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도시' 워싱턴 해부···정치 밑바탕은 '과학'

건국의 아버지들은 과학 애호가, 제퍼슨 "과학이 행복 원천"
2백여년 축적된 과학 유물과 상징물 산재···살아 있는 과학사 전시장
세계 최강국 배경은 과학, 생생하게 입증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미국은 물론 세계 정치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자세히 보면 '과학'이 보인다. 그 과학을 보다 보면 워싱턴은 정치 이전에 '과학 도시'임을 알게 된다. 워싱턴 D.C. 곳곳에 자리잡은 과학 관련 시설과 사연을 알면 미국이 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깊은 공부가 안되고 수박 겉핥기이지만 과학도시 워싱턴 D.C.의 속살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자.<편집자의 글>

외국인들이 워싱턴을 방문하며 가장 많이 이용하는 워싱턴 덜레스 국제 공항. 공항에 내리자 마자 세계 최고 과학 박물관을 하나 만날 수 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 이름은 '스티븐 F. 우드바-헤이지 센터'. 미국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항공 우주 박물관이다.

여기에는 세계 항공 우주사에 이정표 역할을 한 많은 항공기들이 있다. 우리와 관련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일본의 패전을 앞당기고 우리에게 해방을 안겨준 에놀라 게이 B-29 전폭기.

스미소니안 박물관 별관인 스트븐 우드바-헤이지 센터에 전시돼 있는 2차 대전 원폭 투하기인 B-29 에놀라 게이.<사진=이석봉 기자>스미소니안 박물관 별관인 스트븐 우드바-헤이지 센터에 전시돼 있는 2차 대전 원폭 투하기인 B-29 에놀라 게이.<사진=이석봉 기자>

2차 세계 대전이 끝난후 퇴역했다가 정비를 거쳐 2003년부터 일반에 전시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이와 함께 인공 위성 등장전 최고의 스파이機인 SR-71 블랙버드, 스페이스 셔틀 디스커버리,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등등이 전시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인 SR-71 블랙버드도 퇴역해서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인 SR-71 블랙버드도 퇴역해서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

항공 우주의 실물들을 눈으로 직접 대하는 만큼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가는 내쇼널 몰. 미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기념하는 대규모 오벨리스크인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대통령 기념관 등이 있다. 미 의사당과 백악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 연방정부의 부처도 이곳에 포진돼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 성(Department of Energy:DOE) 건물. 1층에 간이 전시장이 있다.

먼저 보이는 것은 아인슈타인 박사가 원자폭탄의 개발 필요성을 루즈벨트 대통령에 건의한 편지 사본. 이 편지에서 비롯된 맨하탄 프로젝트와 원자폭탄 개발 과정, 원폭 사진 등등. DOE는 그 기원에서 보듯이 원자력 개발과 원자력 무기와 관련된 연구 개발의 중심 주체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휴먼 게놈 프로젝트도 시작했고 물리학 관련 연구는 어느 부처 보다도 많이 하고 있다. 미 17개 국립 연구소도 DOE 산하에 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탄 개발의 필요성을 설명한 편지 사본. 미국 에너지 성 1층 전시장 입구에 전시돼 있다.에너지와 국방, 과학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사진=이석봉 기자>아인슈타인 박사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탄 개발의 필요성을 설명한 편지 사본. 미국 에너지 성 1층 전시장 입구에 전시돼 있다.에너지와 국방, 과학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사진=이석봉 기자>

최근 재미과학진흥협회(AAAS) 제185차 연차 총회 참석차 워싱턴 DC를 다녀왔다. 이전에도 가 보기는 했으나 짧은 체류 기간으로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깊이 워싱턴이 눈에 들어왔다.

세부 윤곽은 미흡하지만 미국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어떻게 작용해 왔는지를 대체로 알게 됐다. 거칠지만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미국을 이해하고, 그 미국이 과학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통해 우리는 과학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눈으로 본 것을 보고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건국 초기이다. 미국 건국 당시의 중요 산업은 농업이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토마스 제퍼슨,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은 군인이면서 농민이고, 과학자이고, 사상가였다.

이들은 농업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과학적 시도를 했다. 종자 개량은 물론이고 병해충 방지, 농지 개간, 증산, 농작물 보관 및 유통 등등에 힘썼다. 자연히 과학을 중시할 수 밖에 없었다.

