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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재정의 결의장, 축제였다···'혁명'으로 평가받아"

[인터뷰]박연규 표준연 물리표준본부장 국제도량형총회 참석 후기
다음 재정의 대상은 '시간(s)'이 될 듯···광시계 이용해 100배 정확하게
한국 수석대표가 단위 재정의 동의여부를 밝힐 때 들고 있던 팻말(REPUBLIQUE DE COREE). 박 본부장은 귀국하며 이 팻말을 챙겨왔다. <사진=박연규 본부장 제공>한국 수석대표가 단위 재정의 동의여부를 밝힐 때 들고 있던 팻말(REPUBLIQUE DE COREE). 박 본부장은 귀국하며 이 팻말을 챙겨왔다. <사진=박연규 본부장 제공>
"국제도량형총회 주최자가 각국 수석대표를 호명하자, 대표들이 일어나 'yes' 또는 'Oui'라고 말했어요. 한국 이름이 불리자, 수석대표인 박상열 표준연 원장님이 국가 팻말을 들고 서서 'yes'라고 외쳤습니다. 53개국의 만장일치였죠. 단상에 있던 4명의 주최 측 대표들의 기립박수를 따라 홀을 가득 채운 600여 명의 세계 각국 참가자들도 일어섰고 다 같이 오랫동안 박수를 쳤습니다. 가슴이 벅찼어요."
 
박연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장은 단위 재정의 결의 현장이 표준 과학자들의 축제였다고 회상했다. 박 본부장 등 표준연 소속 7명은 지난 11월 13일부터 나흘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국제도량형총회는 측정 표준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국제단위계(SI)를 관리한다. 의결 사항이 생기면 정회원 60개국이 공평하게 한 표씩 행사한다.
 
박 본부장은 "최종 결의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모두 고생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다들 하나같이 놀랍고 신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박 본부장을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 "조셉슨, 키블, 클리칭 박사 아니었다면 재정의 없었다"
 
박 본부장은 이번 총회의 핵심으로 4일 차 오전에 진행된 키노트 강연을 꼽았다. 강연은 당일 오후 7시(한국 기준)부터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나머지 총회 일정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첫 발표자는 198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클라우스 폰 클리칭(Klaus Von Klitzing) 박사였다. 클리칭 박사는 양자홀 효과를 발견해 저항의 표준을 성립하는 데 기여했다.
 
박 본부장은 "총회에서 한 발표자는 '전압 표준을 확립한 브라이언 조셉슨(Brian Josephson), 키블 저울 개념을 제시한 브라이언 키블(Bryan Kibble), 그리고 클라우스 폰 클리칭이 아니었다면 이번 재정의는 없었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박 본부장이 클리칭 박사에게 감회를 묻자 그는 "오늘이 내 과학 인생 최고의 날이다. 양자홀 효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발견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단위 재정의에 기여한 게 노벨상 수상보다 더 큰 영광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의 한 연구원은 양자 기술에 바탕을 둔 광시계를 소개했다. 박 본부장은 "광시계는 현재 사용되는 세슘 원자로 정의한 시계보다 100배 정도 정확하다"며 "다음 재정의 대상은 시간 표준이다. 빠르면 8년 후"라고 내다봤다.
 
◆ 과학의 발전이 단위 재정의 이뤄···"프랑스 혁명 후 최대 혁명"
 
박연규 본부장은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줬다. <사진=한효정 기자>박연규 본부장은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줬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번 재정의는 세계 표준 연구자들이 20년 이상 연구한 결과다. 내년 5월 20일부터 킬로그램(kg·질량), 암페어(A·전류), 켈빈(K·온도), 몰(mol·물질의 양) 등 4개 단위는 변하지 않는 값인 '상수'를 기준으로 새롭게 측정된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상수를 기준으로 측정하지 않았을까? 박 본부장은 "예전에는 상수를 측정할 능력이 없었다"며 "수십 년 동안 세계 과학자들이 정밀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가능해졌다. 과학의 발전이 더 정확한 과학을 만들었다"고 답했다.
 
측정 연구는 국가 간 경쟁도 있지만, 한 국가만 앞서간다고 재정의를 이룰 수는 없다. 몇 개국이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해 우수한 결과를 내야 하며 그 값들이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질량 단위의 경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캐나다 국가연구위원회(NRC)에서 키블 저울로 측정한 값과 국제 프로젝트 그룹이 실리콘 구를 이용해 측정한 값이 일치했기 때문에 새롭게 정의될 수 있었다.
 
표준연은 온도 재정의 과정에서 볼츠만 상수(k)의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프랑스와 영국 표준기관이 제시한 상수 측정 결과가 백만분의 3 차이를 보이자, 국제도량형위원회의 온도 자문위원회가 표준연에 측정을 의뢰했다. 표준연은 영국이 측정한 아르곤 가스의 평균 분자 질량에서 오류가 있음을 규명했다.
 
박 본부장은 "우리 연구원은 이번 재정의 과정에서 직접 측정값을 내지는 못했지만, 다음 재정의를 대비해 고성능 광시계와 광도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단위 재정의가 '표준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제 전 세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똑같은 표준을 사용하게 됩니다. 표준도 독립이 된 거죠. 총회에서는 이번 단위 재정의가 프랑스 혁명 이후 최대의 혁명이라고 표현했어요. 우리 연구소도 이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과학자로서 그 자리에 함께해 뿌듯합니다."

박상열 원장과 박연규 물리표준본부장 등 표준연 소속 7명은 11월 13일부터 나흘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표준연 제공>박상열 원장과 박연규 물리표준본부장 등 표준연 소속 7명은 11월 13일부터 나흘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표준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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