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서강대·서울대 연구팀, 삼황화린니켈로 단일층 자성물질 제작···라만 분광법으로 자성변화 관찰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XY모델 자성 상전이, 공동연구로 실험관찰 성공

연구진이 만든 삼황화린니켈 단일층의 모습.<사진 = IBS 제공>
연구진이 만든 삼황화린니켈 단일층의 모습.<사진 = IBS 제공>
국내 연구진이 그동안 이론으로만 예측돼 온 기묘한 물질 특성인 '자성 상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규명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IBS(기초과학연구원·원장 김두철)는 박제근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연구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팀이 정현식 서강대 교수, 박철환 서울대 교수와의 공동연구로 '기묘한 물질' 특징을 세계 최초 실험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기묘한 물질이란 고체, 액체, 기체 등 우리가 기존 알고 있던 상(相)과는 매우 다른 새로운 개념이다. 두께나 높이의 개념이 사라진 2차원 세상에서 일부 물질은 낮은 온도에서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기묘한 물질(Exotic matter)'로 탈바꿈한다.

자석을 가열해 온도를 높이면 자석은 본래의 자성을 잃고 보통의 쇠붙이처럼 변한다. 이를 '자성 상전이' 현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2차원에서 발견되는 기묘한 물질 특성상 낮은 온도에서는 양자역학 지배를 받아 자성 상전이 현상을 가질 수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으로 지금까지는 실험으로서 규명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성 상전이 현상을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자 세 가지 모델을 만들었다. 그 중 XY모델은 가장 독특한 특성을 가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XY모델은 원자 스핀이 2차원 평면 위에서 시계 바늘처럼 360도 방향성을 갖는 모델이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XY모델을 따르는 2차원 물질의 자성 상전이 현상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수여됐다. 하지만 1970년대 처음 제시된 이 이론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사례는 드물다. 단원자 두께의 얇은 자성 물질을 구현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더불어, 이런 얇은 물질이 가지는 미세한 자성을 측정할 수 있는 실험장치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XY 모델의 자성 상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우선, 연구진은 삼황화린니켈(NiPS₃)을 이용해 단일층 자성물질을 제작했다. 삼황화린니켈은 인접한 스핀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정렬돼 특정 온도 이하에서만 자성을 띠는 반강자성체다. 이 삼황화린니켈은 층상구조를 가진 물질로 점착테이프를 반복해 붙였다 떼어내면 원자 한 층 두께의 시료를 만들 수 있다.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를 가진 얇은 시료의 자성 관찰을 위해 연구팀은 라만 분광법(Raman spectrocopy)을 활용했다. 라만 분광법이란 분자에 입사된 빛이 산란돼 방출될 때 입사된 빛 중 일부가 물질 진동에너지만큼 포톤을 방출해 에너지를 잃게 되는 라만현상을 측정해 분자 구조에 관한 정보를 얻는 실험이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원자층 개수에 따른 자성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수 원자층 두께의 시료에서 관찰되던 자성 상전이가 단일 원자층 시료에서는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덩어리 형태의 삼황화린니켈은 155K(-118.15℃) 이상의 온도에선 반강자성 정렬이 풀리는 자성 상전이 현상이 나타났다. 단 2개 층으로 이뤄진 시료 역시 유사했다. 이와 달리 단일층 시료는 실험에서 측정한 가장 낮은 온도인 25K(-248.15℃)에서도 자성 상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XY모델을 따르는 물질을 2차원 소재로 제작했을 때, 자성 상전이를 가질 수 없다는 KT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

박제근 부연구단장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을 관측하는 도구를 개발해 지동설이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것처럼,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정에서는 인간이 예측하지 못했던 중요한 발견이 이뤄진다"며 "이번 연구는 2차원 원자층 물질 자성현상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것으로, 향후 자성 반도체, 스핀전자소자 등의 개발에도 응용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팀은 2016년 아이징 모델의 자성 상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아이징 모델은 자성 상전이 현상의 세가지 모델 중 가장 간단한 형태다. 스핀이 위나 아래 두 가지 방향 밖에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2.353)'에 21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