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임기를 절반이나 남겨두고 사퇴했다. 과학계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사임 배경을 두고 정부 압박설, 탈원전정책 피해론 등 갑론을박이 뜨겁다.

현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출연연 기관장 사퇴가 빈번하다. 올해 초에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한국연구재단, KISTEP,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수장이 길게는 2년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원인을 두고 몇몇은 정부의 사퇴 압력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이라는 점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과학기술계 기관장이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양상이다.

출연연 기관장들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본보의 자료에 의하면 2003년 ETRI 기관장이 첫 사례다. 그의 중도 사임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큼 드문 일이었다. 그동안 기관장의 임기 종료는 기본이고 연임도 가능했다. 2005년 7개 출연연 기관장 공모가 동시에 이뤄질 때만 해도 연임했던 기관장의 공모 참여도 다수였다. 연임론과 물갈이론이 주 관심사였다. 표면적으로 정부의 과학계 인사 개입이 그만큼 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과학계 기관장 인사로 연구현장이 어수선해진 것은 2008년 무렵이다. 당시 출연연 통폐합이 거론되면서 정부는 임기가 남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등 출연연 기관장들에게 사표를 받았다. 과학계 단체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정당하지 않은 절차에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기관장들은 이유를 알수 없는 상태에서 이임식을 갖고 물러났다.

이후 정부의 과학기술계 흔들기가 본격화 됐다. 과학계 기관장 인사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자리로 변질됐다. 정권에 따라 내편, 네편으로 구분하는 코드 인사가 당연시 됐다. 2013년 또 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KISTEP, 연구재단, 한국기계연구원 기관장이 임기전 사퇴했다. 연구현장은 더욱 뒤숭숭해졌다.

기관장 뿐만이 아니다. 연구현장 연구자들의 대외적 위상, 대우도 추락했다. 관료의 간섭으로 연구자들의 운신 폭은 더 좁아졌고 국민의 과학계 신뢰도 무너졌다. 세금먹는 하마라는 말도 쏟아졌다. 과학계에서 내놓은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타도 끊이지 않았다.

관련부처의 사무관이 20년, 30년 연구자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말도 종종 들렸다. 그러나 질타의 목소리는 모아지지 않았다. 내 연구만 괜찮으면,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만 팽배했다.

2016년, 변화는 사회, 국민에게서 시작됐다. 나라답지 못한 나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식이 불꽃처럼 일어나며 촛불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전 물러나고 국민이 세운 정부가 꾸려졌다.

과학계는 '이제는 달라지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복되는 코드인사, 과학계 외면 등 이미 고착된 문화에서 나아지지 않았다. 악화됐다는 말도 나온다. 연구자율성을 과학계 정책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관리를 위한 절차, 시스템만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연구자들의 한숨이 커졌다. 그야말로 희망고문이 됐다.

우리는 왜 권력의 중심에 서면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  선례를 통해 그 결과의 참담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국민이 세운 정권은 기존 정권과 다름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과학계 옥죄기에 연구현장의 비명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지속적으로 현 정권을 지지해왔던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이 원자력연 기관장 사퇴를 두고 성명서 냈다. 

"연구원을 흔들어 국민의 뜻과 목소리를 외면하고자하는 시도가 분명하다. 현 정부의 독단적인 권력 횡포에 결연히 저항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현 정권의 과학계 옥죄기를 '독단적 권력 횡포'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의 뜻과 목소리를 외면하는 현 정권에 저항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나 대덕클럽, 전임출연연기관장 모임, 연우회 등 대다수 과학단체들은 이번 사태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내 문제가 아니니 상관없다는 안일함으로 대처했다. 불합리에 저항하지 않으면 그 폐해는 언제든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계가 어쩌다 보신, 안일에 치중하게 됐을까. 회복될 수 없는 것일까. 최근 회자되는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의 신학자인 마르틴 니묄러 목사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다. 무관심, 독선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본 과학계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지점에 이르렀다.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산업계의 요구 감소, 과학계 스스로의 무관심 등 지금의 출연연을 대하는 인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혹자는 해체설까지 서슴지않는다. 

상당수 과학계 구성원들도 알고 있다. 과학기술 패러다임은 함께 하는 방향으로, 국민과 사회를 위한 연구개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과학계 전체가 설 곳이 없어진다는 것을. 누군가를 탓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문제는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생각을 모으고 커지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움직일때 비로소 변화도 시작된다. 그러나 과학계의 지금 상태는 변화를 시도하려는 희망조차 남아있는지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묻고 싶다. "과학계에 희망은 남아 있는가"라고.

아울러 현 정부에도 묻고 싶다. 진정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원하느냐고. 언제까지 과학계를 정권의 전리물로 생각해 횡포를 부릴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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