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건비 비중 낮아 앵벌이식 과제 수주 반복
"정부수탁과제 지속 증가 추세, 굳이 PBS 할 이유 없다"

정부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안 발표를 앞두고 과학계 현장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사람의 정부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서 PBS폐지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개선안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 때문이다. 1996년 PBS 도입이후 지속적으로 개선 필요성이 제시됐지만 연구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과학계 현장에서 PBS제도 문제를 반복해서 지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우려다. 지금의 연구개발 패러다임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융합연구적 성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PBS 등 제도나 환경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연구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 해볼 기회조차 찾기 어렵다.

이는 결국 과학기술 역량 추락을 불러오고 국가 위상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연구현장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왜 PBS제도에서 헤어날 수 없는 걸까.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인건비 구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출연연의 인건비는 정부출연금(이하 출연금)과 외부수탁과제를 통해 확보된다. 출연금은 정부 지원예산으로 안정적인 인건비다. 하지만 외부수탁과제는 정부와 민간 수탁부문으로 연구자의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외부과제를 수탁하지 못한다면 인건비 보전이 안될 수 있다는 의미다.

출연연 관계자에 의하면 외부수탁과제 부족으로 인건비를 확보하지 못한 사례도 드물지만 발생한다. 그럴 경우 기관의 경상비를 이용해 기본 인건비는 지급한다. 하지만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인센티브 지급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이 PBS제도의 여러가지 문제에도 과제 수주에 나설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출연기관의 인건비는 출연금과 외부수탁과제로 확보된다. 총 인건비(초록색)에 비해 안정적인건비 비중이 낮다. 연구자들이 다수의 과제 수탁에 나서는 이유다.< 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통계정보서비스 갈무리>
정부출연기관의 인건비는 출연금과 외부수탁과제로 확보된다. 총 인건비(초록색)에 비해 안정적인건비 비중이 낮다. 연구자들이 다수의 과제 수탁에 나서는 이유다.< 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통계정보서비스 갈무리>
안정적인건비 비중은 출연연마다 다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안정적인건비 자료(2017년 12월 기준)에 의하면 한국천문연구원은 안정적인건비 비율이 91.5%에 이르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 37.2%, ETRI는 17.3% 수준이다. 나머지 인건비는 정부와 민간 수탁을 통해 채워야 한다.

연구자들은 인건비 확보를 위해 다수 과제를 수주하거나 연구주제가 다른 과제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단기의 다수 과제에 참여하며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고 연구 지속성도 떨어졌다. 연구현장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출연연 연구자는 앵벌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 연구자들은 PBS제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걸까.

출연연의 사업비 비율을 보면 해결 방안이 보인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안정적연구사업비(기관운영비+출연금) 자료(2017년 12월 기준)에 의하면 출연연의 외부수탁과제의 상당수는 정부수탁으로 발생한다.

안정적사업비비율이 12.3%로 가장 낮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외부수탁과제 중 정부수탁 비중이 97.5%에 이른다. 안정적사업비비율이 12.9%인 ETRI 역시 정부수탁금 비중이 93%다. 출연금과 정부수탁으로 구분되지만 출연연 예산의 상당수는 정부 예산이라고 볼수 있다. PBS제도로 연구자들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셈이다.

연구현장에서도 굳이 PBS 제도로 연구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 형식의 과제를 하기보다 출연금 비중을 높여 각각의 출연연에서 해야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민간의 기술이 성장하면서 사회와 국민들이 요구하는 출연연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예산에 의한 과제가 아니라 과학계가 사회와 인류에 역할을 할 수 있는 과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7월에 현장의견을 반영해 8월 중순께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힌바 있지만 현재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출연기관의 사업비현황. 출연금과 정부수탁 과제 비중이 높다.<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통계정보서비스 갈무리>
정부출연기관의 사업비현황. 출연금과 정부수탁 과제 비중이 높다.<자료=국가과학기술연구회 통계정보서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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