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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과학계 '주인의식'을 기대하며

과학계 행사를 다녀와서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서울에서 대덕을 찾은 전문직 종사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대덕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개인적 견해'라는 말을 전제로 자신의 속엣말을 했다.

"출연연도 관료화가 심각해요. 거기에 주인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요. 과제만 수주하고 결과는 책임지지 않고 각자도생하기 바쁘죠."

그 당시 현실과 다른 이야기라며 웃어 넘겼다. 하지만 마음 한편의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언젠가부터 외부에서 보는 출연연은 부정적 인식이 짙다. 기업들은 기업의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개인 일정을 강조하는 출연연 구성원을 보며 협력을 포기하고 관료보다 더 관료같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세금을 이용해 부실학회를 다녀온 연구자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연구윤리, 도덕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국민이 낸 세금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연구현장이 왜 이렇게 변질 됐을까. 

지난 7일 슈퍼컴퓨터 5호기 개통식 취재차 KISTI를 방문했다.  KISTI가 슈퍼컴퓨터 4호기를 도입한 것은 지난 2008년. 10년만에 900억원을 투입, 5호기가 도입되면서 기념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5호기 도입으로 한국은 슈퍼컴퓨터 세계 100위권에서 11위로 올라서게 된다. 산학연 연구 지원 강화, 미래 연구 활성화 등 의미도 크다.

이날 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국과 일본의 해외 석학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정부 관계자, 출연연 관계자, 국회의원, 슈퍼컴퓨터 사용자, 시민들이 기념 행사가 열리는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본 행사가 열릴 단상에서 노조가 집회를 하고 있었던 것. 행사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노조의 집회는 계속됐다. 노조 측은 이날 KISTI 내부 문제에 대한 기관장 사과 요구부터 처우 개선 등 성토를 지속했다. 노조의 집회는 30여분이 지나서야 종료됐다.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소통이 안 된다면, 리더가 제 역할을 못 한다면 목소리를 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어묵찬금(語嘿囋噤)'이라는 말이 있다. 말할 때와 말을 하지 않을 때를 가려서 한다는 의미다.

이날 행사 참석차 KISTI를 방문한 내외빈은 가랑비가 내리는 운동장에서 한없이 대기했다. 참석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축하하러 온 자리에서 원치 않게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외국계 인사들도 시위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죽하면 집안 잔칫날을 집회 일정으로 잡았을까하고 일견 이해는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적을 위해 수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주인의식을 좀 더 보여 줬으면 낫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출연연의 작금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과학계 윤리문제 회복부터 제대로 된 역할론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부의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정체되는 가운데 급속하게 변하는 과학기술 환경에서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 국민·사회에 응답하는 연구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또 대덕연구단지 설립 당시와 달리 마곡·판교 등 민간연 대비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 출연연이 더욱 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주변에서 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주인의식'이 아닐까.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인의식 말이다. 개인도 중요하지만 인류와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 좀 더 성숙한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발전을 이끄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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