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궁극적 실체를 밝히는 과학 여행
저: 제럴드 폴락, 역: 김홍표, 출판: 동아시아

◆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물에 대한 현상을 해석하다

저: 제럴드 폴락, 역: 김홍표, 출판: 동아시아.<사진= YES24 제공>
저: 제럴드 폴락, 역: 김홍표, 출판: 동아시아.<사진= YES24 제공>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가 "생명은 고체의 장단에 맞춰 물이 추는 춤이다"라고 했듯, 물은 생명의 중심이다. 부피로 보았을 때 우리 세포의 약 3분의 2는 물이며, 분자의 수로 따지면 몸의 99퍼센트가 물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물은 생명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역에 존재한다. 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물이 고체인 얼음, 액체인 물, 기체인 수증기 등세 가지 상으로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상만으로는 다양한 물의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물 과학자 제럴드 폴락(Gerald H. Pollack)은 고체와 액체의 중간 형태인 '배타 구역(exclusion zone)'이라는 네 번째 상을 제시한다.

폴락은 '물의 과학: 물의 궁극적 실체를 밝히는 과학 여행'에서 물의 네 번째 상인 배타 구역을 소개하고, 배타 구역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그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물의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물의 네 번째 상에 '배타 구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른 물질과 잘 섞이는 일반적인 물과 달리 다른 물질을 배제하는(exclusive)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물은 전기적으로 중성이지만 배타 구역의 물은 음성을 띤다. 배타 구역은 일반적인 물보다 안정하고 조직화돼 있다.

배타 구역의 형태는 액체와 고체의 중간으로, 얼음처럼 딱딱하지 않으며 마치 점성이 높은 액체처럼 행동한다. 아마도 끈적끈적한 물이나 겔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저자 폴락은 물의 네 번째 상인 배타 구역을 도입해 '물은 100미터가 넘는 나무 속을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까? 파도는 어떻게 지구 몇 바퀴의 거리를 돌 수 있을까? 99퍼센트 이상이 물로 된 푸딩은 어떻게 흐르지 않고 뭉쳐 있는 걸까?'와 같이 지금껏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물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그 밖에도 관절이 삐걱거리지 않는 이유, 얼음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이유,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필요한 거대한 바위를 자르는 과정, 나무뿌리가 콘크리트 인도를 부수는 과정, 견과류에 들어 있는 배아가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 등을 배타 구역이 형성될 때 방출되는 양성자의 힘 등을 알려준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물에 대한 현상들을 배타 구역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폴락은 배타 구역이라는 개념이 낯설 독자들을 위해 일러스트, 사진, 그래프, 동영상 링크 등을 가득 실어 시각적 이해를 도모했다. 일러스트과 사진을 통해 동료들과 직접 수행한 실험의 도구와 방식을 자세히 소개했다.

독자들이 실험 결과를 직접 분석해볼 수 있도록 pH 색상 막대, 적외선 사진, 그래프 등을 그대로 실었다. 책은 물 분자를 다루는 화학 분야의 책인데도 불구하고 복잡한 화학식이나 공식을 넣지 않아 기존에 과학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물 과학자 제럴드 폴락, 물 과학 연구에 불을 지피다

우리는 아직 물의 과학적 특성에 대해 잘 모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저널 '네이처'의 편집고문이자 과학책 저술가인 필립 볼은 "아무도 물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혹스럽다. 우리 행성의 3분의 2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은 아직도 미스터리투성이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과학자들 역시 보편적인 물질인 물에 대한 연구가 이미 다 돼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물 연구가 활발했던 적이 있다. 20세기 초반 과학계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지금은 협소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더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자연계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일반적인 원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개별적인 것보다 전체적인 것이 중요한 연구 주제였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물 역시 그 전체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물에 대한 과학 연구는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과학의 전문화 경향', '중합수 논쟁', '기억하는 물의 실패' 등으로 추락한다. 이처럼 연속적인 좌절로 물 연구가 신뢰를 잃게 되자 과학계에 물 연구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연구 초년에 근육 생리학에 몰두하던 제럴드 폴락은 자신의 연구 주제를 논쟁의 중심에 있던 물로 옮기며 침체돼 있던 물 과학 연구에 다시 불을 지폈다.

폴락은 꼼꼼한 문헌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물의 네 번째 상인 배타 구역에 대한 논의를 펼쳐나간다. 하지만 물에 대한 연구가 드물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폴락이 책에서 설명하는 주장과 실험 방식들은 아직 주류 과학계로부터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현재 헬스케어 및 물 산업계와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일부 과학계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폴락 스스로도 서문에서 "여기에서 제시한 모든 아이디어가 기본적 진실이라고 얘기하고픈 생각은 하나도 없다. 추론에 불과한 것들도 많다"라고 고백했듯, 책에 실린 내용 중 일부는 앞으로 더욱 면밀한 실험들을 통해 검증돼야 할 것이다. 폴락은 책 내용 중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그림으로 표시해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옮긴이의 글에서 김홍표 교수가 "생물학, 화학, 물리학,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물을 해석해야만 한다. 인간은 물에서 나고 물을 먹으며 살고 물에서 뽑아낸 전자와 양성자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살다가 죽는다. 우리가 물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밝혔듯, 물에 대한 과학 연구는 꼭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물에 대한 과학 연구와 논의에 참여해보자.

◆물과 관련된 현상을 배타 구역으로 재해석하다

물의 네 번째 상인 배타 구역은 물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과학적 사실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한다. 우리는 서로 반대의 하전을 띤 입자끼리만 끌어당긴다고 알고 있다.

이에 폴락은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같은 극성이 같은 극성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것을 예로 들면서, 서로 같은 하전을 띤 입자끼리도 끌어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하전을 띤 입자 사이에 반대 극성이 끼어 있으면 인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폴락은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삼투와 마찰력, 내부 에너지로 해석한 브라운 운동에서 몇 가지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브라운 운동의 원천은 외부 전자기 에너지 유입으로, 외부 에너지가 배타 구역을 형성하고, 이 배타 구역의 형성이 전하를 분리해 입자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삼투와 확산, 표면 장력, 광합성, 열과 온도 등에서 발견된 허점을 살피고, 배타 구역에 의한 전하 분리라는 원리로 재해석한다.

사실 일반 독자들이나 과학자들은 폴락이 책에서 펼치는 이 과학적 도전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 같은 전하 간의 인력, 브라운 운동, 삼투와 확산 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이기 힘든 독자도 있을 것이다. 폴락은 "과학 이론을 신성한 것이라 간주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우리 이해의 틀은 신성이 아니라 실험적 증거에 바탕을 둔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기존에 우리가 확실하게 정립되었다고 여기는 과학적 사실 역시 다시 한 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옮긴이의 글에서 김홍표 교수는 "나는 폴락이 제시하는 설명이 구구절절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이 특히 물리학자들이 물의 배타 구역 혹은 구조화된 물을 통해 여러 가지 현상을 실험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한번 반추해보기를 바란다"라고 언급한다.

'물의 과학'을 통해 국내 독자와 과학자들이 물과 관련된 과학 연구와 논의를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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