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량 성호르몬 100만 배 감도로 검출···기존 채혈 방식보다 간편
생체재료연구단 이효진·이관희 박사·도핑콘트롤센터 김기훈 박사 공동연구

어린이의 소변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바이오센서를 넣어주자, 센서가 소변 속 성호르몬을 잡는다. 이 센서에는 700만 개의 화학물질이 붙어 있다. 이번엔 질량분석기가 화학물질의 신호를 읽어 들이자, 소변에 미량 들어 있는 성호르몬이 100만 배 높은 신호로 확인된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원장 이병권) 이효진·이관희·김기훈 박사가 개발한 어린이 성조숙증 진단 기술이다.
 
성조숙증은 8~9세 이하 어린이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조숙증 아이들의 외모에는 뚜렷한 변화가 생기지만, 어른과 달리 혈액과 소변에는 미량의 성호르몬만 있기 때문에 검사 방법이 까다롭다. 
 
현재 사용되는 검사법은 어린이에게 성선자극 호르몬을 주사한 후 일정한 간격으로 체혈을 해 주사 전후의 성호르몬 수치를 비교한다. 이 방법은 어린이가 받기에는 통증과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바코드' 역할 화학물질로 성호르몬 쉽게 검출

노란색 원 안에 있는 것은 성호르몬과 결합한 두 쌍의 나노 바이오센서다. 성호르몬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자석이, 오른쪽에는 금 나노입자가 연결된다. <사진=KIST 제공>
노란색 원 안에 있는 것은 성호르몬과 결합한 두 쌍의 나노 바이오센서다. 성호르몬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자석이, 오른쪽에는 금 나노입자가 연결된다. <사진=KIST 제공>

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센서는 소변에서 성호르몬을 검출한다.
 
이 센서는 자석과 금 나노입자, 두 개로 구성된다. 자석에는 성호르몬을 붙잡는 항체가, 금 나노입자에는 특정 성호르몬과 결합할 수 있는 압타머와 700만 개의 화학물질이 붙어 있다. 이효진 박사는 "쉽게 말해, 금 나노입자가 땅이면, 땅의 일부에 심어진 나무가 압타머, 나머지 부분에 깔린 잔디가 화학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소변에 바이오센서를 넣을 때 벌어지는 상황은 이렇다. 먼저, 자석과 금 나노입자가 성호르몬과 결합한다. 여기에 자장을 걸면 자석과 연결된 성호르몬과 금 나노입자가 한쪽으로 뭉치면서 소변과 분리된다. 그 다음 소변을 버리고 금 나노입자를 녹이면 화학물질과 성호르몬이 남는다. 
 
이것을 질량분석기에 넣으면, 분석기는 성호르몬이 아닌 화학물질의 양을 측정해 성호르몬을 검사한다. 성호르몬 분자 한 개와 연결되는 화학물질이 700만 개이기 때문에, 미량의 성호르몬을 약 100만 배의 감도로 찾아낼 수 있다.
 
이 박사는 "물건을 살 때 바코드로 물건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처럼, 바코드 역할을 하는 수많은 화학물질로 찾기 어려운 성호르몬을 쉽게 검출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 나노센서, 생체재료연구단이 '만들고', 도핑콘트롤센터가 '보고'

이효진 생체재료연구단 박사(왼쪽)와 김기훈 도핑콘트롤센터 박사. 나노바이오를 전공한 이 박사는 나노기술로 질병 발생 원인을 분석하는 연구를 해왔다. 3년 전 KIST에 오면서 나노 바이오센서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김기훈 박사는 연구원에 오자마자 평창동계올림픽 도핑테스트 분석으로 바쁘게 보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효진 생체재료연구단 박사(왼쪽)와 김기훈 도핑콘트롤센터 박사. 나노바이오를 전공한 이 박사는 나노기술로 질병 발생 원인을 분석하는 연구를 해왔다. 3년 전 KIST에 오면서 나노 바이오센서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김기훈 박사는 연구원에 오자마자 평창동계올림픽 도핑테스트 분석으로 바쁘게 보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번 연구는 생체재료연구단 이효진·이관희 박사팀과 도핑콘트롤센터 김기훈 박사가 2년 간 협력으로 이룬 결과다. 이 박사팀은 나노 바이오센서 디자인과 합성을, 김 박사는 신호 검출과 분석을 맡았다. 
 
이 박사는 "센서를 몸에 넣지 않고도 증상을 감지할 수 있는 타깃 질병을 찾다가 성조숙증을 택했다"며 "소변에서 물질 검출 연구를 해 온 김기훈 박사에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생화학과 분석화학의 융합인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이번 연구에서 중점을 둔 것은 바이오센서의 안정성이었다. 소변은 호르몬뿐만 아니라 염분과 노폐물 등 여러 물질이 섞인 특수한 환경이다. 따라서 센서가 소변에 들어가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신호가 나와야 할 때 나오지 않는다거나 그 반대 상황이 생긴다.
 
김 박사는 센서를 고감도로 검출할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질량분석기를 포함해 전기영동, 형광물질 등 4개 방법을 사용해 결과를 비교했다. 하나의 방법으로 실험하는 데 반 년이 걸렸다. 
 
그는 "나노 바이오센서는 주로 빛을 사용해 검출하는데, 이 방법은 감도의 한계가 있다"며 "실험 결과 질량분석기의 감도가 가장 좋았다. 우리 기술은 질량분석기로 나노 바이오센서를 검출한 새로운 시도"라고 자신했다.
 
어린 딸을 둔 두 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어린이를 위해 쓰일 수 있어 특히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이 박사는 "그동안은 기초연구를 주로 했는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그래서 그 연구를 어디에 쓸거냐?'였다"며 "이 기술이 호르몬으로 검사하는 여러 질병에 응용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금지약물 분석 연구는 대상과 목표가 분명히 정해졌는데, 이번 연구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능동적인 연구였다"며 "아이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연구라 더욱 의미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에서 병원과 연계해 성조숙증의 판단 기준을 정하는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기훈 박사가 가리키는 것은 실험에 사용한 질량분석기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기훈 박사가 가리키는 것은 실험에 사용한 질량분석기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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