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편안 반복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안돼
현장 연구자 "기술축적, 국민과 사회,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문화 기대"

연구현장과 정부 간 PBS(Project Based System)제도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면서 현장의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장 과학자들은 지금의 PBS제도가 계속될 경우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 역량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출연연 초창기는 산업지원 역할이 컸던 만큼 민간 수탁이 많았다.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과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현재 출연연은 정부수탁이 크게 늘었다. 출연연 본래의 미션에 집중하는 형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출연연 과제는 1996년 도입된 PBS제도에 따른 단기성과 중심이 여전하다. 대부분 3년, 길어야 5년정도로 기술 개발이 완료돼 시장에 진출하기까지 기술 완성도를 높이거나 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후 지원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연구자가 기술을 지원하고자 해도 과제로 이어지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완성되지 못하고 개발 상태에 머물고 마는 이유다. 이는 결국 국가 연구개발 역량 하락으로 이어진다는게 연구자들의 우려다.

◆"최소한 실행 가치가 있는 연구 성과 기대한다"

연구자들은 디자이너 키릴 시카노프의 그림을 통해 PBS제도 문제를 설명했다. 그림1이 PBS제도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이미지=대덕넷 박옥경 디자이너>
연구자들은 디자이너 키릴 시카노프의 그림을 통해 PBS제도 문제를 설명했다. 그림1이 PBS제도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이미지=대덕넷 박옥경 디자이너>
연구자들은 PBS제도 문제를 키릴 시카노프(kirill Shikhanov)의 'MVP 구축 방법 일러스트레이션(참고 사이트)으로 설명했다.

그림1은 단계별로 진행되며 4단계에 이르러야 자동차 형태로 완성된다. 1, 2, 3단계만의 결과로는 거의 알 수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기술 축적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개발해도 사회에서 활용할 수 없다.

반면 그림 2는 각각의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성과다. 단계를 거듭하면서 기술이 축적되고 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와 국민이 기대하는 연구개발 성과는 그림2라 할 수 있다. 무수한 연구개발 성과가 숙성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사장되기보다 각각의 성과들이 국민의 삶과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연연의 A연구자는 "현재 PBS제도로는 그림2는 불가능하다. 그림1도 4단계로 갈 수 없는 상황이다. 2단계, 3단계만 그것도 과학선진국의 기술을 따라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과제 공모에서부터 탈락하는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B 연구자 역시 "4차 산업혁명은 기술 융합이 필요하다. 때문에 기존 방식에 임시방편 개선으로는 안된다"면서 "오늘날 국민적 요구는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인데 PBS제도에 얽매이면서 과학기술인으로서 부응하지 못하는 답답함, 안타까움도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하며 조선, 선박, 반도체, 스마트폰 등 한국의 기술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과학기술 패러다임도 어느덧 그들이 주도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PBS제도에 따른 연구현장의 우려가 반복되자 정부는 지난 7월까지 연구 현장 의견 청취에 나섰다. 정부는 '과제 수주가 과도하지 않다', 'PBS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선택적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며 PBS제도 폐지안이 아닌 개선안을 8월 중순까지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에 의하면 정부는 PBS제도 개선안을 준비중이다.

정부는 그동안 PBS제도 보완을 위해 출연금 확대, 묶음예산 도입, 출연연 임무 재정립 등 개선안을 도입하고 시행해왔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단기성과 중심, 연구 안정성과 자율성 배제 등)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개선안은 임시방편책에 그치고 말았다.

◆현장 과학자들 "PBS제도 폐지 가능하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출연금과 정부수탁 예산, 즉 정부예산이 90%에 이르는 만큼 PBS제도 폐지가 어렵지 않다. 출연금 중 인건비 비중을 확대하면 현재 예산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관련기사)

반면 정부는 추가 예산이 필요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연구현장과 정부의 입장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뭘까.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설문결과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KISTEP이 2016년 10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출연연 예산담당자를 포함해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유효설문 233명) 결과 중 'PBS 제도 개선 필요성이 지속 제기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출연연의 연구 자율성, 안전성 이슈와 정부의 단년도 예산 등 기본적 철학의 다름'을 든 응답자가 54.5%로 가장 많았다.

다른 이유로는 예산 증가가 핵심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13.3%), 출연연 임무 몰입과 예산 효율화는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이슈(9.9%), 출연연을 둘러싼 R&D 정책환경 지속변화(8.6%) 순이다.

응답자의 소속도 산학연 골고루 포함돼 PBS제도 문제는 출연연을 넘어 과학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출연연의 A 연구자는 "이번 정부는 사람 중심의 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에 매몰돼 있고 출연연을 보는 인식과 문화는 그대로"라면서 "한국의 기술 우위 분야가 중국에 빠르게 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과학기술 강국 한국은 옛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라고 꼬집었다.

C 연구자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독일, 미국 등을 벤치마킹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들의 인식과 문화보다는 관리차원의 제도에만 집중하는 격"이라고 지적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관료, 연구자, 국민이 같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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