워싱턴 DC에서 건국 초기 과학 중시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제퍼슨은 자신이 생전에 만든 묘비명에 8년 동안 역임한 대통령직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평소에 자신을 일컬은 명칭의 하나가 '과학자'. 그의 과학에 대한 사랑은 기념관 지하에 기록된 그의 말과 해설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제퍼슨 기념관 지하에 있는 과학자로서의 제퍼슨 대통령을 상징하는 전시물.<사진=이석봉 기자>제퍼슨 기념관 지하에 있는 과학자로서의 제퍼슨 대통령을 상징하는 전시물.<사진=이석봉 기자>

제퍼슨은 모든 과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유와 인간의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용히 과학을 하다보니 최고의 기쁨을 맛보았다고도 말했다. 기념관 전시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농업은 제퍼슨의 생업이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도구를 끊임없이 시도했는데 이는 농업의 진보는 인간 행복을 증대시킨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농장이 윤작과 개선된 경작법으로 더 이익을 내기를 바랬고, 개선된 방법을 이웃들도 큰 리스크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제퍼슨은 그의 경험을 열심히 몬테첼로의 이웃들과 미국, 유럽의 농군들에게 보급했고, 작물과 종자, 농기구 등의 아이디어를 이들과 교환했다."

과학자 정치가 발명가 건축가로서 제퍼슨을 서술하는 글.<사진=이석봉 기자>과학자 정치가 발명가 건축가로서 제퍼슨을 서술하는 글.<사진=이석봉 기자>

제퍼슨은 과학의 유용성에 매료됐다. 모든 종류의 기계와 도구 등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장 과학적인 도구들을 구매했다, 수만 에이커의 농장주로서 자연적으로 농업과 조경업에 관심을 가졌고, 생애를 통해 기상학과 천체학, 동물학, 고생물학, 고고학, 지리학, 측량학 등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가 과학과 관련해 남긴 말은 그가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과학이 인간 생활에 적용될 때는 꼭 아름답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또 농업이나 국내 경제에 바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제퍼슨은 지식을 자주 빛으로 언급했다. 그의 필생의 작업은 자유와 빛의 추구였다. 미국과 세계에 그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곧 자유로운 정부는 계몽되고 자각해 지식을 가진 시민들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식을 가진 시민들이 있어야 과학도 제대로 쓰이고 국가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진 지식을 나누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자 했다. 제퍼슨이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에 이뤄진 미 서부의 지리 및 생태 탐사도 과학에 대한 그의 인식이 기반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 최초이고 현재 세계 최대의 과학자 단체인 전미과학진흥협회 건물 입구.<사진=이석봉 기자>미국 최초이고 현재 세계 최대의 과학자 단체인 전미과학진흥협회 건물 입구.<사진=이석봉 기자>

제퍼슨도 그렇지만 벤자민 프랭클린 등 건국의 아버지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실용주의는 오늘날 미국의 과학 정신의 기초로 작용되고 있다. 결국 과학은 하나의 지식이고, 그 기반이 튼실할 때 자유와 평등이란 건국의 이념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건국의 아버지들은 절감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과학은 건국과 남북전쟁, 1,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더욱 성숙돼 갔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진 과학정신을 갖고 출범한 단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AAAS, 전미과학진흥협회이다.

AAAS는 1848년 설립된다. 과학자들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과학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며, 과학적 책임을 고양시키고, 과학 교육과 과학 활용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출범했다. 매년 2월에 연례 대회를 갖고 교류와 협력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남북 전쟁과 2차 대전 시기만을 제외하고는 계속 열려 올해 185회째를 맞았다. 본부는 백악관으로부터 불과 80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미국의 과학 정신이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나게 된 것은 스미소니안 박물관의 출범이다. 1849년 건축을 시작해 1855년 개관을 한다.

이 때 전시품의 상당수는 1838년부터 5년간에 걸쳐 행해진 미 해군의 원정 탐험의 결과물이다. 태평양과 북남미를 탐험한 미 해군은 식물과 동물, 지리학, 측량학 등등에서 다양한 과학적 성과를 거뒀고, 이것이 박물관 출발의 밑바탕이 됐다.

스미소니안 박물관은 이어 항공 우주, 자연사, 동물원 등등 다양한 박물관을 가지며 세계 최대 최고 박물관으로 자리잡게 됐고,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 자극과 지식 향상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스미소니안 박물관 群으로 가장 새로운 것은 덜레스 공항 부근에 있는 스티븐 우드바-헤이지 센터다. 헝가리 출신 기업인 우드바-헤이지의 기부를 종잣돈으로 시작해 2003년 개관했다.

