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 경제과학특별보좌관 26일 대덕열린포럼서 강조
'한국 과학산업계 축적과 스케일업' 주제 발표···질의응답 활발
"혁신 시도 혼자 부딪히는 건 무리, 연구단지 클러스터 제 역할 해야"

"연구자 혼자 5000번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을 스케일업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나오는 수많은 혁신 아이디어를 시험할 연습장과 같은 정부 차원의 '공공구매'가 필요합니다. 혁신 기술로 만든 제품을 정부가 선도적으로 구매해 온 국민이 도와주는 체제로 가야 합니다."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이 강조한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스케일업 전략 중 하나다. 이 특보는 지난 26일 대덕열린포럼을 찾아 한국 과학기술의 축적과 스케일업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기술경영 전문가인 이정동 특보는 올해 1월 23일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에서 한국 산업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전문적인 제언을 던져 호평을 받았다. <사진=한효정 기자>
기술경영 전문가인 이정동 특보는 올해 1월 23일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에서 한국 산업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전문적인 제언을 던져 호평을 받았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날 산학연 관계자 100여 명이 강연장을 가득 채운 자리에서 이 특보는 '혁신지향적 공공구매'가 과학기술계의 성장에 기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는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보면서 개선해가야 한다"며 "기술선진국은 정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우리 공공부문은 위험회피적 성향이 강해 혁신에 기여하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고 정의했다.

그는 미국 민간기업 스페이스X가 미국항공우주국(NASA)과의 협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들며, 혁신적 시도를 개인이나 기업이 혼자 버티게 하지 말고 사회가 분담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구자들에게는 시행착오 경험을 나누는 협력 문화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는 "연구단지가 공동 연구과제 등 협업을 제대로 발전시켜 혁신 클러스터로서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며 "연구자들이 시행착오 경험을 잘 주고받고 있는지, 분야·조직간 장벽을 높이고 내 것만 끌어안고만 있거나 다른 조직에게 정보를 요구만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15년간 아이디어를 5127번 개선해 창의적인 청소기를 선보인 전자제품 기업 '다이슨' 이야기가 언급됐다. 여기서 5000여번의 고통스러운 시행착오의 축적 과정이 이 특보가 말하는 '스케일업'이다.

이정동 특보는 "단시간에 투자해 성과를 보려는 정책 체제가 산업계에 퍼져 있다"며 "정책 구조를 실행 역량에서 개념설계 역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정동 특보는 "단시간에 투자해 성과를 보려는 정책 체제가 산업계에 퍼져 있다"며 "정책 구조를 실행 역량에서 개념설계 역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그는 "신선한 아이디어는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 뒤에 숨겨진 수천 번의 아이디어 조합·변화·반복 시도는 아무나 못 한다"면서 "단, 매번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퇴적'이 아닌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하는 '축적'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치열하게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한 고수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메뉴얼'이다. 이 특보는 대부분의 정책담당 조직이 정책을 평가하고 고쳐 쓰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 사람의 창의성보다 조직이 시스템적으로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메뉴얼이 업데이트되는 문화가 기술 챔피언 국가와 조직을 만든다"고 정의했다. 

◆ 출연연-기업 연결고리, 평생학습 必

강연이 끝나고 1시간 동안 이 특보와 참석자들의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과학기술인, 기업인, '축적의 시간' 독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특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기업 대표는 협업보다 생존과 경쟁에 휘둘리는 게 현실이라며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물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직원은 작은 회사라 축적의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이 특보는 출연연의 시행착오와 역량을 기업이 전달받는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한 번에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어느 참가자의 고민에는 '평생 학습'을 제안했다. 이 특보는 "대학 졸업과 함께 교육이 끝나서는 안 된다. AI 교육은 40대 사람들에게도 중요하고 몇 년 있으면 다른 키워드가 나올 것"이라며 "사회가 학교로 전환되어 일터에서 매일 스케일업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참가자는 스케일업이 혁신보다는 유지나 보수에 가깝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특보는 "창조적 혁신은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니다. 스케일업이 진보적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확신했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신희섭 IBS(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은 "지금까지 과학기술계에 축적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할 수 없다"며 "똑똑한 연구자들이 많지만, 축적과 스케일업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과학계를 좌지우지하는 관계자들도 오늘 강연 내용을 들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날 강연에 앞서 이 특보는 대덕 특구 연구자·기업인들을 만나 미세먼지·인공지능·빅데이터 등 과학기술 현안에 대한 현장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그는 AI 교육 인력양성과 산업계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을 듣고 기존 정책 개선에 필요한 조언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정동 특보와 참가자들의 질의응답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들은 포럼이 끝난 후 명함을 주고받으며 못다 한 대화를 나눴다. 이 특보의 책을 들고 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정동 특보와 참가자들의 질의응답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들은 포럼이 끝난 후 명함을 주고받으며 못다 한 대화를 나눴다. 이 특보의 책을 들고 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정동 특보는 젊은이에게 "20년 뒤는 너무 희미하니, 5년 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매일 스케일업 하라"고 조언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정동 특보는 젊은이에게 "20년 뒤는 너무 희미하니, 5년 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매일 스케일업 하라"고 조언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