지에 논문 게재나 발표는 없었다. 장관 후보자 역시 IT에서 바이오 등으로 연구분야를 확대하며 바이오마커 관련 연구동향을 수집하기 위해 국제 학회에 참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유전체학, 분자생물학 전문가가 기조강연을 하는 등 참석자, 발표내용이 충실해 당시로서는 통상적인 학회로 인식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후보자는 부실학회로 알려진 오믹스 관련 학회 참석으로 결국 장관 지명 철회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전에 이를 확인하지 않은 현 정권의 인사 검증 절차의 부실론도 제기됐다.

오믹스가 부실학술단체로 지목되는 이유는 4가지다. FTC 고소장에 의하면 우선 제출된 논문들의 동료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저자에게 심사평을 주지도 않았다. 일부에서 연구자 허락없이 특정 학자를 저널의 편집자로 임명하고 있다. NIH(미 국립보건원)는 오믹스의 출판관행이 윤리적 측면에서 우려된다며 오믹스가 출판하는 어떤 저널도 국제의학 데이터베이스 펍메드(PudMed)에 색인하는 것을 거절했다.

이외에도 오믹스는 저자들이 논문 철회를 요청했음에도 무조건 출판을 강행하기도 했다. 특히 NIH 직원의 이름과 이미지를 사칭해 마케팅한 점이 알려지며 FTC는 오믹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럼 부실학회를 사전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한국연구재단 자료에 의하면 부실학회는 부실 추정 학술지(약탈적 학술지)를 발행하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 학술지는 과학적 발견과 학문 증진을 위한다면 약탈적 학술지는 이유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동료 심사 등 적절한 절차대신 돈만 지불하면 게재해주는 등 출판 윤리를 어기는 학술지로 구분된다. 동료심사가 부실해 게재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간소화되기도 한다.

부실학회 역시 목적이 이윤추구에 있다. 권위있는 학회에 참석하려면 우선 논문초록을 제출하고 심사를 거친다. 반면 부실학회는 오믹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논문 초록 제출 후 심사과정 없이 학회에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부실학회는 지나치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신진연구자나 대학원생이 부실학회 참석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학회 논문의 학술지 게재 약속 때문인 경우가 많다"면서 "저명한 학자는 학회 논문을 출판해주는 사례도 더러 있지만 논문 게재를 보장하는 학회라면 부실학회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부실 추정학회는 특정분야를 국한하는 일반 학회와 달리 다양한 분야의 학회를 개최한다. 연구재단이 실제 부실학회에 참석했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일반 학회는 여러 회의실에서 각 주제에 맞는 학회가 열리는 반면, 부실 추정학회는 한개의 회의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학회를 열어 제대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이 없거나 참석자 수가 저조해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각 관광지역 홍보와 일정이 게재되기도 한다. 학회 등록비만 내면 학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학회참석증서를 보내주는 곳도 있다.

부실 추정학회의 또다른 전략 중 하나는 연구자를 기조발표자나 토론자로 초청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기조발표자나 토론자로 초청되면 영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학회 참석을 수락하기도 한다는게 연구재단의 분석이다. 부실 추정학회는 참석한 연구자의 이름으로 다른 연구자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악용하기도 한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학회 참석에 앞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살펴보고 관련 학문분야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특히 운영자와 개최자를 확인하고 학회가 여러 분야에 걸쳐 진행되거나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면 부실학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한편 부실학술지와 부실학회 문제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논란이 큰 상태다. 국제표준 연속간행물 번호(ISSN)에 의하면 2017년 말 기준 등록 번호가 200만건이 넘는다. 매년 6만에서 7만건이 새롭게 등록되고 있어 부실학술지를 걸러내기도 쉽지 않다. 전문 사서 제프리 빌(J. Beall)이 1200여개의 가짜(fake) 저널 리스트(일명 Beall's List)를 작성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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