1888년 출범했음을 알려주는 내쇼날 지오그래픽 전시물.<사진=이석봉 기자>1888년 출범했음을 알려주는 내쇼날 지오그래픽 전시물.<사진=이석봉 기자>
 
AAAS가 민간에 의한 과학자들의 모임이라면 정부 주도의 과학자 모임은 미국 과학 아카데미(NAS)이다. NAS는 링컨 대통령 재임 시기이자 남북전쟁 시기인 1863년에 구성된다. 총기 시계 미싱 등 부품의 상호 호환에 의한 미국식 제조 방법이 시작되고, 북부의 산업 활성화로 전쟁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과학 아카데미는 미국은 물론 세계 최고 과학자들의 대표적 단체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정부의 정책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문하고 발언을 하게 된다. 과학 아카데미는 링컨 기념관 옆에 있으며 높이 약 3.6m의 아인슈타인 동상이 건물앞에 세워져 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과학은 대중들의 관심 중앙에 자리잡았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는 각각 1000만, 2000만의 관람객이 참여하며 본격적 과학의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에 워싱턴에 구성된 또 하나의 흥미 있는 과학자 단체가 내쇼널 지오그래픽이다. 1888년 33명의 신사들이 코스모스 클럽(오피니언 리더들의 사교장소, 1876년 설립)에 모였다. 이들은 '지리학적 지식의 증대와 확산을 위한 모임'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이들 가운데는 미국 지도 제작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가넷, 그랜드 캐년의 가장 유명한 탐험가인 존 웨슬리 파웰, 미 육군 최고 통신 책임자이며 저명한 극지방 탐험가인  아돌프 그릴리 등이 있었다.

이들 외에도 지리학자, 기상학자, 지도제작자, 은행가, 법률가, 선원 등등 과학적 연구를 진흥하고 그 결과물을 대중에 알리는 것에 열망을 품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초대 회장으로 법률가 겸 재정가인 가디너 그린을 뽑았고, 이후 그의 사위인 발명가 그래햄 벨 가문에서 이어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설립 이래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탐험을 하고 새로운 영상으로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고 있다. 박물관도 함께 운영하며 대중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1980년 칼 세이건에 이어, 2014년 닐 타이슨에 의해 재구성된 코스모스 시리즈도 내쇼날 지오그래픽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내쇼널 지오그래픽의 지도와 각종 자료들은 평시는 물론 전시에도 유용하게 사용됐다.

특히 2차 대전시 유용하게 사용됐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이 전쟁 전에 만들어 놓은 30만 장의 사진들은 전쟁 중 적군의 위장 등 정보를 얻는데 쓰였고 지도는 작전에 요긴하게 사용됐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경제 활황으로도 이어졌다. 에디슨을 필두로 카네기, 록펠러, 포드 등등 전세계적인 부호가 탄생했다. 이 가운데 워싱턴 DC에서 주목할 사람은 철강왕인 앤드류 카네기이다.

그는 1902년 1월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난다. 전년에 사업에서 은퇴하고 사회 사업을 하며 카네기 연구소를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개인 연구자를 지원하고, 그를 통해 지식의 증대에 기여한다는 모토로 연구소는 출범했다. 

카네기는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가장 폭 넓고 자유롭게 조사와 탐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결과물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네기 연구소의 지원은 획기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다.

우주가 지속적으로 팽창함을 밝혀낸 에드윈 허블, 지진 규모를 개발한 찰스 리히터, 유전자 승계의 패턴을 밝혀 노벨상을 받은 바바라 맥클린톡, 우주 암흑 물질의 존재를 밝힌 베라 루빈 등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카네기 연구소는 2차 대전과 그 이후 미국 과학의 방향을 결정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카네기 연구소의 회장이던 바네바 부시는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전쟁에서 과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기서 미 대통령 과학 자문관 제도가 잉태됐고, 맨하탄 프로젝트가 기안됐다. 또한 근접신관이라 하여 목표물에 일정 부분 다가가면 자동으로 폭파되는 장치가 개발되고, 페니실린의 양산에도 기여했다.

카네기 연구소는 1902년 출발해 인류의 과학 지식 증대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카네기 연구소는 1902년 출발해 인류의 과학 지식 증대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

건국의 아버지들의 과학에 대한 깊은 인식과 새로운 기술 및 과학에 대한 도전은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이후 남북 전쟁을 통해 산업화의 기틀을 다졌고, 1·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며 미국은 세계의 패권 국가가 됐다. 그 바탕에는 과학이 있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가 올 때까지 미국의 미래는 장미빛 일변도였다. 다음회에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비롯해 워싱턴이 어떻게 세계 과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스푸트니크 쇼크를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겠다.
이석봉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독자의견
로그인 독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과학과 국민을 잇는 밑거름이 됩니다
0/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