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과 무관심 사이, 과학기술의 사회생활에 관한 기록
저자: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박대인·정한별), 출판: 에디토리얼

◆ 과학자의 과학과 시민의 과학

저자: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박대인·정한별), 출판: 에디토리얼.<사진=YES24 제공>
저자: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박대인·정한별), 출판: 에디토리얼.<사진=YES24 제공>
이 책은 필자들이 4년 동안 진행해온 과학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에서 다루었던 주제, 전문 자료, 목소리를 빌려주었던 많은 연구자들의 이야기 등을 간추려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것'으로 만든 기록이다.

방송을 시작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과학기술정책 연구자로서 필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과학자가 생산하는 과학과 사회에서 통용되는 시민들의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에 있다.

과학자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과학자 사회 내부의 시스템이 정한 절차와 규범을 준수해 이뤄진다. 이 시스템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대체로 믿을 만한 메커니즘으로서 작동한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로 나온 결과물이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지식"일 뿐이란 점을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연구계 바깥에 있는 "우리가 과학을 접하고 전달받는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지식체계는 그것이 속한 사회와, 사회는 지식체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접하는 과학은 오랜 연구의 최종적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성원리, 진화론, 양자역학 등이 그러하고, 애플의 스마트폰 역시 그중 하나다. 과학이론이나 법칙, 기술적 산물은 보통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한편에는 이런 경외감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이공계와 동떨어져 살아온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핵심과 실체를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 있다.

입자물리학, 분자생물학, 빅히스토리, 전파천문학, 뇌과학, 코딩, 블록체인 등등에서 쏟아내는 지식들이 무척 흥미진진해 보여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해 자의와는 무관하게 '과알못'이 되기도 한다.

◆ 정책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본다는 것

"정책을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자원을 어떻게,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지 설계하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원'의 영역에는 무엇이 들어가고, '누구'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분배'의 기준은 어떤 절차와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 모든 일과 현실이 어디서 어떤 마찰음을 내는지 뜯어보는 것”이다.(19쪽)

저자들은 '정책'의 눈으로 과학기술을 뜯어본다. 저자들의 서술대로 정책의 관점은 사람과 사건의 관계들이 만드는 화음과 불협화음, 마찰음을 드러내는 다분히 정치적인 입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치적'이란 말의 부정적 용법 탓에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과학기술을 관찰하기에는 부적합한 관점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들의 해설에 의하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과학은 허구다.

오늘날 순수한 과학은 없다. 이 책이 다루는 11가지 주제가 모두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논의라고도 할 수 있는데, 1장의 주제인 기초과학만 보아도 명확해진다.

기초과학은 미국에서 전시(2차대전)에 대거 동원되었던 과학과 과학기술자들을 평시에 맞도록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출현한 개념이다. 중력파 연구를 장기간 지원한 것으로 유명한 '국립과학재단'(NSF)의 설립을 놓고, 정부가 과학을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과학자에 의해 운영되는, 과학을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그 유명한 바네바 부시)이 팽팽히 맞섰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부시에게 돌아갔다. 바네바 부시가 작성한 보고서는 이른바 '선형적 모델'이라는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의 논리는 '질병과의 전쟁을 위해' '국가의 안보를 위해' 그리고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를 그 자체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시의 '선형적 모델'은 한국에는 말할 것도 없고 개발도상국들의 과학기술정책에 널리 받아들여졌다.(42~48쪽)

◆ 과학기술, 누군가에게는 일이고 일상인 무엇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의 과학기술은 국가와 계약관계에 있다.

"무언가를 연구하고 무언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을 오롯이 연구자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부나 각종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도 하고, 특정 국가의 인프라를 사용하는 만큼 그 국가의 가치체계(법적·윤리적·종교적)에도 영향을 받는다."(363쪽)

거듭 확인되는바,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으며 정치적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것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할 때 발생한다.

저자들이 정책이라는 관점에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이 책에서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과학기술이 순수한 연구로서 인식되어온 긴 시간 동안 발견되기 힘들었던 존재들과 사건들이다.

4장에서 '떠돌이 계약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거명되는 무명의 연구자들은 과학기술계의 절대 다수를 이루지만, 언론의 기사거리가 될 만한 연구업적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연구업에 종사해왔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급부상한 여성 이슈도 마찬가지다. 6장에서 소개하는 과학기술계 여성 연구업 종사자는 한국 여성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질곡을 똑같이 헤쳐가야 한다. 전통적으로 과학기술계는 '남초'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 과학인의 현실은 그들을 더욱 버겁고 슬프게 했다.

8장의 주인공인 '보이지 않는 기술자'도 누군가 눈길을 주고 그들을 애써 기록하지 않는 한 지워질 존재이다. 어정쩡한 지위에서 공부도 하고 연구 노동도 해야 하는 대학원생과 학연생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팟캐스트 '과정남'의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들려줬던 신진 연구자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경청해야 할 젊은 연구자들의 진솔한 목소리

저자들의 지적대로 "사회에는 편견, 무지, 잘못된 고정관념이 예상 외로 많다" 어렵디어려운 지식을 다루는 과학기술계의 사정은 더하다. 서서히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추천사들이 적확히 표현한 대로 이 책은 '현대사회의 시민들에게 지극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은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다소 불편하고 머리 아픈 과학기술정책 질문들을 던진다'해서 과정남이 읽어주는 과학은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다고 하지만 삶으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해 질문을 가진 독자들에게 과학을 보고 듣는 남다른 감각 하나를 얻게 할 것이다.

<글 :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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