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선의 벤처 러브레터②] 첨단 기술이 답일까

4차 산업혁명 '다시 보기', 기술 관점 넘어 사회문제 대응으로
씨앗이 발아하려면 적합한 온도, 물, 빛 등 특정 조건이 맞아야 한다. 씨앗의 품종이 아무리 우수해도 발아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씨앗은 생명을 시작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과 성장도 씨앗과 마찬가지의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 첨단기술이라는 우수한 씨앗 덕분에 발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혁명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범위·복잡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라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던졌다. 동시에 4차 산업혁명에 의해 2020년까지 약 510만 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의 'WEF 미래고용보고서'까지 발표되자,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이슈가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첨단기술과 동의어 혹은 유의어라고 생각한다. 첨단기술을 열심히 개발하면 4차 산업혁명의 선두가 된다고만 여기고 있다. 이 패러다임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이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리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 즉, 기술과 사회가 연관된 유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해외에서의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우리와 좀 다르다. 얼마 전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방문했던 필자의 동료는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을 기술이 아닌 기술·사회·문화를 아우르는 거대담론으로 바라보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Society 5.0'이라는 구호를 내건 일본 역시 4차 산업혁명을 기술로만 보지 않는다. 생산인구의 감소, 경기침체, 전통산업의 부진 등을 극복할 하나의 전략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4차 산업혁명을 경제사회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인식하고 기술·사회·문화 등 여러 관점에서 대응하는 반면, 우리만 첨단기술로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다분히 정책적인 드라이브에 의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첨단기술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정책들에 이끌리다 보니,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마치 신기술·신제품 설명회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사회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기술은 사회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제 우리도 4차 산업혁명을 기술·정책공급자 중심이 아닌 문제·수요자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 대체 왜 시작된 것인지부터 고민해 보자.

첫 번째 요인은 '경쟁의 심화'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 짧아진 혁신주기, 복잡한 제품의 출시, 변동성이 큰 시장 등 글로벌 경제·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세계 각국의 경쟁이 매우 심화됐다. 그러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성과 유연성이 극대화된 생산체계를 추구하게 됐고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두 번째로,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이다. 세계 경제를 이끌던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그동안의 핵심 산업들이 대부분 성숙기 혹은 쇠퇴기에 진입하면서 이제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세계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성장동력을 필요로 하게 됐고, 첨단기술과 다학제적 융합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이 만들어졌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도 4차 산업혁명의 주요인이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1965년 5.05명이던 총 출산율은 2015년에는 2.452명으로 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동시에 인류는 10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오래 생존한다.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는 자연스럽게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노동생산성 저하를 가져왔고, 필연적으로 글로벌 성장률 둔화를 초래했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효율성·생산성을 높이는 자동화가 빠르게 추진되었고, 이것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원인을 알면 현상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와 성과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던 것은 원인과 현상에 대한 고민 없이 곧바로 기술적 대응에만 매달린 탓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거시적 사회경제 문제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첨단기술이 가져오는 혁신을 넘어 기술과 제품, 기술과 서비스, 여러 학문분야와 사람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新생태계는 기술과 사회·시민·문화 등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융합혁명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슘페터는 혁신이 영리추구 활동이나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집단적 활동과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술과 경제의 혁신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이 왜 혁신해야 하는지, 혁신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함께 대응할 때 즉, 혁신생태계가 구축됐을 때 비로소 혁신은 성공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일류 최대의 혁신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은선 박사는
김은선 센터장.김은선 센터장.
중소기업 기술혁신 전문가다.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며 다수의 혁신성장 성공사례를 창출해 왔다. KISTI 과학산업화팀장, 기술사업화정보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기술사업화센터장을 맡고 있다.



  


 
독자의견
로그인 독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과학과 국민을 잇는 밑거름이 됩니다
0/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