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도 피해가는 곳~출연연 대표 ICE 연구 현장"
추위에 점퍼 착용은 기본···'생명연·극지연·원자력연'

무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나라에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며 기후변화의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한달이상 지속되는 무더위에 전국적으로 3800여명의 온열 질환자와 45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역대급 무더위 속에 몇몇 연구 현장에서는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경험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불볕더위도 비껴간다.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겨울에 한없이 추운 이 공간이 올해 여름에 환영받는다. 하지만 큰폭의 온도차로 연구자들은 어느때보다 건강관리가 요구되기도 한다.

출연연의 대표적인 ICE 현장들을 찾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김장성)의 해외생물소재센터,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하재주)의 지하처분연구센터(이하 KURT), 극지연구소(소장 윤호일)의 북극연구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생명연 비밀 공간?···영하 5도에 '으스스', 점퍼까지 착용 

식물추출물은행 주요 공간.<사진=강민구 기자>
식물추출물은행 주요 공간.<사진=강민구 기자>
생명 연구에서는 생물 소재 확보가 중요하다. 전 세계 생물자원이 175만종인데 비해 국내 생물자원은 3만종에 불과하다. 생물자원을 많이 확보할수록 화합물 제조 등에 활용해 생물학 연구 진전과 신약 개발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해외생물소재센터 식물추출물은행은 해외에서 채취한 다양한 약용식물 표본을 보관하고 있다. 약용식물은 분쇄되어 가루 형태가 된 이후 추출되어 시료 형태로 보관된다.

현재 식물추출물은행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7만여점의 추출물을 보관하고 있다. 이곳 온도는 영하 5도를 유지한다. 연구진들은 대학, 연구소, 기업체 등에 소재를 분양하거나 분류·선별 작업을 위해 종종 이곳을 찾는다. 

김수용 생명연 해외생물소재센터 박사는 "밖에 온도는 40도를 육박하는데 이곳은 영하라 실습 학생들이 두툼한 점퍼를 입고 연구를 수행해서 '펭귄'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라면서 "세계적 수준의 국가 생물소재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물추출물은행은 영하 5도를 유지한다.<사진=강민구 기자>
식물추출물은행은 영하 5도를 유지한다.<사진=강민구 기자>
◆눈과 얼음 속에서 '지구 역사의 비밀'을 캐다

국내 대표 ICE 연구 현장에서 극지연구소를 빼놓을 수 없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에서 '미래 가치'를 찾기 위해 귀한 땀을 흘리는 연구팀이 있다.

주인공들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한 북극 연구팀. 아라온호가 9개 나라의 다국적 연구팀을 태우고 지난달 19일 인천항을 출발해 북극으로 떠났다. 77일 동안 -5℃~0℃를 넘나드는 혹한의 환경에서 연구가 이뤄진다. 아라온호는 올해로 9번째 북극행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북극을 항해하는 쉐빙선.<사진=극지연 제공>
지난해 북극을 항해하는 쉐빙선.<사진=극지연 제공>
연구 항해는 북극 공해상에서 두 차례 나눠 진행된다. 북극항로 개척과 북극 수산자원의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 조사도 함께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올해 북극의 해빙 면적이 201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항차 연구팀(강성호 수석연구원)은 해빙이 가장 빠르게 줄고 있는 북위 79~80도 동시베리아와 척치해의 얼어붙은 바다에 캠프를 설치하고 해빙의 면적과 두께 변화와 생태계의 양상 등을 관측한다.

북극 해빙은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열 흡수를 줄이는 '기온조절자'의 역할을 한다. 해빙의 면적과 두께의 감소는 북극, 나아가 전 지구의 이상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구팀은 관측된 정보를 토대로 해빙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북극해 환경변화 통합관측망'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는 해빙의 감소로 열리게 될 북극항로 시대에 북극을 항해하는 배들의 길잡이가 될 전망이다.

연구팀은 해빙이 사라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북극 공해역의 무분별한 수산업 개발을 예방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동참한다.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10개 국가 정부가 합의한 '북극 공해상 비규제 어업 방지 협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공동연구의 일환이다.

8월 말에는 알래스카에서 아라온호 북극 항해 2항차 연구팀(진영근 수석연구원)으로 교체된다. 이들은 북극 바다 밑에서 일어나는 메탄방출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동시베리아해 해저에서 과학탐사를 실시한다.

북극해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고 막대한 해저자원이 묻혀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접근 문제로 해저탐사가 이루어진 곳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이번 탐사는 동시베리아해 대륙붕 등에서 방출되는 메탄가스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배출 양상과 농도를 분석해 지구온난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북극 해빙캠프의 연구팀. <사진=극지연 제공>
북극 해빙캠프의 연구팀. <사진=극지연 제공>
연구팀은 2년 전 아라온호의 첫 번째 동시베리아해 연구 항해에서 전 세계 바다 평균값 보다 약 40배 이상 높은 해수층의 메탄농도를 관측했다. '불타는 얼음' 가스하이드레이트와 '검은 황금' 망간단괴가 이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 ICE 현장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극지는 기후를 보는 바로미터다. 극지에 쌓인 기후자료를 바탕으로 미래 기후의 변화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다"라며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북극에서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하 동굴 내부 16도로 서늘···모기도 사라져

"매년 여름 동굴 입구에 많던 모기도 안 보이네요. 덥긴 더운가 봅니다. 지하 동굴 내부에는 환기 장치가 작동되는데 올해 여름에는 바깥과 온도 차이가 커서 안개까지 자욱합니다."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은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 특히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해서는 지하연구시설을 이용해 실제처분심도에서 해당기술의 실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KURT(KAERI Underground Research Tunnel)는 이러한 연구를 위해 원자력연 내부에 구축된 순수 연구목적 지하처분연구시설이다.  

연구진들은 이곳에서 수일동안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습도가 높은 동굴 속에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웃옷을 입기도 한다. 

이곳에서의 실험은 크게 공학적 방벽 관련 현장시험과 천연 방벽 용질 이동 특성 정량 평가로 구분된다.

공학적 방벽 관련해서는 대규모 공학적 방벽 제작기술 개발·검증, 처분시스템 설치방법 개발 등이 진행된다. 천연방벽 성능 검증을 위해 지하수와 용질이동모델링을 비롯해 유동경로 추적자 시험 제어시스템 설계·제작, 천연 방벽서 지하수 조사, 안전성 평가, 암반에서의 유동 경로 조사 방법 개발 등이 실시된다. 

지성훈 원자력연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 박사는 "지하 동굴인 이곳은 태양열이 차단돼 온도가 16도에서 18도를 유지한다"라면서 "습도가 높은 내부에 있다가 나오면 찐득해지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올해 여름에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올해 불볕더위로 인해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에 많던 모기도 거의 없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올해 불볕더위로 인해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에 많던 모기도 거의 없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이곳에서는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이곳에서는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지하 연구 시설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지하 연구 시설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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