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교수진·과실연 "과학계 인격 살인적 조치 막아야"

최근 '이면계약·편법채용' 등의 문제로 신성철 KAIST 총장에게 직무정지 권고안이 내려진 가운데 연구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입을 모아 "직무정지 철회를 촉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KAIST 물리학과 교수진들은 지난 7일 '신성철 KAIST 총장 관련 과기부의 부당한 처사' 주제로 성명을 발표했고 10일까지 600여 명의 과학기술인들이 성명에 동의했다. 또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도 'KAIST 총장 사태를 바라본 입장문'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과기부가 신성철 KAIST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직무정지를 이사회에 요청했다"라며 "감사 결과에 대해 소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고발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급한 판단 때문에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한 연구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리더에게 오명과 좌절을 안기는 사태를 초래했다"라며 "학문에 자긍심이 높은 과학자를 배임이나 횡령이 있을 것으로 유죄 추정해 평생 쌓아온 업적과 명성을 단숨에 무너뜨린다면 누가 과학계에서 헌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성명서는 "과기부가 신성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요청을 철회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기를 촉구한다"라며 "국회가 과학기술계와 과학기술인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감사 시작과 동시에 고발과 직무정지를 요청하는 인격 살인적인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과실연과 KAIST 교수진의 성명서 전문.
 

카이스트 총장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카이스트 신성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직무의 정지를 이사회에 요청하였다. 당사자는 감사 결과에 대해서 소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고발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추구하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소식이 나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과실연은 다음 몇 가지를 우려한다.

첫째, 카이스트 총장의 인사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와 얽힌 것으로 이해되고 보도되고 있다. 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생태계 조성'이라는 정부의 국정과제와도 상충된다.

둘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련 기관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줄 사퇴하는 모습은 개선되어야 할 적폐였다. 지난 정권에서는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까지 작성되어 과학기술계를 경악시켰고, 이에 대해 과실연은 지난해 성명서를 통하여 진상조사와 관련자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과학기술계에 정치권력의 개입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풍토를 침해하고 방해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지난 5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민국을 다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의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 구축과 실천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을 요청한다.

하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카이스트 총장에 대한 검찰 고발을 철회하고, 정당하고 당사자의 소명이 포함된 감사를 다시 진행하라.
 
하나, 적법한 절차에 따른 감사 결과와 이에 대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총장의 직무는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 자율적인 연구와 교육 풍토를 저해하는 정치권력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제도를 마련하라.
 

2018년 12월 10일
사단법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신성철 KAIST 총장 관련 '과기부의 부당한 처사' 과기인 성명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인으로서 우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제공동연구에 대한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오판과 경솔한 업무처리로 존경받는 과학기술계 대선배와 동료 및 후배 연구자들이 여지없이 매도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지난 11월 25일 일요일 저녁, 카이스트 신성철 총장이 미국의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이하 LBNL)와의 국제공동연구에서 이면계약서를 작성하여 국가 연구비를 빼돌렸다는 한 방송사의 보도는 우리 과학기술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는 국제공동연구에 대한 설명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성급히 판단하여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한 연구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리더에게 오명과 좌절을 안기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거대실험장치를 보유한 국제적 연구소의 시설은 비용을 낸다고 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탁월한 연구주제를 선별하여 시설사용시간을 대여한다. 이들 연구소는 우수한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통과한 연구자들에게는 일주일 정도 무료로 시설을 사용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이 정도 시간으로는 최첨단 연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디지스트는 고가의 장비를 보유한 LBNL와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연구자들이 시설 총 가동시간의 50%를 사용하여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대가로 디지스트는 시설운영비의 13%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지불하였으므로 투자효율이 매우 높은 연구계약이었다 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LBNL로 넘어간 연구비 중 일부가 그 연구소에 근무하는 신 총장 제자의 인건비로도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LBNL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이다.

소속 연구원의 인건비는 자체 규정에 의해 지급하는 것으로 연구시설을 사용하는 공동연구자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성철 총장은 30년간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나노 자성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으로 선정되는 등, 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6년 전 신생 설립대학으로 인지도가 미미했던 디지스트가 LBNL과의 국제공동연구 협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신 총장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 총장은 동료 교수들의 신망과 존경에 힘입어 카이스트 교수협의회가 추천하는 총장후보 1순위로 세 번이나 당선되었으며, 평생 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잡음도 없었다. 이렇게 학문과 양심에 자긍심이 높은 과학자를 배임이나 횡령이 있을 것으로 유죄 추정하여 평생 쌓아온 업적과 명성을 단숨에 무너뜨린다면 누가 과학계에서 헌신할 수 있겠는가.

불분명한 의혹과 성급한 판단으로 국제적 지명도와 국가적 기여도가 큰 과학계 리더에게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초의 직무정지 총장이라는 굴레를 씌운다면,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언론보도 사흘 뒤 곧바로 검찰에 신 총장과 디지스트 연구자들을 고발하고 추가 감사인력을 카이스트에 파견했으며, 이틀 후 이사회에 직무정지를 요청했다. 과기정통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제대로 된 조사와 본인의 소명 없이 서둘러 밀어붙이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감사 시작과 동시에 고발과 직무정지를 요청하는 인격살인적인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정치적으로 과학기술계의 향배를 좌우하려는 섣부른 시도는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과학기술계는 이념에 무관하게 경쟁력 있는 인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미래를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과학기술 인들의 긍지를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된다.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요청을 철회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기를 촉구한다.

2. 국회가 과학기술계와 과학기술인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감시하고 견제하기를 촉구한다.

3. 과학기술계가 정권마다 반복되는 편가르기와 줄세우기를 거부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잘못된 관행의 개선에 앞장서기를 촉구한다.

4. 카이스트 이사회가 자랑스런 대학의 역사와 전통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총장직무 정지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를 촉구한다.



2018년 12월 7일 서명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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